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3/4] 너를 품에 안으면 [17장-3부] — 시상식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7-3)
레드카펫 끝에 검은 밴이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플래시가 먼저 터졌다.
빛이 사람보다 빨랐다.
윤아의 얼굴이 드러나기 전에 이미 수백 개의 렌즈가
그녀의 존재를 확정해 버렸다.
고윤아! 고윤아! 고윤아!
남녀 관중들의 환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사람의 이름이 군중 속에서 한 덩어리로 뭉쳐져 울렸다.
외침은 응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사냥개들이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하자, 펜스 뒤에서 먼저 웅성거림이 올라왔다.
“온다 온다 온다”
“야, 맞아? 맞지?”
“와 고윤아다”
순간 한쪽에서 목이 터졌다.
“언니!!! 여기요!!!”
그 소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겹쳤다.
“언니 한번만 봐주세요!”
“언니 손 한 번만!!”
“언니!!!”
“한번만!”
“언니, 사랑해요!”
“가리지마 가리지마!”
“야, 카메라 위로 들어!”
“와 미쳤다 실물…”
“잠깐 잠깐 나 안 찍혀!”
(기자들)
“윤아 씨 이쪽이요!”
“여기요 여기!”
고윤아가 고개를 들자, 비명 비슷한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꺄아아— 언니!!!”
“방금 봤어? 나 봤어!”
“웃었다 웃었어!”
“찍혔어?? 찍혔어??”
“나 흔들렸다 망했어 다시 와줘요!!”
플래시가 연속으로 번쩍였다.
소리는 더 이상 문장이 아니고 파편처럼 튀었다.
현장 스태프의 무전이 귀를 스쳤다.
“포토월 30초 전. 윤아 팀, 동선 그대로.”
“왼쪽 라인 경호 한 명 더.”
“플래시 구역 정리. 펜스 밀림 주의.”
기자들이 목이 쉬도록 외쳤다.
“윤아 씨! 여기 한 번만요!”
“윤아 씨, 정면 한 컷만 부탁드립니다!”
“오른쪽도 한 번만 봐 주세요!”
“잠깐만요— 손 한 번만요, 손!”
“드레스 어디 거예요? 브랜드만 짧게요!”
“립 제품 뭐예요? 브랜드만요!”
플래시가 연속으로 터졌다.
누군가 “조금만 비켜요!”라고 소리쳤고,
또 다른 목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윤아 씨! 마지막 한 컷만요!”
윤아는 멈추지도, 급해지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기대를 정확히 맞춰주는 속도.
카메라가 좋아하는 박자. 포토월 앞에서 어깨를 반 박자 돌리고,
손은 너무 크게 흔들지 않는다. 표정은 늘 그 비율로 고정돼 있었다.
밝음은 70. 피곤함은 0.
옆에서 매니저가 아주 낮게 말했다.
“누나, 질문 길게 받지 마세요.
오늘 시상식이라 기사가 바로 떠요. 한 줄만 삐끗해도 내일 촬영까지 밀릴 수 있어요.”
윤아는 미소를 유지한 채, 가장 안전한 문장을 꺼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에요.”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절반만 진실한 문장이었다.
윤아는 늘 그렇게 말했다.
덜 다치고, 덜 터지고, 덜 남는 말.
로비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레드카펫의 바람 대신 실내의 냉기가 들어왔다.
조명은 더 정교했고, 사람들의 시선은 더 날카로웠다.
여기선 팬보다 업계 사람들이 더 많이 웃는다. 웃는 이유가 다르다.
포토라인 한쪽에서 인터뷰를 받는 여배우가 보였다.
최윤서.
새월로 따지면
사람들은 그녀를 “중년”이라고 불렀지만,
아직 중년이라 부르기엔 이른 얼굴이었다.
최윤서 앞에서 그 단어는 힘을 잃었다.
왕년엔 드라마, 영화, 광고—
그녀의 이름 하나면 캐스팅이 정리됐다.
제작사는 그녀의 이름으로 투자표를 끊었고,
브랜드는 그녀의 얼굴로 시장을 잡았다.
“끝판왕”이라는 말이 붙어도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진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최윤서 씨, 오랜만입니다. 오늘도 정말… 변함이 없으세요.”
최윤서는 웃었다. 예쁘게.
그런데 그 웃음은 친절이라기보다 허락처럼 보였다.
그녀는 인터뷰를 받으면서도,
틈만 나면 윤아 쪽으로 시선을 흘렸다.
티 나지 않게. 하지만 한 번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윤아는 그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모른 척했다.
모르는 척이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다.
시상식장 안, 좌석 배치부터 ‘그림’이었다.
초대권 색깔이 달랐고, 팔찌가 달랐고,
스태프들은 사람을 “자리”로 분류했다.
