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18장-3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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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4] 너를 품에 안으면 [18장-3부] — 균열이 시작되는 소리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8-3)

경찰서로 돌아오자마자, 선율이는 이상한 분위기를 알아챘다.
평소처럼 시끄럽게 돌아가야 할 공간인데, 그날은 유난히 조용했다.

사람들은 서로 마주쳐도 말을 길게 잇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짧게 주고받고, 그마저도 낮은 목소리였다.


마치 누가 먼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공기 속에 떠 있던 의심이 형태를 갖추고 현실로

내려앉을 것만 같아서 다들 입을 아꼈다.

하지만 말은 아끼는 만큼 더 커졌다.
복도 끝에서, 주차장에서, 서류 더미 사이에서—조각조각 새어 나왔다.


선율은 그 조각들을 주워 담지 않으려 했다.
확인할 때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내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경찰이 된 뒤로 몸에 붙은 습관이었다.

휴게실 TV는 늘 켜져 있었다.

대부분은 보지도 않았다.
뉴스는 배경 소음이고, 커피 머신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오늘은—사람들이 먼저 모였다.
처음부터 모여 있었다.

화면이 바뀌자, 자막이 길게 달렸다.

빨간 띠가 화면 아래를 꽉 채웠다.


[속보] ‘모범 경사’ 혐의 공개…

아동·청소년 성착취·인신매매 연루 정황.

수사 급진전… 외부 기관 공조, 핵심 진술 확보.


누군가 컵을 내려놓다가 손을 놓쳤다.

플라스틱 컵이 바닥에서 한 번 튀었다.


“뭐…?”


질문이 아니었다.
발성에 가까운 소리였다.

누군가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막의 단어 하나하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니야… 저건… 아니야.”

“내가 아는 그 경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은—”


말이 끝까지 안 나왔다.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시민 행사에서 아이들한테 웃어 주던 얼굴.

부하들을 교육할 때 말하던 목소리.


30년 넘은 경력의 베테랑.
그런데도 늘 단정했고, 늘 모범이었던 경찰관.

아내와 두 딸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던 손.

그 모든 게 자막 한 줄에 눌려 죽었다.


누군가 욕설을 뱉었다.
누군가는 벽을 한 번 쳤다.
누군가는 그냥,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머리가 따라가지 못할 때 나오는 반사였다.

프런트 쪽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기자들 또 물고 들어왔어! 이름 확인해 달래!”
“감찰 쪽에서 전 직원 공지 올린대!”


단체 메일이 발송됐다. 뉴스보다 먼저 공지가 떴다.
짧았고, 건조했다.

늘 보던 형식이었다.
메일을 열면 먼저 뜨는 건, 비밀유지와 외부 유출 금지 경고문이었다.

CONFIDENTIAL – Law Enforcement Sensitive. Unauthorized disclosure prohibited. If misdirected, delete immediately.
(자막: 기밀 – 법집행 민감 정보. 외부 유출 금지. 수신 대상이 아니면 즉시 삭제.)


그 아래로, 언론 보도보다 먼저 내부 공지가 내려왔다.
길지 않았다. 건조했다.

브리핑된 사건 요약은 이랬다.

—외부 기관 공조 진행
—다수 피해자 진술 확보
—증인 보호 조치 및 긴급 절차 진행
—대치 상황 발생


그리고 아래에는, 늘 그렇듯 추가 지시가 붙어 있었다.

대충 상황만 공유하고, 나머지는 입 닫으라는 식의 문장들.

—본 건 관련 정보 외부 공유 금지(구두·문자·이메일·SNS 포함)
—언론 문의 및 인터뷰 요청 개별 응답 금지
—모든 미디어 대응은 PIO(Public Information Office) / Public Affairs 경유
—지휘부 승인 없이 확인·부인·배경설명·비공식 코멘트 금지
—문의 수신 시 즉시 상급자 및 PIO 통보
—위반 시 내부 규정에 따른 조치 가능


한 줄로 요약하면 그거였다.
밖에선 아직 “속보”도 안 떴는데, 안에서는 이미 말하는 방식부터 통제되고 있었다.

요지는 분명했다.
언론 보도 전까지는,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입을 열지 말 것.


마지막 줄에서, 휴게실 공기가 한 번 꺼졌다.

누구도 ‘어떻게’는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더 많은 것이 떠오를까 봐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벽걸이 TV 화면이 속보로 갈아탔다.

화면 아래 자막이 먼저 튀어나왔다.


[속보] ‘모범 경사’… 타 카운티서 무장 대치 끝내 사망

[속보] 협상팀 설득 중 총성… 현장 통제 유지


앵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빠르게 흘렀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지역사회봉사로 표창을 받았던 모범 경찰관이 오늘 오후 타 카운티에서 무장 대치 끝에 숨졌습니다. 현장에는 해당 카운티 경찰 협상팀이 투입돼 대화를 시도하던 중이었습니다.”


화면은 헬기에서 내려다본 도로였다.
순찰차들과 무장된 장갑차가 반원처럼 둘러서 있고, 멀리 스파이크 스트립과 차단선이 길을 막고 있었다. 붉고 파란 경광등이 규칙 없이 번쩍였다.


기자가 현장 연결로 넘어갔다.

