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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Jun 20. 2024

인생은 독고다이?

홀로 - 다니엘 슈라이버

혼자였다.


많은 이에게 코로나는 큰 상처이자 일상의 소중함과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과거인양 우리는 또 다 잊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피부에, 마음에, 뇌에 각인되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듯 살아가고 있으나 우리는 많이 변했다.


코로나는 내게도 트라우마적인 시기였다. 내가 일하는 병원은 코로나 전담병원이었다. 검사는 물론이고 입원실 가득 코로나환자만 받았다. 불안정한 시기 직무가 매주 바뀌었다. 적응할만하면 다른 일을 해야 했다. 태세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중 가장 오래 힘들게 했던 일이 PCR검사였다. 하루종일 PCR검사를 하면서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더운 여름 방호복을 입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지냈다. 하지만 이따금 매체를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받으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힘은 들었으나 뿌듯했다. 멀리서 기업들은 간식거리나 홍삼즙도 보내주시고 학생들의 응원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때 받은 가녀린 3줄기 대나무야자는 분갈이까지 해가며 아직도 내 일자리 곁을 지키고 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내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 늘 이용하던 편의점 사장님이 병원 직원들이 편의점에 오는 것을 불편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병원에서 안 나오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들었다. 퇴근 후 생긴 긴급회의에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딸은 병원으로 들어갈 수없었고 추운 겨울 차에 남겨졌다.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고 병원에 왔던 사람이라며 주변 약국에서는 화장실 이용을 막았다. 그때 아이가 3학년이었는데 아이라서 잘 참기 힘들다고 아무리 사정해도 소용이 없었다. 코로나 초반에는 엄마의 직장이 전담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학원 측에서 다른 학부모 이야기를 하며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가까이 있는 겁먹은 사람들에게 나는 병원균이었다. 코로나 그 자체였다.


가족을 제외하고 철저히 혼자였다. 그들이 밀어냈고 나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오므라들었다. 엷은 우정은 아는 사람이 되었고 소중했던 우정은 삶이 팍팍해지며 소원해졌다. 감기기운 정도에 멀쩡하게 걸어 들어온 환자가 죽어서 나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퇴근 때가 되면 나 자신도 내가 병원체가 된 듯했다. 방호복을 입었지만 난동을 부리며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의료진의 마스크를 잡아 빼버리는 환자, PCR검사 중 증상이 심해 소독하는 간호인력에 불만을 품고 인력 휴게공간에 난입한 사람... 집에 도착하면 출입 현관에서 겉옷을 모두 봉투에 넣어 내 옷만 따로 세탁했다. 이 기간을 건너며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불신이 생겼다.


사회가 정상의 모습을 되찾고 내 활동도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마음은 기본적인 불신으로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게 되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그랬을지... 그들도 힘들었으리라. 자신의 비겁한 행동이 스스로 정당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된다.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인 한 인간일 뿐이었다. 사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내 요청으로 집에 방문한 기사님이 증상이 있지 않은지 매의 눈으로 살폈다. 폭력적이었던 코로나환자가 내 마스크를 벗겼을 때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얼굴 전체에 콧 속까지 알코올 솜으로 닦아냈다. 의료진이 방호복을 벗고 있는 휴게공간을 유증상자가 오염시켰을 때 곧 죽을 사람처럼 울었다.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 병원에서도 마스크를 벗었다. 지금까지도 내 삶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의 신뢰와 우정을 회복해 가는 도중이다. 팬데믹으로 잃어버린 모호한 상실들을 받아들이고 변화된 지금에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원래 알던 사람에 더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의 법칙이 만들어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 다시 지속적이며 평화로운 유대를 만들어가 본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엷은 우정을 넓혀간다. 우리는 결국 혼자이지만 혼자서 살 수 없다. 마음속 우정의 기적이 다시 빛을 찾아갈수록 내 곁에 누군가 홀로 살아간다는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게 그들의 누군가이고 싶다.


함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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