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3/4] 너를 품에 안으면 [19장-3부] —고다인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9-3)
텍사스의 조용한 거실에서 튀던 화면이—
한 박자 늦게, 한국의 촬영장으로 넘어갔다.
촬영장은 늘 시끄러운데—
쉬는 시간만큼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카메라가 내려가고, 조명이 꺼지고,
스태프들이 숨을 고르는 그 짧은 틈.
고다인(본명: 고은정)은 대기 의자에 앉아
담요를 무릎까지 끌어올렸다.
겨울은 아니었는데, 촬영장 바람은 늘 차갑다.
특히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혼자일 때는 더 느꼈다.
메이크업팀이 얼굴을 한 번 더 눌러주고 지나갔다.
[메이크업] “다인 씨, 잠깐만요. 오늘 조명이 세서 유분이 조금만 떠도 바로 잡혀요.
파우더 한 번만 얹을게요.”
[고다인] “네.”
[메이크업] “조명이 세서 금방 떠요. 코 옆이랑 이마만 조금 더 할게요.”
[고다인] “…….”
[메이크업] “좋아요. 움직이시면 다시 떠요. 바로 들어가실게요.”
대답은 나왔는데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고다인은 물병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느낌도 없었다.
대기실 문 너머에서 매니저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낮게 눌러 말하는 목소리가 문틈으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평소라면 들리지 않을 말을—
오늘은, 다인이가 원치 않아도 다 들었다.
[매니저] “아니, 아직 기사화는 안 됐어요.”
[매니저] “근데 댓글 반응이… 네, 확산 속도가 좀….”
다인이는 시선을 내렸다.
휴대폰 화면은 이미 잠금 해제돼 있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습관처럼 SNS 알림을 눌렀다.
알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친구들한테서—쏟아졌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습관처럼 SNS 알림을 눌렀다.
0.5초도 안 돼서
화면 위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DM.
멘션.
댓글.
단체방.
부재중 전화.
친구들 알림이 아니라—
세상이 들이닥친 느낌이었다.
‘다인아 너 괜찮아?’
‘이거 뭐야… 너 맞아?’
‘누가 올린 거야?’
‘지금 당장 해명해.’
‘진짜 실망이다.’
읽을수록 손이 얼었다.
그 사이에 섞여 들어온 말들.
‘근데 저 남자 누구야?’
‘남친이야?’
‘저 남자 존잘인데…’
‘설마 원나잇?ㅋㅋ’
‘야ㅋㅋ 남친 있었어? 왜 숨김’
ㅋㅋ가 붙은 게 더 소름이었다.
알림 숫자가 계속 뛰었다.
99+.
새로고침을 안 해도
새로고침이 됐다.
그리고—
누가 이미 캡처해서 퍼뜨리고 있었다.
다인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멈췄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끝이 떨렸다.
처음엔 사진 한 장이었다.
테이블 위엔 크리스털 잔들이 각자 다른 높이로 빛을 받았다.
샴페인 플루트엔 기포가 아직 살아 있고, 로우볼 잔엔 큰 얼음 한 덩이가 천천히 녹았다.
옆엔 라벨이 번쩍이는 싱글몰트와 코르크를 다시 꽂아둔 와인.
옆에서 누군가의 팔이 고다인의 어깨에 걸쳐 있는 듯한 각도.
다음은 짧은 영상.
흔들리는 화면.
누가 뒤에서 몰래 찍은 것 같은 시선.
그게 더 끔찍했다.
“누가 의도적으로 몰래 찍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원래 이런 애인데 우연히 찍혔다”는 느낌이었다.
다인이는 화면을 꺼버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머릿속에 프레임이 박혔다.
짧은 영상 속 웃는 표정.
술잔을 들었다 내려놓는 손.
남자 목소리.
뒤엉킨 그림자.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고
사람들이 말하고
사람들이 저장하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다는 게 중요했다.
다인이는 손바닥으로 휴대폰을 덮었다.
눈을 감았다.
“나 아니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이 먼저 움직였다.
한 번 더. 더 작게.
“그건 내가 아니라고…”
속으로 말해도, 몸이 그 말을 안 믿었다.
심장이 먼저 이상하게 뛰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스태프] “다인 씨, 10분 뒤에 리허설 들어갈게요!”
[고다인] “네….”
대답은 했는데, 얼굴이 굳어 있었다.
매니저가 통화를 끊고 고다인 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평소에 쓰던 “괜찮아, 별거 아니야” 얼굴이 아니었다.
눈이—이미 싸움을 준비한 눈이었다.
[매니저] “다인아.”
[고다인] “…네.”
[매니저] “지금 네 폰 보여줘 봐.
어떤 계정에서 퍼지고 있는지 봐야겠어.”
다인이는 잠깐 멈췄다.
그 말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말이 아니라,
확산 경로를 먼저 잡으려는 말이라서.
다인이는 억지로 폰을 내밀었다.
매니저는 화면을 보자마자 이를 악물었다.
[매니저] “미친… 이거 편집, 조작된 것이잖아.”
[매니저] “근데… 굉장히 그럴듯하게 만들었네.”
[매니저] “요즘은 이런 거… 딥페이크로도 금방 만들어.”
다인이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매니저를 바라봤다.
[고다인] “편집… 이요?”
[매니저] “그래. 근데 너 알지?”
