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1/4] 너를 품에 안으면 [18장-1부] — “이제 시작이야”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8-1)
협력자 하나는 묻혔고—
…
...
소리가 돌아왔다.
텍사스의 밤은 박수도 플래시도 없었다.
대신, 에어컨이 아주 낮게 울고 있었다.
윤서는 숨을 들이마신 채, 침대 위에 꺼내 놓았던 상자를 내려다봤다.
뚜껑은 이미 반쯤 열려 있었다.
상자 안, 맨 밑에 얇은 사진 한 장.
윤서는 그 사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화면’이던 과거가, 종이의 질감으로 바뀌었다.
윤서는 손에 들린 오래된 사진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사진 속 아이는—어렸을 때의 윤서였다.
뭘 믿어도 괜찮고, 누가 웃어 주면 그게 전부인 줄 알던 얼굴.
아직 ‘세상은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모르는 눈빛.
윤서는 그 눈빛이 너무 순해서, 숨이 잠깐 막혔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은 억지로 눌렀다.
대신 마음 한구석이 차갑게 굳어갔다.
감정이 폭발하는 게 아니라,
결심이 서서히 굳는 느낌이었다.
윤서는 사진을 다시 상자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을, 윤서는 스스로 보지 못한 척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이제 시작이야.”
그 한마디로 윤서의 복수는 ‘생각’에서 ‘계획’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중심에는—선율이 있었다.
윤서는 선율을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원하든, 싫어하든. 끌려들어 들어올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윤서는 컴퓨터를 켰다.
부팅 소리가 들리는 사이,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로 가 있었다.
예전—잘 나가던 시절, 여러 매니저들 중에서도 실무를 거의 대신해 주던
“친동생처럼 지냈던 동현”이가 이다음 단계처럼 떠올랐다.
스케줄, 연락, 기사 대응, 일정 조율.
그때는 늘 옆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옆이 비어 있다.
페이스북 검색창에 이름을 쳤다.
프로필이 뜨는 데 3초도 안 걸렸다.
새로 올린 사진들, 가벼운 근황, “잘 지내?” 같은 댓글들.
윤서는 잠깐 멈췄다가, 메시지 버튼을 눌렀다.
길게 쓰면 흔들릴까 봐 길게 쓰지 않았다.
“동현아 나… 윤서야. 시간 되면 바로 답장해 줘.”
전송.
딱 그 순간, 윤서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이제부터는 사람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했다.
윤서는 바로 검색창으로 손을 옮겼다.
이번엔 사람 말고, AI.
유튜브를 켰다.
“AI 사칭”,
“보이스 클로닝”,
“딥페이크”,
“얼굴 합성”,
“영상 생성”,
“음성 복제”,
“신분 도용”,
“피해자 심리”
키워드가 화면 위에 쌓였다.
윤서는 영상 하나를 누르고, 배속을 올리고,
중요한 부분만 멈춰서 다시 보고, 메모했다.
메모장에는 문장 대신 단어들만 남았다.
“신뢰 만들기”
“권위 빌리기(변호사/경찰/기관)”
“시간 압박”
“보존/증거/긴급”
“피해자 고립”
영상 속 사람들은 “편리함”을 말했다.
윤서 귀에는 “무너뜨리는 법”으로 들렸다.
‘그러니까… 사람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한 인생쯤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네.’
윤서의 눈빛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더 단단해졌다.
윤서는 모니터 불빛을 끄지 않았다.
영상은 계속 돌아갔다.
사람 목소리가 “편리함”을 말하고,
화면은 “누구나 할 수 있다”를 반복했다.
그 말이, 윤서에겐 다르게 들렸다.
“지금은… 한 번의 클릭으로도, 언제든 어디서든 누군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윤서는 창을 닫았다.
그리고 메신저를 열었다.
방금 보낸 메시지—읽음 표시도 없었다.
답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시간.
그 불확실함이 오히려 마음을 단단하게 했다.