“네, 저는 지금 현장 인근입니다. 경찰은 당사자가 OOO 카운티 OO경찰서 소속 현직 OOO경사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차량 주위로는 접근이 통제돼 있고, 협상팀이 바로 앞에서 대화를 시도하며 설득을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협상 도중 총성이 한 발 들렸고…”


기자의 말이 잠깐 끊겼다. 뒤에서 누군가 무전기를 쥐고 뛰는 모습이 프레임을 스쳤다.

“…당사자는 스스로 권총을 발사한 것으로 보이며, 현장에서 사망이 확인됐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현재 정확한 경위는 조사 중이고, 추가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지금까지 밝혀졌습니다”


그다음 자막이 바뀌었다.

[자막] “추가 피해 없음”… 정확한 경위 수사 중

[자막] 경찰 내부·외부 합동 조사 착수


휴게실 안에서는 누가 리모컨을 들고 있는지도 모르게 됐다.
TV 소리만 커진 게 아니라,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그쪽으로 쏠렸다.

아까 단체방 공지에 있던 “대치 상황”이라는 두 글자가,
이제는 화면 속 경광등과 총성으로 실체를 얻고 있었다.


선율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않는다.

며칠 전, 자신이 속으로 했던 그 확신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은—그 확신이

“안전”이 아니라 “변명”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선율은 깨달았다.

사람이 무너지는 건 ‘한 번’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는 걸.


그날 밤, 선율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이름이 떴다. 최윤서.

선율은 받지 않으려다—받았다.

받는 순간, 이미 늦는다는 걸 알면서도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신 경사님.”


윤서였다.
목소리는 낮았고,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어제저녁 식당에서 이어지던 대화가
중간에 끊긴 적조차 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선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서는 그 침묵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방식이… 능숙했다.

윤서는 그 침묵을 건드리지 않고,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뉴스 보셨죠.”


선율의 손가락이 폰을 더 세게 눌렀다.
윤서는 들을 수 없는 압력인데,

선율은 그걸로라도 버티고 싶었다.


윤서였다.
목소리는 낮았고,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어제저녁 식당에서 이어지던 대화가
중간에 끊긴 적조차 없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윤서는 마치 망설이다 전화한 사람처럼 조용히 말했다.

“신 경사님… 이런 때 전화드리는 거 실례일 수도 있는데,
뉴스 보고 그냥 못 지나치겠어서요.”

“괜찮으세요?”


선율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윤서는 그 침묵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천천히,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신 경사님은요…
제가 봤을 땐 참 좋은 경찰관이에요.”

“경찰도 사람이잖아요. 실수도 하고,
고통도 느끼고, 흔들릴 때도 있고요.”

“저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됐지만.”


윤서는 잠깐 숨을 고른 뒤,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신 경사님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분이 아니라고 믿어요.”

선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위로를 받아들이기엔 마음이 너무 딱딱했고,
거절하기엔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웠다.


윤서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남겼다.

“그러니까… 신 경사님이 선택하면 돼요.”

“어떤 경찰로 남을지.”


윤서는 마지막 말을 꺼내기 전에 잠깐 멈췄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정말 안부라도 확인하듯 물었다.

“지금… 혼자 계세요?”


선율은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그 짧은 틈 사이로 윤서는 귀를 기울였다.
사람 목소리도, TV 소리도, 무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소리와 정적만 남아 있었다.

“네.”


윤서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만 들으면 여전히 다정했다.

“다행이네요. 지금은… 혼자 계시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

통화를 끊은 뒤, 윤서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봤다.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맞아.

내 생각대로야.

선율이는 지금 혼자다.

지금 선율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윤서는 바로 다시 말하지 않았다.
그 만족감을 숨기듯, 화면만 잠깐 내려다봤다.

지금은 더 밀어붙일 때가 아니었다.
위로한 사람처럼 물러나는 쪽이 더 오래 남는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한 번 쓸어 올려 확인한 뒤,
짧은 메시지 하나만 남겼다.

“오늘은 아무 말 안 하셔도 돼요.
잠깐이라도 쉬세요, 신 경사님.”

문장은 끝까지 다정했다.
그래서 더 안전해 보였다.


윤서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았다.
눈빛은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이제 선율이 쪽에서
침묵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더 깊어진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건
대개 그 생각이 혼자만의 목소리가 되었을 때였다.

윤서는 조용히 웃지 않았다.
대신, 이미 다음 말을 고르고 있었다.


통화가 끊겼다.

선율은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늦게야—숨을 내쉬었다.

그 숨은 안도였고, 동시에—무언가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선율은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한참 바라봤다.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귀 안쪽은 이미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가늘고 날카로운 삐— 소리가, 멀리서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그리고 그 문장이
확신이 아니라 주문처럼 들렸다는 걸
선율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다음: 18장- 4부에서…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의 원활한 열람을 위해 본편(최신 회차) 업로드 일정을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본편 연재 업로드 일정] https://brunch.co.kr/@db311d3a8c094f3

1-3부 구성 챕터: 화~목, 하루 1부씩 업로드

1-4부 구성 챕터: 화~금, 하루 1부씩 업로드

※ 가능한 한 각 챕터는 동일 주 내 업로드를 완료하여 이야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운영하겠습니다.


통합본(정주행용) 업로드 안내 https://brunch.co.kr/brunchbook/np-vol1-26

통합본은 매주 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현재 통합본은 본편 진행 상황 대비 약 2~3 챕터 정도 후행하고 있습니다. 통합본은 정주행 하시는 분들을 위한 아카이브(묶음) 버전으로, 완결된 챕터부터 순차적으로 묶어 업로드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꾸준히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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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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