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3장-2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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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3] 너를 품에 안으면 [3장-2부] — 하늘로 밀려나는 날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3-2)

언제 혼란스러웠다는 듯 소년이 느끼기에 나름 평온했다.

그러나 뉴스는 새 대통령 취임식 등으로 시끄러웠다.

한국을 떠나기 전, 가족은 거의 두 달을 여행만 했다.


아버지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지도책을 펴 놓고,
“여기 한 번.” “여기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일정을 밀어붙였다.


동해부터 서해까지.
이름도 몰랐던 산길.
바다 냄새가 옷에 배는 저녁.
관광지보다 그냥 한국의 표정이 남는 곳들.


차는 한 대로 시작했다가,
친척들이 붙으면 두 대, 많을 땐 세 대가 됐다.

앞차에서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면
뒤차가 헤드라이트를 한 번 깜빡였다.


“다들 잘 따라오고 있지?” “응, 여기야.” 같은 신호였다.

휴게소에 들르면 어른들은 늘 같은 순서로 움직였다.


화장실—세수—물—간식.


그 시절엔 번쩍이는 것도 없었고,
그냥 삶은 달걀이나 어묵 국물, 우유 같은 게
따뜻한 김으로 사람을 붙잡았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꼭 같은 말을 했다.
“미국에 가기 전에 실컷 보고 가자.”
“많이 먹어둬라. 거기 가면 이 맛, 이 냄새… 생각보다 빨리 그리워진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민정이가 떠올랐다.
‘민정이랑 이렇게 돌아다녔으면 어땠을까?’

바닷가에 서 있으면 그 생각이 길게 늘어졌고,
산길을 올라 숨이 찰 때는 더 또렷해졌다.


그런데 또 어느 순간,
사촌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어른들이 웃기 시작하면
소년도 같이 웃었다.


잠깐은 잊었다.
잊었다기보다—잊을 수 있는 척했다.

여행이 끝나갈수록,

어른들의 말에는 점점 “마지막”이 섞였다.

고모는 밥상에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거기 가서 아프지 마라. 밥 꼭 챙겨 먹고.”


삼촌은 웃으면서도, 말끝을 꼭 눌러 말했다.
“꼭 잘 돼서… 너희들 훌륭한 사람 돼서 다시 만나자.”
“그리고… 꼭 다시 놀러 와라. 알겠지?”


누군가는 등을 두 번 두드렸고,
누군가는 손을 오래 잡고 놓지 않았다.

그 말들은 따뜻했는데,
따뜻해서 더 무거웠다.


소년은 그제야 알았다.
이 여행은 놀러 다닌 게 아니라,
아버지가 억지로라도 ‘마지막 기억’을 만들어 주려던 시간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기억이 다 채워졌다고 느낀 날,

가족은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소년이 알던 어떤 공간과도 닮지 않았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랐다.

차갑고 넓고,
사람의 온기가 바로 흩어지는 공기였다.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비행기 엔진이 내는,

낮고 길고 묵직한 울림.

그 진동이 가슴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세계다.”

그 소리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높았다.
시선이 닿지 않는 높이.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아무도 서로를 보지 않았다.


각자 자기 표지판, 자기 줄, 자기 시간만 보고 있었다.

부모님은 소년 앞에 있었다.
아버지는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양복은 그때 흔히 보던 직장인 양복이랑 달랐다.

각이 너무 정확했다. 어깨선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소매 끝도 구김 하나 없이 떨어졌다.


단추는 꼭 끝까지 잠겨 있었고, 넥타이는 한 치도 비뚤어지지 않았다.
머리도—바람맞아도 흐트러지지 않게 눌러 빗어 놓은 듯 단정했다.

겉으론 차분해 보였지만

소년은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 표정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더 무서웠다.


눈은 앞을 보는데, 시선은 어디에도 걸리지 않았다.
주머니 속 손이 자꾸 움직였다.
뭔가를 만지작거리다가 멈추고, 다시 만지작거렸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걸 계속 확인하는 사람처럼.

아버지는 온몸으로 긴장을 참고 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손이 몇 번이나 움직였다.
뭔가를 확인하듯.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조금 달랐다.
세 형제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계속 눈길을 옮겼다.

형을 보고, 동생을 보고, 다시 소년을 봤다.
마치 이 넓은 공간에서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한시도 삼형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그 시선을 느낄 때마다
괜히 어깨를 움츠렸다.

출국 수속 줄은 길었다.

캐리어가 바닥을 긁는 소리.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알아듣기 힘든 안내 방송.

“Final boarding call…”

(자막: 마지막 탑승 안내…)

같은 단어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소년은 뜻을 몰랐다.

뜻을 몰라도—급해지는 분위기만은 알 수 있었다.

줄은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그만큼 뒤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직원이 손끝으로 다음 사람을 가리켰다.

“Next.”
(자막: 다음 분.)

아버지가 여권을 내밀었다.

직원의 손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표정은 없고, 동작만 정확했다.

도장.
쿵.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소년의 가슴 안에서도

같은 소리가 한 번 더 울린 것 같았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소년은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친척도, 친구도, 민정이도.

이별은 이미 끝난 뒤였다.


소년은 그제야 실감했다.
자기가 울고 있는 게 아니라,
여태껏 알고 지내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비행기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 다른 얼굴,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냄새.


소년은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손잡이를 쥔 손에 땀이 찼다.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위—잉...

웅—
웅웅—

기체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치 “괜찮다”를 입술로 고정해 둔 사람처럼.


“곧 이륙합니다.”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소년은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천천히.
그다음엔 점점 빨라졌다.

창밖의 불빛들이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몸이 갑자기 뒤로 눌렸다.
심장이 목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소년은 손잡이를 꽉 잡았다.


무서웠다.

그런데 더 강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상한 공허함.

발밑에서 땅이 떼어지는 느낌.

소년은 알았다.

이건 여행이 아니다.
도망도, 선택도 아니다.
이건—
밀려나는 거다.


하늘 위로 올라간 뒤에도 시간은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자다 깨도 여전히 하늘이었고

몇 번을 눈을 떠도 창밖은 같은 어둠이었다.

소년은 시계를 봤다.

서울 시간과 뉴욕 시간은 서로 어긋나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슬펐다.

마치 자기 시간이 어딘가에 놓고 온 것처럼 느껴졌다.


기내 영화가 흘러나왔다.
화면 속 사람들은 웃고, 울고, 싸우고 있었다.

소년은 그걸 멍하니 봤다.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만
차갑게 느껴졌다.


드디어 비행기가

소년이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도시 위를 지날 때,

소년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건물들.

세상은 그가 알던 것보다 훨씬 크고, 차갑고, 빽빽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

아, 여기가… 미국이구나.
그 생각이 떠올랐지만
가슴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기쁨도, 설렘도 없다.

그저 텅 비어 있었다.


소년은 아직 몰랐다.

이 비행이 목적지로 향하는 게 아니라,
사람 대신
‘반응’을 믿게 되는 세계로
이동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다음: 3장-3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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