윤서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딱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 떠올랐다.
‘그럼 선율이를… 어떤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만들까?’
그 답은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장면이 신선율 쪽으로 옮겨간다.
선율은 그날도 지쳐 있었다.
단순히 피곤한 게 아니라,
하루가 끝나도 회복이 안 되는 피로였다.
퇴근은 퇴근이 아니었다.
현장 나갔다가 들어오면 보고서가 남고,
보고서 끝내면 또 전화가 오고,
주말엔 교육이나 행정 처리,
가끔은 법원 일정까지 끼었다.
몸이 집에 와도 머리는 계속 근무 중이었다.
그리고 집에는 또 하나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 사업.
매출이 줄어드는 건 둘째 치고,
문제는 매달 정해진 돈이 빠져나갔다.
렌트, 전기, 보험, 카드 수수료, 직원 급여, 도매 거래처 결제.
“이번 달만 버티면”이 몇 달째였다.
선율이 숫자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수록, 잠은 줄어들었다.
그날도 똑같았다.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보, 매장에 오더 잡아야 하는 거 있어요.
거래처에서 오늘 안 잡으면 다음 주로 밀린대요.”
선율은 답장을 치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알았어. 조금 있다 갈게.”
“조금 있다가”는 그 순간엔 진심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늘 계획대로 안 됐다.
잠깐만 눈을 감았다.
진짜 잠깐만—
귀 안쪽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났다.
처음엔 얇은 선 같던 소리가, 조금씩 굵어지더니 방 안의 모든 소리를 밀어냈다.
숨소리도, 시계 초침도, 생각도.
삐—
삐———
소리에 맞춰 머리 한쪽이 묵직하게 눌렸다.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선율은 눈을 뜨려 했지만, 눈꺼풀이 말을 안 들었다.
그게 졸음인지, 순간적으로 끊긴 건지 본인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리만 남았다가
뚝...
숨 한 번 고르고 일어나서 움직이려고 했다.
휴대폰 진동에 눈을 떴을 때, 방 안의 공기가 달랐다.
창밖이 이미 어두웠다.
TV 화면에 떠 있는 시간은 저녁 8시 47분.
휴대폰 잠금 화면에는 알림이 겹쳐 있었다.
부재중 전화 3통
메시지 5개
“여보?” “어디예요?” “지금 오고 있어요?”
마지막 메시지: “그냥 됐어요.”
선율은 멍하게 침을 삼켰다.
몸이 먼저 죄책감으로 굳었다.
전화를 걸기도 전에, 아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선율은 급히 받았다.
“여보…”
수화기 너머로 한숨이 먼저 들렸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는 건, 이미 마음이 꺾였다는 뜻이었다.
“아니… 여보. 여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필요한 거 많다고 했잖아요. 오더도, 카드 결제도, 재고 정리도요.”
“거래처에서 오늘 안 잡으면 다음 주로 밀린다니까요.”
선율은 눈을 비볐다.
말을 찾았지만, 입안에서 부서졌다.
“어… 내가… 깜빡 잠들었어. 미안. 피곤했나 봐.”
잠깐 정적.
그 정적이 길어질수록, 선율의 속이 서늘해졌다.
아내는 낮게 말했다.
“… 진짜, 요즘은 점점 더 심해져요.”
그리고 전화가 뚝 끊겼다.
선율은 휴대폰을 들고 한참 그대로 있었다.
화면은 꺼졌는데도 손이 내려오지 않았다.
그날 밤, 아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내도 지쳐 있었다.
누적된 피로, 누적된 스트레스.
그게 얼굴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아내는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는 손마저 거칠었다.
선율은 “미안해”를 먼저 꺼내려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아내는 이미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연습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보… 투잡 뛰느라 힘든 거 알아요.”
“근데… 나도 지쳐요. 나도 버겁다고요.”
아내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도 힘들어요.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
“요즘 당신, 경찰 일 바쁘다는
이유로 집에 없는 날이 더 많고…”
“집에 있어도… 당신은 멍해요.
