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2/4] 너를 품에 안으면 [19장-2부] —손과 그림자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9-2)
텍사스의 하루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윤서는 커튼을 반쯤만 열어 둔 채, 창밖을 오래 봤다.
휴대폰 화면엔 마지막 통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동현.
뉴욕.
오늘 저녁 출발.
윤서는 한 번도 “조심해서 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위로다.
윤서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그녀의 복수를 ‘도와줄 손발’이었다.
잠금 화면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현] “누나. 나 공항 도착.”
[동현] “근데… 택시 잡기 전에 주소 다시 보내줘.”
윤서는 주소를 길게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
그리고 한 줄을 덧붙였다.
[윤서] “도착하면 초인종 누르지 말고 문자로 왔다고 알려줘.”
[동현] “왜?”
[윤서] “질문하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만 해.”
윤서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거실 테이블 위를 다시 확인했다.
노트북 두 대.
충전기.
프린트된 캡처 자료.
외장 저장장치 하나.
그리고—손때가 거의 묻지 않은 새 계정 메모.
집은 깔끔했다.
깔끔한데… 생활감이 없었다.
사람이 살기보다는 누가 잠깐 머무는 공간 같았다.
그게 윤서에게는 편했다.
—
한 시간쯤 지났을까.
밖에서 차가 서는 소리가 났다.
윤서는 창가로 가지 않았다.
커튼도 더 열지 않았다.
그 대신 현관 옆 작은 화면을 켰다.
현관 카메라.
화면 속에 택시가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내렸다.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이 얇게 떨렸다.
어깨가 내려앉아 있고, 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옷은 싸구려 티가 났고, 신발은 많이 닳아 있었다.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꺼져 있었다.
동현이었다.
동현은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 오는 동네의 조용함이 어색한 사람처럼.
그리고 현관 앞에 섰다.
초인종에 손이 갔다가 멈췄다.
윤서가 보낸 문자가 떠오른 듯,
동현은 휴대폰을 꺼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동현] “누나 나 지금 문 앞이야.”
윤서는 문을 열기 전에,
현관문 잠금장치 위에 달린 작은 금속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습관이었다.
누가 따라왔는지, 누가 근처에서 멈췄는지.
그런 건—나중에야 의미가 생긴다.
윤서는 문을 열었다.
공기가 먼저 들어왔다.
그 뒤로 동현이 들어왔다.
[동현] “누나…”
윤서는 한 걸음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짧게 말했다.
[윤서] “왔어.”
동현은 웃으려다 실패했다.
입술이 떨렸고, 눈이 빨리 깜빡였다.
[동현] “진짜… 누나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현의 목이 잠겼다.
윤서는 그걸 모르는 척했다.
감정이 올라오면, 계획한 일이 늦어진다.
윤서는 동현의 캐리어를 한 번 보고 말했다.
[윤서] “짐은 저 방에 둬.”
[동현] “누나… 나 지금 상태가 좀… 그렇지.”
[윤서] “상태 얘기는 샤워하고 나와서 해.”
동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캐리어 바퀴 소리가 복도를 긁고 지나갔다.
윤서는 문을 닫고 잠금을 걸었다.
두 번.
한 번 더 확인.
—
30분 뒤.
동현이 나왔다.
머리는 젖었고, 얼굴은 더 말라 보였다.
그런데 눈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살기 위해 굴러온 눈.
동현이 거실 테이블 위 물건들을 보고 바로 이해했다.
[동현] “이제… 정말 시작하는구나.”
윤서는 앉지도 않은 채 말했다.
[윤서] “그래.”
[윤서] “근데 네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면 바로 들켜.”
동현이 눈을 들었다.
[동현] “뭔 소리야. 요즘 AI로 합성만 잘하면—”
윤서는 잘랐다.
[윤서] “너무 완벽하게 잘하면 들켜.”
[윤서] “어떤 사람들은 완벽한 걸 의심해.”
[윤서] “특히 경찰은 더.”
동현은 잠깐 말이 없었다.
윤서는 테이블 위 프린트 하나를 펼쳤다.
고윤아.
그리고 윤서.
서로 다른 사진인데,
같은 장면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 구도들.
윤서는 손가락으로 딱 두 군데만 짚었다.
[윤서] “이런 느낌으로 해 봐.”
[윤서] “너무 예쁘게 만들지 마.”
[윤서] “그냥 평범하게 익숙하게 만들어.”