앞줄은 스폰서, 중앙은 후보,
통로 쪽은 카메라가 좋아하는 얼굴들.
여기선 웃음도 동선도 전부 방송용이다.
객석 위로 거대한 카메라 크레인이 천천히 움직였다.
렌즈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이 동시에 “준비된 얼굴”로 바뀌었다.
몇몇은 손끝으로 넥타이를 고쳐 잡고,
몇몇은 귀 뒤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 작은 동작들이—이 시대의 레드카펫이었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스폰서 로고가 번갈아 떴다.
통신사 광고, 폴더폰 광고, 디지털 카메라 광고.
“문자”와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아직 새롭던 시절,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더 조심스럽게 웃었다.
사진 한 장이 포털 첫 화면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걸,
이제 막 배운 시대였다.
화려한 개막 무대가 시작됐다.
대형 LED가 열리고, 오케스트라 소리 위로 MC의 멘트가 얹혔다.
그 사이—앞줄 한 배우의 얼굴에 오래된 세월이 앉아 있었다.
주름이 아니라 역할이 남아 있는 얼굴.
젊을 땐 눈물 한 방울로 장면을 끝내던 사람이,
이제는 숨 한 번으로 장면의 결을 바꾸는 사람.
그 배우는 개막 멘트에 맞춰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카메라가 비출 때마다 입꼬리는 올라갔고,
카메라가 지나가면 입꼬리는 정확히 원위치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남는 건 딱 하나였다.
‘이번이 아니면, 내 이름은 그냥 지나간다.’
옆자리의 중견 배우는 손끝으로 정장을 한 번 쓸었다.
손에 땀이 차면 카메라가 티를 낸다.
그는 박수를 치면서도 속으로 셈했다.
올해 내 작품, 올해 내 평, 올해 내 운.
그리고 뒤쪽엔 신인 배우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자기 얼굴을 카메라가
길게 잡아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메인 샷은 앞줄 후보, 톱배우,
스폰서 테이블이 먼저다.
그래도 신인들은 자세를 안 풀었다.
등받이에 기대지도 않고,
다리 꼬는 타이밍도 참았다.
손은 무릎 위에 두고,
박수는 너무 크게 치지 않게—너무 작게 치지도 않게.
카메라가 객석을 훑다가 자기 줄을 스치면,
그때 딱 걸리는 얼굴이 중요하니까.
한 컷만 잡혀도 다음 날 인터넷 기사 사진이 바뀌고,
포털 첫 화면 썸네일에 얼굴이 떠서, “누구냐”가 생긴다.
신인들은 상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 한 컷을 기대하며 웃고 있었다.
무대 위 조명이 바뀌고, 사회자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올해, 관객과 평단을 동시에 사로잡은 연기…
그리고 우리가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감.
여우주연상—후보를 소개합니다!”
후보 클립이 스크린에 흘렀다.
누군가의 울음,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침묵.
작품들이 지나가고,
마지막에 윤아의 얼굴이 화면을 채우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 아주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놀람이라기보다, ‘그럴 줄 알았다’는 탄성.
윤아는 웃었다.
‘내 얼굴을 내가 보는’ 이상한 느낌.
너무 완벽해서 가끔 자기 같지 않은 얼굴.
“수상자는—”
정적이 한 번 길게 늘어졌다.
무대 뒤쪽에서 스태프 무전이 겹쳐 들렸다.
“수상자 카드 확인. 트로피 담당 대기. 동선 준비.”
숨이 한꺼번에 멎었다.
“고윤아 씨입니다!”
순간 객석 전체가 터졌다.
박수, 환호, 의자 움직이는 소리,
누군가의 “와!” 하는 비명.
윤아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속도마저 연습된 것처럼.
옆자리 동료 배우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축하해요! 진짜 대박이에요…”
윤아가 웃으며 말했다.
“감사해요… 너무 믿기지 않네요.”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동안, 윤아는 한 가지를 봤다.
'최윤서.'
박수도 치지 않았다.
입꼬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무표정으로 객석 사이를 빠져나갔다.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윤아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그 순간에 맞춰서.
윤아의 발이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객석의 환호는 더 커졌다.
하지만 윤아의 머릿속엔 이상하게 그 장면만 남았다.
박수 없는 사람.
웃지 않는 사람.
사라지는 사람.
윤아는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고윤아입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윤아는 가장 안전한 표정을 꺼내고, 가장 안전한 목소리를 냈다.
“이 상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요.
제게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윤아는 웃었다. 완벽하게.
그러나 그 웃음의 아주 깊은 아래에—작은 균열이 생겼다.
무대 아래 어딘가로 사라진 최윤서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상식장 밖. 백스테이지 대기실.
