너를 품에 안으면 17장-2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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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4] 너를 품에 안으면 [17장-2부] — 너 때문이야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7-2)

조서가 끝났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조사실 특유의 공기가 남아 있었다.

차갑게 정리된 문장들,

그 문장들 사이를 떠다니는 망설임,

그리고 마지막까지 손끝에 남는 미세한 떨림.


선율은 서류를 정리해 클립으로 고정했다.

녹취 상태를 확인하고,

시간표기를 한 번 더 체크했다.

모든 게 ‘절차대로’ 끝났는데,

이상하게 끝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최윤서 씨. 오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짧았고,

눈동자는 어딘가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그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너무 오래 버틴 사람이 가진 눈이었다.


선율은 윤서를 경찰서 밖까지 배웅했다.

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비가 오기 직전의 습기, 달라붙는 냄새,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소리.

그리고 몇 초 뒤—


쏴아아—.


하늘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빗방울이 계단 난간을 때리고,

주차장 아스팔트는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사람들이 급하게 뛰어가는 소리, 차 문이 닫히는 소리,

와이퍼가 켜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겹쳤다.


윤서는 잠깐 멈춰 서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택시 앱을 찾는 사이,

선율의 머릿속에 아까 조사실에서 윤서가 던진 말이 스쳤다.


“형사님은 그때 당시에 뭘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은 공격이라기보다 선을 긋는 말 같았다.

‘당신은 내 시간을 모른다’는 식의 차갑고도 정확한 선.

그 선 사이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기억이 끼어들었다.

윤서가 톱스타였던 시절.

그때 선율이 가 야후 채팅,

싸이월드 같은 화면에 밤을 빼앗기던 시절.


그때의 인터넷은 지금처럼 똑똑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빠져 있었다.

선율은 윤서의 얼굴을 봤다.

눈가에 남은 흔적이 비처럼 번질 것 같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절차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경고가 머릿속에서 울렸는데도,

입이 먼저 움직였다.

“최윤서 씨.”


윤서가 고개를 들었다.

선율은 한 번 숨을 삼켰다.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윤서는 잠깐 선율을 바라봤다.

경계, 피로, 그리고 아주 미세한 안도.

그 모든 게 동시에 지나갔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비는 더 굵어졌다.

선율은 망설일 틈도 없이 빗속으로 뛰어갔다.

어깨와 목덜미로 빗물이 떨어졌고,

구두 바닥이 젖은 아스팔트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와이퍼를 올리자 유리 위 물이 갈라졌다.


스윽— 착, 스윽— 착


선율은 차를 윤서 앞까지 붙였다.

내려서 문을 열어 주자 윤서는 주저하지 않고 탔다.

믿어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인지—

그 선택이 너무 빠르고 조용해서 오히려 낯설었다.

차 문이 닫히고, 밖의 빗소리가 한 겹 얇아졌다.

대신 와이퍼 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고속도로 진입.

몇 분 가지 않아 차들이 서서히 속도를 잃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의 교통은 늘 같은 표정을 했다.

빨간 브레이크등이 길게 늘어지고,

도로 위 모든 차가 ‘조심’이라는 단어를 뒤늦게 떠올린다.


선율이 앞을 보며 낮게 말했다.

“앞쪽에서 사고가 난 것 같습니다. 오래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윤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빗물이 유리 위를 타고 내려가는데,

윤서의 시선도 그 물을 따라 같이 내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차 안에는 정적이 계속 쌓였다. 너무 오래 쌓이면,

그 정적이 사람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선율은 원래 차에서 노래를 틀어놓는 편이었다.

혼자 있을 때는 더 그랬다. 오늘은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

선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노래 틀어도 되겠습니까?”


윤서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선율은 차에 연결된 유튜브로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둔 노래를 켰다.

요즘 유행하는 한국 노래, 외국 노래,

지나간 노래들이 섞여서.

노래가 바뀌어도 윤서의 표정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차는 더 막혔다. 도로 위에서 차들이 거의 멈춰 서다시피 했다.


비가 내려서인지, 사고 때문인지, 아니면 그 둘이 합쳐진 탓인지—

어쨌든 오늘의 시간은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참 후 윤서가 마치 별뜻 없는 말처럼 꺼냈다.

“경찰은… 왜 하게 되셨어요?”


선율이 잠깐 룸미러로 윤서를 확인했다.

윤서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선율이 아니라 비를 향해 묻는 것 같았다.

“위험하진 않으세요?… 참 어려운 일을 하시네요.”

그리고 윤서는 덧붙였다.

“그래도… 한국어로 얘기할 수 있는 경찰이 있다는 게… 다행이네요.”


그 한 문장이 선율의 목 뒤를 아주 조금 굳게 만들었다.