내 말이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도 모르겠고.”
선율은 고개를 들었지만 눈이 초점을 못 잡았다.
머릿속에는 ‘미안하다’만 가득한데, 입이 안 열렸다.
아내는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돈.”
“이번 달 카드값이랑 렌트, 거래처 결제…
내가 다 계산해요.”
“나는 매일 숫자 보면서 불안해요.
근데 당신은…”
“당신도 힘든 건 알겠는데,
우리 이렇게 같이 무너지는 게 맞아요?”
그 말이 현실이었다.
사랑만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돈과 시간과 불안이 같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눈가를 훔치며, 마지막을 박았다.
“우리… 우리가 같이 잔 게 언제인지 기억해요?”
“이게 부부예요?”
선율은 입을 열었다.
근데 나온 말은… 너무 약했다.
“… 미안해.”
그 한마디는 변명도 아니고 해결도 아니었다.
그냥 버티다 나온 소리였다.
아내는 선율을 보다가, 갑자기 차분해졌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감정이 아니라 결론이었으니까.
“나… 캘리포니아 친정에 잠깐 있을게요.”
“잠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근데 솔직히… 나도 자신 없어요.”
“사업도… 더 끌고 가면 우리 둘 다 끝나요.”
선율은 뭔가 붙잡고 싶었다.
근데 붙잡을 말이 없었다.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으니까.
그는 겨우 한 문장을 꺼냈다.
“여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 닫히는 소리가,
그날 밤 선율에게는 판결처럼 들렸다.
그다음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았다.
진짜 현실은, 천천히 망가지고 있었다.
몇 주는 각자 버텼고,
몇 달은 “잠깐만 더”로 넘겼다.
재고를 줄이려고 세일을 걸고,
거래처 결제를 쪼개고,
임대인에게 연락해 납부일을 미루는 얘기도 했다.
선율은 쉬는 날마다 매장에 갔다.
박스 테이프를 붙이고,
가격표를 떼고, 남은 재고를 정리하고,
“이 물건이 이렇게 남아 있을 줄 몰랐다”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
그 과정에서 선율은 알게 됐다.
사업을 접는 건 결심의 문제가 아니라,
절차의 지옥이라는 걸.
정리해야 할 게 너무 많았고,
끝내야 할 연락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더 조용히 무너졌다.
결국 사업은 처분했다.
‘정리’라는 말로는 부족했고,
‘포기’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냥… 더 이상 유지할 힘이 없었다.
아내는 끝내 친정으로 갔다.
“잠깐”이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날짜는 말하지 않았다.
혼자 남은 집은 고요했다.
냉장고 모터 소리, 시계 초침, 방 안의 공기.
사람이 없는 집에서만 들리는 소리들이 더 크게 울렸다.
선율은 어느 순간부터 불을 잘 안 켰다.
집이 밝아지면 더 적막해 보여서.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다가,
선율은 아주 낮게 혼잣말했다.
“… 내가 지금 뭘 지키고 있는 거지?”
그때 선율은 아직 몰랐다.
자기 삶이 무너진 틈으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들어오려 한다는 것을.
윤서의 “이제 시작이야”는—
곧 선율의 텅 빈 듯한 조용한 집 안으로 도착할 현실적인 소리였다.
—다음: 18장-2부에서…
[업로드 안내]
연재(화·수·목·금): https://brunch.co.kr/@db311d3a8c094f3
브런치북(통합본, 월): https://brunch.co.kr/brunchbook/np-vol1-26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안내]
본 작품 **『너를 품에 안으면』**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창작물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모든 문장, 구성, 장면 연출, 대사, 설정 및 아이디어의 표현 방식은
저작자의 사전 허가 없이 무단으로 전재, 복제, 배포, 각색, 2차 가공,
또는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행위를 금합니다.
본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관련 법률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StinGBee. 무단 전재·복제·배포·2차 가공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