동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동현] “평범하고 익숙하게…”
윤서는 경찰서에서, 자신을 투자사기로 엮어 쓰기 위해 만들어진 증거자료—
자신의 가짜 영상들을 떠올렸다.
[윤서] “사람들이 믿는 건 ‘고화질’이 아니야.”
[윤서] “우선 단순한 캡처면 될 거야.”
[윤서] “흔들린 손.”
[윤서] “저화질 영상통화처럼 보이는 화면.”
[윤서] “누가 급하게 저장한 것 같은 흔적.”
동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일하는 눈”이 올라왔다.
[동현] “누나… 너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윤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설명이 되고, 설명은 빈틈이 된다.
윤서는 노트북을 켰다.
폴더 하나를 열었다.
[윤아-윤서]
그 안엔 파일이 세 개 있었다.
friend_01
friend_02
friend_video_short
동현이 화면을 보자마자 숨을 들이쉬었다.
[동현] “이건… 누나가 벌써 정리해 둔 거야…?”
[윤서] “응, 샘플 몇 개 만들어봤어.”
[윤서] “지금부터는 네가 완성해.”
동현이 손을 뻗었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살아남는 얼굴이었다면,
지금은—무언가를 만드는 얼굴이었다.
동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현] “근데 누나.”
[동현] “우리가 그 경찰한테 뭘 보여주는데?”
윤서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 둔 세 줄을 꺼냈다.
[윤서] “나, 고윤아와 절친 사이.”
[윤서] “딸, 고은정(활동명:고다인).”
[윤서] “그리고 연결고리.”
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현] “오케이, 먼저 고윤아랑 누나가 절친인 것처럼 먼저 박는다.”
[동현] “그다음은 은정이가 스토커랑 투자사기로 무너지는 ‘사정’을 얹고.”
[동현] “그 사기가 그 경찰이 수사 중인 동남아 조직이랑 닮아 있다.”
윤서는 아주 낮게 말했다.
[윤서] “그래 우선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동현이 멈칫했다.
[동현] “그럼 두 번째가 뭐야?”
윤서가 화면을 가리켰다.
폴더 이름을 한 번 더, 또박또박 읽게 하듯.
[고윤아-최윤서]
[윤서] “너는 우선.”
[윤서] “첫 번째 계획대로 나랑 윤아가 절친인 것처럼 만들어.”
[윤서] “내가 저장해 놓은 사진들을 이용하고.”
[윤서] “그다음은 저장해 놓은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봐.”
[윤서] “사람들이 ‘원래 우리 둘 사이가 저랬다’고 착각하게.”
동현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윤서의 다음 말을 듣고 눈이 커졌다.
윤서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윤서] “그리고 고은정, 다인이.”
[윤서] “카메라 앞이 아니라—카메라 뒤.”
[윤서] “클럽 VIP룸에서 남자들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노는 것처럼 만들어.”
[윤서] “술.”
[윤서] “담배.”
[윤서] “남자들이랑 엉켜 있는 장면.”
[윤서] “대중이 믿든 말든, 우선 시작해 봐.”
동현이 침을 삼켰다.
[동현] “누나… 그건 너무…”
윤서는 끊었다.
[윤서] “청순은 ‘사람’이 아니야.”
[윤서] “이미지야.”
[윤서] “그리고 이미지는—노출로 바뀐다.”
동현의 눈이 흔들렸다.
윤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윤서] “처음엔 의심부터 시작해서 욕하겠지.”
[윤서] “근데 계속 보게 만들면.”
[윤서] “사람들은 결국 ‘저런 애였나 보다’로 넘어가.”
[윤서] “그 순간부터, 쟤는 숨만 쉬어도 의심받게 돼 있어.”
동현이 낮게 말했다.
[동현] “국민 여배우 딸… 그 이미지가…”
[윤서] “그래.”
[윤서] “그걸 먼저 부러뜨려.”
[윤서] “엄마를 치기 전에.”
[윤서] “딸부터 흔들어놔야 돼.”
[윤서] “대중이 믿든 안 믿든, 우선 시작해.”
동현의 손이 잠깐 멈췄다.
키보드 위에서 허공을 떠돌았다.
[동현] “누나…”
[동현] “내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대중이 안 믿을 텐데.”
윤서는 바로 말했다.
[윤서] “알아.”
[윤서] “처음엔 그러겠지.”
동현이 윤서를 바라봤다.
윤서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윤서] “근데 계속 뿌려.”
[윤서] “그 이미지를 사람들이 계속 보게 만들어.”
