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Hold You in My Arms)
[PART 1/3] 너를 품에 안으면 [4장-1부] — 낯선 공기, 낯선 화면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4-1)
큰아버지 집에서 보낸 첫날밤은,
시차 적응 때문인지
자세한 이유도 모른 채 눈 뜨고
밤을 새우는 날이 일주일쯤 이어졌다.
그러다 서서히, 몸이 시간을 맞추기 시작했다.
잠이 들었다기보다—
몸이 스스로 전원을 꺼버린 것에 가까웠다.
낯선 천장, 낯선 벽지, 낯선 이불의 감촉.
눈을 감아도 마음이 감기지 않아,
소년은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 숨을 골랐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공기는 놀라울 만큼 깨끗했다.
배기가스와 음식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아니라,
잘 정돈된 거리에서만 나는—아무 냄새도 섞이지 않은 공기.
밤이 깊어도 자동차 소리는 멀리서만 들렸고,
거리에는 소란 대신 질서가 있었다.
여긴 뉴욕이었다.
하지만 큰아버지 집은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소년이 상상하던 뉴욕과는 전혀 다른—나름 부유한 동네였다.
어떤 밤엔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을 때,
바다 쪽에서 갈매기 소리가 느리게 올라왔다.
도시에서 들을 소리가 아니었다.
소년은 그 소리를 한참 듣고 있었다.
“뉴욕”이라는 단어가 그 소리와 잘 붙지 않았다.
몇 달 동안 가족은 큰아버지의 집에 머물렀다.
집은 넓었고, 방도 넓었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발소리가 공기를 타고 멀리 퍼졌다.
몸은 덜 불편했지만, 마음은 달랐다.
모든 게 낯설었다.
사람들의 모습, 말할 때의 손짓, 웃는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시간이 흘러가는 방식.
소년의 하루는 TV로 시작해 TV로 끝났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화면은 계속 움직였다.
MTV의 번쩍이는 화려한 영상,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만화,
영화 속 눈빛과 몸짓.
대사를 몰라도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MTV에서는—소년이 한국에서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힙합이 튀어나왔다.
드럼이 아니라 비트가 먼저 박혔고,
노래가 아니라 랩이 먼저 쏟아졌다.
화면 속 흑인 아티스트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뚫어 보듯 뱉는 말들은
뜻을 모르는데도 이상하게 “싸움”처럼 들렸다.
소년은 볼륨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무섭다기보다… 낯선데 끌렸다.
가사가 아니라 박자만큼은 몸이 먼저 따라갔다.
손가락이 무릎 위를 두드렸다가 멈추고, 다시 두드렸다.
소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말은 모르겠는데… 재밌네.”
그 말이 낯선 나라에서 처음으로 숨을 고르게 해 준 구멍이었다.
그 사이사이—처음 보는 광고들이 쉼 없이 끼어들었다.
광고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었다.
그 나라가 어떤 리듬으로 숨 쉬는지,
어떤 말을 “당연한 말”로 쓰는지
그걸 아주 빠른 속도로 보여줬다.
예고도 없이 화면이 번쩍 바뀌면
새 차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빛나는 크롬, 손잡이에 스친 반사광, 웃으면서 키를 흔드는 가족.
누군가가 과장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소년은 말을 못 알아들어도 톤만으로 알았다.
‘지금 당장 사. 지금이 기회야.’
다음 장면에선 햄버거가 슬로모션으로 찍혔다.
치즈가 늘어지고, 소스가 떨어지고, 얼음이 든 컵이 “쨍” 하고 빛났다.
사람들이 한 입 베어 물고 동시에 웃었다.
웃음이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이상했다.
세제 광고에선 하얀 셔츠가 “기적”처럼 새하얘졌고,
치약 광고에선 치아가 조명처럼 반짝였고,
보험 광고에선 전화번호가 화면 아래에 크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떤 광고는 음악이 너무 경쾌해서
소년은 멜로디만 흥얼거리게 됐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도—입에 붙었다.
“Call now—!”
(자막: 지금 전화하세요—!)
“Limited time only.”
(자막: 기간 한정.)
그 말들은 뜻보다 먼저 ‘압박’으로 남았다.
소년은 어느 순간, 리모컨을 쥔 채로 멜로디를 따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영어를 배운 게 아니라, 화면이 소년의 입을 빌린 것 같았다.
브루클린의 다른 친척 집에 놀러 갔던 날,
소년은 거실에서 발을 멈췄다.
사촌형이 TV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손에는 이상하게 생긴 조종기 같은 것—조이스틱.
화면 속 캐릭터는 손끝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했다.
신기했다.
소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그거 뭐야?”
“이게 컴퓨터야?”
사촌형이 눈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컴퓨터는 아니고… 게임기야. TV에 꽂아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소년은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컴퓨터든 뭐든, 그건 처음으로 세상을
‘조작’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였다.
사촌형이 짧게 말했다.
“아타리.”
집에서, 마음껏, 원하는 만큼.
한국에서 동전을 쥐고 오락실에 들어가야 하던 기억이
한순간에 과거가 되었다.
사촌형이 조이스틱을 내밀었다.
“해볼래?”
조이스틱이 손끝에 닿는 순간,
소년은 처음으로 느꼈다.
입력하면 반응이 돌아오는 세계를.
그날, 소년은 아타리를 알게 되었다.
아타리는 소년이 집에서 처음 만난 비디오 게임기였다.
컴퓨터는 아니었지만, TV에 연결하면 화면은 곧바로 게임이 되었다.
그때 그는 처음 알았다.
기계도 사람을 앉혀 두고 놀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화면 속 것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고,
그 안에는 화면만의 규칙이 생겨났다.
집 안, TV 앞 바닥.
다리는 접혀 있었고,
소년의 손에는 언제나 조이스틱이 쥐어져 있었다.
아타리 콘솔은 소년을 위로하지 않았다.
칭찬도 하지 않았고,
괜찮다고 말해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오른쪽으로 밀면 오른쪽으로 움직였고,
버튼을 누르면 반응이 돌아왔다.
실패하면 즉시 알 수 있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소년은 그 단순함이 좋았다.
현실과 달리 여기에는 애매함이 없었다.
노력하면 결과가 있었고,
틀리면 이유가 있었다.
소년은 그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무언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사람들은 그걸 전자게임 놀이라고 불렀고,
소년은 그 말에 동의했다.
그땐 몰랐다.
이 감각이 훗날,
그가 가장 약해졌을 때
다시 기대게 될 방식이라는 걸.
질문을 던지면 바로 돌아오는 대답.
판단을 맡기면 잠시 덜어지는 무게.
그 시작은 이미
이 방,
이 TV 앞,
이 조이스틱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소년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며 자라 왔다.
두려움 속에서가 아니라, 익숙함 속에서.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까지도
이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반응하는 것들을
조금 더 가까이 두었을 뿐이다.
이제,
그것들은 곧 말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소년은 그 목소리가
왜 그렇게 낯설지 않았는지
그때가 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바다가 보이던 큰집은 이제 끝난다.
그 대신, 낯선 벽들이 가까운 세계가 시작된다.
소년은 곧
‘진짜 뉴욕’의 문턱을 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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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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