이 사건에서 ‘언어’는 다리이자 함정이었다.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속이고,

누군가를 조종하는 데에도 언어가 쓰인다.


선율은 짧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 그냥 어쩌다 보니까요.

미국 살면서 이런저런 일 겪고…

해보니까 이쪽이 맞는 것 같아서요.”


윤서는 더 묻지 않았다. 고개만 아주 조금 끄덕였다.

노래는 계속 흘렀다.

그리고 그때였다.

선율이 스무 살 무렵 자주 듣던 노래가 재생됐다.

제목이 떠오르는 순간,

선율의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볼륨을 줄이려 볼륨 버튼을 찾았다.


그런데 늦었다.

후렴이 이미 시작됐다.

멜로디가 차 안을 채웠고,

선율은 자신도 모르게 아주 낮게 흥얼거렸다.


“… 너를 품에 안으면~…”


그 목소리는 거의 숨이었다. 그런데 윤서는 들었다.

윤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창밖만 보던 눈이 선율을 봤다.

그 눈빛에는 ‘누구나 들어봤던 아는 노래였다’

그러나 이상의 것이 있었다.


잊어버린 순간이 갑자기 현재로 밀려오는 표정.

자신이 가장 빛나던 때의 무대 조명과

그 조명 뒤에서 무너지는 느낌이 동시에 떠오르는 표정.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창밖을 봤다.

하지만 그 짧은 시선 하나로, 차 안의 정적은 모양이 바뀌었다.

‘아무 말도 없음’이 아니라, ‘말이 생길 수도 있음’이 되었다.


윤서의 집 앞.

선율은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빗줄기는 여전히 굵었고,

현관 앞 조명은 비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윤서는 문 손잡이에 손을 얹고 잠깐 멈칫했다.

“오늘… 감사합니다.”


선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협조해 주셔서 제가 감사드립니다.”

잠깐 망설인 뒤, 선율이 더 낮은 톤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아까 조사실에서 제가 목소리가 높아진 부분,

사과드립니다. 제가 더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윤서는 표정이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눈이 한 번 천천히 깜빡였다.

‘괜찮다’인지 ‘모르겠다’인지 선율은 구분하지 못했다.

선율은 다시 업무적인 선을 정확히 그었다.


“수사는 계속 진행될 겁니다.

현시점에서 최윤서 씨를 피의자로 단정할 만한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추가 확인이 필요하면 연락드릴 수 있습니다.

당분간은 연락이 잘 닿게만 해주시고, 주소나 연락처가 바뀌거나

장기간 출타하실 일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세요.

그때 다시 협조 부탁드립니다.”


윤서는 조용히 말했다.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선율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좋은 저녁 보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저나 경찰서로.”


윤서는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난 뒤에도 선율은 잠깐 그 자리에 있었다.

와이퍼 소리가 계속 났다.

스윽— 착, 스윽— 착

그 소리가 오늘 하루의 끝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윤서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소파에 몸을 던졌다.

등받이가 등을 받아주는데—그 순간에야 숨이 터져 나왔다.

가벼운 한숨.

그다음은… 웃음도 울음도 아닌, 애매한 숨소리.

“괜찮아.”

윤서가 자기한테 말하듯 중얼거렸다.

“이제 끝났어.”


근데 끝났다는 말이, 이상하게 확신이 아니라 주문처럼 들렸다.

윤서는 벌떡 일어났다. 방으로 향했다.

옷장 앞에 섰다가, 한 번 더 위를 올려다봤다.

옷장 위.

정리된 상자 하나.

먼지가 없었다.


윤서는 이걸 ‘잊어둔’ 적이 없었다.
그저—숨겨둔 것처럼 살았을 뿐.

상자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뚜껑을 여는 순간, 종이 특유의 냄새가 확 올라왔다.


프린터 잉크와 오래된 잡지 코팅지 냄새.

안에는 사진과 스크랩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윤서의 손끝이 빨라졌다.


그때.

맨 아래, 더 얇은 종이뭉치.

A4 프린트. 모서리가 살짝 구겨져 있고,

위쪽엔 스테이플러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치 누가 급하게 뽑아서 급하게 모아 둔 것처럼.

윤서는 그중 한 장을 꺼냈다.


[프린트 뉴스컷]

“고윤아, 연말 시상식 3관왕… 여우주연상·인기상·베스트커플상 ‘싹쓸이’”

— “작품성과 화제성 동시에… ‘흥행+평단’ 모두 잡았다”

— “관객 투표 기반 인기상까지… ‘대세’ 재확인”

— “무대 뒤 눈물… 관계자 ‘체력적으로 한계였을 것’”


[프린트 뉴스컷]
“고윤아, 전격 결혼 발표… ‘비공개 진행’”
— “한창 전성기인 상황에서 ‘깜짝 발표’”
— “상대는 재계 ○○그룹 회장 아들”
— “향후 활동은 조율”


윤서는 제목만 보고도 이미 내용을 외웠다.
그런데도 눈이 ‘향후 활동은 조율’ 문장에서 멈췄다.