[윤서] “사람은 ‘믿음’보다 ‘노출’에 먼저 길들어.”
[윤서] “무의식이라는 게 있어.”
[윤서] “은정이를 떠올릴 때—그 장면이 같이 떠오르게 돼.”
동현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윤서는 끝까지 말했다.
[윤서] “TV에서 물건 팔려고 광고 연속으로 때리잖아.”
[윤서] “그 효과를 이용해 보는 거야.”
[윤서] “계속 이어지다 보면… 윤아보다.”
[윤서] “그 년의 딸, 은정이가 먼저 흔들릴 거야.”
동현은 윤서를 소름 돋는 얼굴로 쳐다봤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동현] “누나… 너 지금…”
[동현] “진짜로 사람 하나를… 망가뜨리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윤서는 짧게 웃었다.
웃음인데, 온도가 없었다.
[윤서] “사람은 이미 자기 약점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어.”
[윤서] “난 그냥—그 방향만 잡아주는 거야.”
동현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현] “난… 누나랑 이름이 비슷한 것만으로도 저년이 싫어.”
[동현] “자매 사이도 아니고… 근데 그냥.”
[동현] “싫어.”
윤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저, 한 문장만 던졌다.
[윤서] “그래 넌 그 감정으로 해.”
[윤서] “그게 제일 오래 가.”
동현이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려다, 입안에서 오래된 분노가 먼저 튀어나왔다.
[동현] “누나가 그 X발년한테 밀려나지만 않았어도…”
[동현] “누나나 난 진짜… 이렇게 살진 않았을 거야.”
윤서는 그 말을 끊지 않았다.
그 감정이 동현을 움직이게 한다.
윤서는 테이블 끝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말했다.
[윤서] “좋아.”
[윤서] “오늘은 ‘관계’부터 완성해 봐.”
[윤서] “윤아랑 내가… 오래된 절친처럼.”
동현은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마치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동현] “사람들은… 진짜보다, 진짜처럼 보이는 걸 먼저 믿지.”
윤서는 대답 대신 창밖을 봤다.
햇빛은 건조했고, 그림자는 선명했다.
그때, 윤서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윤서는 받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가 떴다.
“아직도 그 이름을 쓰고 있네.”
그리고—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엔 끊지 않았다.
윤서는 화면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서] “말해.”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는 낮고, 감정이 없었다.
[그림자] “대상, 지금 이동했습니다.”
[그림자] “일정은 그대로고요. 주변 반응도 그대로입니다.”
윤서는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윤서] “우선 아무거나 괜찮은 것으로 보내봐.”
[그림자] “네, 영상 두 개. 사진 네 장바로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림자] “오늘도 ‘그 이름’으로 보내드릴까요?”
윤서가 아주 짧게 말했다.
[윤서] “그래.”
[윤서] “근데 너무 깨끗하면 버려.”
[윤서] “캡처처럼 찍힌 것만 골라서 보내 봐.”
[윤서] “급하게 저장한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잠깐 정적.
[그림자] “알겠습니다 실장님.”
윤서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윤서] “그리고… 다인이.”
[윤서] “걔 손버릇. 표정. 습관까지 어떤지 알려줘.”
[윤서] “그래야 진짜처럼 보이게 여기서 만들 수 있어.”
[그림자]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윤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면을 꺼버렸다.
동현이 눈치챘다.
[동현] “누나, 누구야?”
[동현] “혹시 예전에 누나가 썼던 그 기자야?”
윤서는 화면을 꺼버렸다.
표정은 그대로였다.
[윤서] “넌 신경 쓰지 마, 지금은 상관없어.”
[윤서] “하던 거나 계속해.”
동현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윤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누가 보고 있다.
누가 알고 있다.
근데 윤서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시작했으니까.
윤서는 조용히 폴더 이름을 바꿨다.
[윤아-윤서] → [증거]
그리고 그 아래에 새 파일을 하나 만들었다.
[익명 제보 초안]
윤서는 파일을 열지 않았다.
오늘은 ‘관계’를 완성하는 날이다.
윤서는 뒤에서 동현의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자료는 곧 준비되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선율이 그걸 ‘진짜’라고 믿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
믿는 순간—
그는 스스로 걸어 들어올것이다.
움직이는 순간, 그가 믿게 될 건
진실이 아니라—정황이다.
그리고 그 정황은
지금, 이 방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음: 19장-3부에서…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안내]
본 작품 **『너를 품에 안으면』**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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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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