[매니저] “사람들은 ‘편집, 조작’이란 말 자체를 잘 안 믿어.”
[매니저] “보고 싶은 것만 보잖아.”
고다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 안쪽이 따끔하게 찢기는 느낌이 났다.
[고다인] “오빠… 나 진짜 아니에요.”
매니저가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는 고개가 아니라, “알아, 근데”라는 고개였다.
[매니저] “나도 알아.”
[매니저] “근데 이게 지금 터진 타이밍이 너무 이상하고 느낌이 안 좋아.”
[매니저] “지금 너 쉬고 있잖아. 촬영하고 쉬는 이때와 이 시간을...”
[매니저] “누구인지는 물라도 이것들이 노리는 게 딱 그거야.”
다인이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노린다...
“악플”이 아니라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올리는 가짜 사진과 영상.
다인이의 목이 말라왔다.
숨을 들이마셔도 목 안쪽이 바짝 말랐다.
컵을 들어 물을 삼켰다.
차갑게 넘어갔는데도, 갈증은 그대로였다.
몇 모금 더. 그래도 안 풀렸다.
마시는 건 물인데—
마르는 건 계속, 공기였다.
[고다인] “누가… 왜…”
매니저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매니저] “지금은 이유가 중요하지 않아.”
[매니저] “대응이 먼저야.”
[매니저] “회사랑 얘기했고, 법무팀 움직이고 있어.”
고다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쪽이 더 무너졌다.
법무팀.
대응.
공식입장.
그 단어들이 무서워졌다.
그 말은 곧, 이게 ‘없는 일’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일’이 됐다는 뜻이니까.
다인이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문자.
모르는 번호.
다인이의 손이 굳었다.
매니저가 먼저 봤다.
잠깐의 정적.
[매니저] “이거… 너 번호 어디서 알았지?”
다인이는 입을 열지 못했다.
매니저가 화면을 고다인에게 돌려줬다.
짧은 문장 하나가 떠있었다.
“카메라 앞이랑 뒤가 다르네.”
다인이는 숨을 멈췄다.
또 울렸다.
이번엔 다른 계정.
다른 번호.
같은 냄새.
“설명해 봐. 우리가 다 봤거든.”
그때 다인이는 마치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건 소문이 아니라—접근이었다.
그때, 알림이 하나 더 떠올랐다.
또 다른 사진 몇 장.
방금 전까지 고다인이 앉아 있던 그 대기 의자.
담요를 무릎까지 끌어올린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
근데 이상했다.
그 순간의 공기보다, 표정이 더 ‘연출’ 같았다.
캡션이 붙어 있었다.
‘촬영장에서도 스태프 무시하는 표정’
‘대기실에서 스태프들에게 욕설뒤 갑질하고 쉬는 중’
다인이의 손끝이 다시 떨렸다.
자기 눈앞의 장면이—이미 다른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매니저가 다인이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었다.
[매니저] “지금부터 네 폰 내가 들고 있을게.”
[매니저] “너는 촬영만 해.”
[매니저] “표정 관리. 최대한.”
다인이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속이 내려앉았다.
그때, 스태프가 다시 외쳤다.
[스태프] “다인 씨! 리허설 들어갈게요!”
다인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가 잠깐 휘청했다.
촬영장으로 걸어가는데,
다인이의 머릿속엔 한 장면만 계속 재생됐다.
어두운 조명.
흔들리는 화면.
VIP룸 안에서—
어떤 남자의 품에 기대듯 안겨, 술에 취한 채 웃고 있는 자기 얼굴.
다인이는 화면을 한 번 더 확대했다.
… 분명 자기였다.
같은 머리.
같은 옷.
같은 얼굴.
대기실에서 스테프에게 갑질하는 모습.
진짜가 아닌데—
너무 진짜처럼 보이는 얼굴.
다인이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한 번 해명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한 번 사과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건…
사람들의 머릿속에 “나”를 새로 심는 작업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지금, 아주 꾸준히 하고 있다.
다인이는 카메라 앞에 섰다.
감독이 외쳤다.
“레디—액션.”
고다인은 웃었다.
배운 대로.
프로처럼.
하지만 그 웃음 뒤에서,
휴대폰 화면이 계속—
자기 이름을 찢고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인이 휴대폰이 손바닥 아래에서 다시 진동했다.
화면은 보지 않아도 알았다.
이미 끝났다. 퍼졌다.
문틈으로 바깥소리가 스며들었다.
누군가 급하게 걸어오는 소리, 낮게 섞인 통화, 그리고…
짧고 날카로운 플래시 셔터음 같은 것.
그때였다.
잠긴 화면 위로, 알림 하나가 얇게 떠올랐다.
[속보] 고다인, 오늘 오후 4시 긴급 기자회견… “직접 입장 밝힌다”
다인 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들어온 공기는 차갑게, 목 안에 걸렸다.
손바닥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문이 열렸다.
[매니저] “다인아,. 지금… 내려가야 돼.
그냥 너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너 아니라고만 말하면 돼."
[매니저] "나머지는 오빠랑 회사 측에서 알아서 할게."
그리고, 복도 끝에서 또 한 번 셔터가 터졌다.
이번엔 소리가 아니었다.
‘사냥’ 같은 빛이었다.
다인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뭘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그 대답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밖은 이미 결론을 쓰고 있었다.
—다음: 19장-4부 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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