조율.

사람을 말할 때 쓰는 단어 같지 않았다.

다음 장.


[프린트 뉴스컷]
“고윤아, 득녀… ‘하늘이 내려준 선물’”
—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
— “당분간 육아에 집중”
— “가족의 뜻에 따라 근황 공개는…”


윤서는 마지막 문장을 소리 없이 다시 읽었다.

“가족의 뜻”

윤서는 그 말이 싫었다.
그 단어는 축하 기사 속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박혀 있었고,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의 삶이 ‘뜻’ 하나로 정리되는 느낌.

그리고 그 아래.

기사 끝에 붙어 있는 캡처 이미지—댓글 모음.


“딸이면 더 좋지. 완벽한 그림이네.”
“이제 활동 끝이네. 재벌 가면 조용히 살아야지.”
“애 얼굴 공개는 언제?”
“진짜 ‘가문’ 들어갔다…”


윤서가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목에서 걸렸다.

그때, 상자 속에서 사진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윤서의 손이 멈췄다.

‘그날…’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했던 날.


윤서의 눈이 빨개졌다.

눈물이 ‘슬퍼서’가 아니라, 억울해서 차오르는 방식이었다.

윤서는 프린트된 뉴스컷을 다시 집었다.
“득녀” 기사 아래, 딱 한 문장만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었다.

당분간 육아에 집중.

윤서는 그 형광펜 칠 위를 손톱으로 몇 번 긁었다.
사각— 사각—
마치 글자가 지워지기라도 하길 바라는 것처럼.


“치…”
윤서가 숨을 짧게 뱉었다.

“뭐?”

“…당분간?”

낮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분간이… 끝이 나긴 해?”


잠깐의 침묵.

윤서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끝은… 내가 만들어주면 되지.”


손이 떨렸다.
하지만 윤서는 멈추지 않았다.

상자 바닥에서 또 다른 종이가 나왔다.

이번엔 기사 스크랩이 아니라—캡처를 프린트한 화면이었다.


아기 사진.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돼 있었다.

그런데 그 모자이크가 오히려 더 잔인했다.
사람을 지우는 게 아니라, 대상처럼 만들어 놓는 느낌이었다.

모자이크 아래에 붙은 설명문.

“출산 후 첫 공식 근황”
“딸 고은정과 함께한 일상 공개”


윤서는 그 이름을 한 번 더 눈으로 짚었다.

고은정.

잠깐의 침묵.

“딸이…”

숨이 끊어지듯 흘러나왔다.


시선이 모자이크 위에 고정됐다.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이거야…”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약점이 생겼네.”


윤서는 종이를 구겨 쥐었다.
쥐는 힘이 점점 세졌다.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그 모든 종이 위에서, 윤서는 마지막으로 한 장을 꺼냈다.

그건 기사도 사진도 아니었다.


짧은 메모.
가늘고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윤아는 늘 ‘미래’를 말했어.”

“근데 그 미래는…”
“나한테는 없었어.”


윤서가 메모를 읽는 동안, 눈물은 결국 떨어졌다.

딱 한 방울.
그 한 방울이 종이 위에 퍼지며 잉크를 먹었다.

윤서는 그 자국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낮게, 거의 이로 갈아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 다… 다…”


말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 너 때문이야.”


‘너’가 누구인지, 윤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게 사람인지, 가족인지, 시스템인지, 혹은… 그날의 선택인지.

그냥—확실한 건 하나였다.


윤서는 이걸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때, 윤서의 머릿속에서—

오래 멈춰 있던 장면이 다시 재생됐다.

박수.

플래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함성.

마치 세상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자는 신호처럼.


—다음: 17장-3부에서. …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의 원활한 열람을 위해 본편(최신 회차) 업로드 일정을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본편 연재 업로드 일정] https://brunch.co.kr/@db311d3a8c094f3

1-3부 구성 챕터: 화~목, 하루 1부씩 업로드

1-4부 구성 챕터: 화~금, 하루 1부씩 업로드

※ 가능한 한 각 챕터는 동일 주 내 업로드를 완료하여 이야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운영하겠습니다.


통합본(정주행용) 업로드 안내 https://brunch.co.kr/brunchbook/np-vol1-26

통합본은 매주 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현재 통합본은 본편 진행 상황 대비 약 2~3챕터 정도 후행하고 있습니다. 통합본은 정주행 하시는 분들을 위한 아카이브(묶음) 버전으로, 완결된 챕터부터 순차적으로 묶어 업로드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꾸준히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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