윤서는 문을 닫고, 문고리를 두 번 잠갔다.
찰칵. 찰칵.
유리컵에 물을 따랐다. 손은 안 떨렸다.
속은 무너졌는데, 몸은 너무 익숙했다.
TV에선 고윤아가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믿고 싶은 얼굴.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최윤서의 목구멍 어딘가가 긁혔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밀려난다는 감각 때문에.
폴더폰이 울렸다. 진동이 짧고 무겁게 울렸다.
광고 에이전시 쪽 번호였다. 상대는 최대한 공손했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실장님… 글로벌 캠페인 건 말입니다.”
윤서가 물었다.
“결정 났어?”
상대가 답했다.
“…네. 본사에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윤서가 다시 물었다.
“… 누구로.”
잠깐의 침묵.
상대가 말했다.
“고윤아 쪽으로 최종 확정됐습니다.”
최윤서는 ‘왜’를 묻지 않았다. 왜는 지는 사람이 묻는 말이라서.
대신 하나 더 확인했다.
“그럼 드라마 쪽은.”
상대가 답했다.
“… 그쪽도요. 제작사에서 ‘새로운 얼굴’을 원한다고….”
새로운 얼굴.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퇴장 안내처럼 들렸다.
통화를 끊고도 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손에 붙은 것처럼.
그리고 문득—정말 하찮은 게 목구멍을 더 세게 긁었다.
이름.
윤아.
윤서.
하필, 같은 ‘윤’.
최윤서는 TV 화면을 노려보다가, 입술 사이로 짧게 뱉었다.
“재수 없게….”
이름까지 겹쳐서 밀어낸다는 느낌.
세상이 일부러 자기 이름의 한 글자까지
빼앗아가서 새 얼굴에 붙여준 것 같은.
그녀는 유리컵을 들었다.
그리고—손에서 미끄러졌다.
쨍—!
유리 조각이 바닥에서 플래시처럼 반짝였다.
윤서는 거울을 봤다. 얼굴은 그대로였는데, 얼굴이 낯설었다.
변한 건 얼굴이 아니라, 세상이 얼굴을 쓰는 방식이었다.
툭. 툭.
윤서는 손가락 마디로 거울을 두 번 두드렸다.
세 번째엔 힘이 들어갔다.
칙—.
거울에 금이 갔다.
최윤서는 그 금을 보며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 내려가 주면 되겠네.”
그 말이 끝나자, 폴더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기자였다.
기자가 말했다.
“실장님, 인터넷에 글 올라왔어요. 아까…
박수 안 치고 나가신 장면….”
최윤서는 대답 대신 전화를 끊었다.
TV 화면에 자막이 흘렀다.
‘박수 안 친 선배 논란…’
최윤서의 입술이 아주 얇게 말렸다.
사람들은 박수 소리로 사람을 죽였다.
그날 이후로 최윤서는 점점 멀어졌다.
공식 멘트는 늘 같은 문장으로 복사돼 돌아다녔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활동을 중단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최윤서 차 안에서 폴더폰이 울렸다.
최윤서는 화면을 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실장님.”
윤서는 곧장 말했다.
“윤아 쪽, 뭐 잡히는 거 있어?”
기자가 바로 받았다.
“오늘도 완벽하게 잠가 놨어요. 동선, 멘트, 스태프 라인까지요.”
윤서가 짧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쓰는 거야.”
기자가 숨을 삼켰다.
“원하시는 건… 꼬리죠.”
윤서가 말했다.
“말 말고. 한 번에 엮을 그림.”
“저년이 나 만나기 전, 뭘 하고 살았는지 전부 캐. 어디서 누구랑 놀았는지도.”
“분명 내가 놓친 구멍이 있어.”
잠깐, 공기가 더 차가워졌다.
“증거.”
기자가 낮게 웃었다.
“그런데 실장님 그림이 있어야 움직이죠.”
윤서가 조건을 던졌다.
“돈은 얼마든 줄게. 특종도 줄게.”
기자가 바로 답했다.
“그럼 일주일 안에 하나 물겠습니다.
윤아가 실수 안 하면—실수처럼 보이는 ‘상황’부터 찾죠.”
윤서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졌다.
“선은 넘지 마.”
기자가 말했다.
“안 넘습니다. 아시잖아요. 저는 선 위에서만 놀아요.”
윤서가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내가 저년을 무명 전 때부터 키워냈어.
그러니까 끌어내릴 연결고리도 어딘가에 있어.
넌 그걸 반드시 찾아내.”
기자가 짧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윤서가 끊었다.
차 안에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윤서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대신 룸미러에 비친 자기 눈을 오래 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가 만들면 되지.”
—다음: 17장-4부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안내]
본 작품 **『너를 품에 안으면』**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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