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책 제목을 보면 70% 정도는 어떤 책인지 직감할 수 있다. 친구 손에 들려있던 이 책 "우정 도둑"을 보고 도무지 감이란게 오지 않았다. 하얀 표지에 정직하게 적힌 '우정 도둑, 유지혜 산문집' 첫 만남은 '이거 뭐지?'였다. 친구가 자랑하듯 펼쳐 보여준 그야말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현은 놀라움과 함께 반감을 가져왔다.
'뭘 이렇게 어렵게 써놨지?'
어렵다기 보다 눈동자의 흐름을 머리가 못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읽는 데 자꾸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러면서도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바로 프롤로그 때문이었다.
독자는 훔친 이야기를 팔아넘긴 작가의 공범이다.
당신에게 없는 것이 내게 있어요. 이걸 드릴 테니, 당신은 나에게 없는걸 주실래요?
그렇게 우정이 시작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서로에게 몰래 훔치며, 당신에게 없는 것으로 인해 당신은 완벽해진다.
당신은 우정 도둑이다.
-프롤로그-
남의 이야기를 훔친 작가는 도둑이고 그걸 읽는 독자는 이제 공범이자 친구, 우정 도둑이라는 말이 순간 감탄사 말고 다른 생각을 막아버렸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그 사이를 기다릴 수 없어 오디오북으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디오북으로 2번, 종이책으로 한번 읽었다.
프롤로그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독서는 부러움으로 옮겨갔고 3번을 읽으며 어느 부분으로도 내면화하지 못하고 부러움으로 끝내 책을 덮었다. 그 부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첫 번째 부러움은 책에 담긴 진심이었다. 현재로 치면 나도 책은 많이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데 나이도 많지 않은 저자의 책 이야기 앞에 내 독서는 근본이 없어 보였다. 에밀리 디킨슨에서 시작된 책 사랑은 카뮈로 건너가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인 니체부터 니체가 반한 루 살로메에 또 그의 연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 인연들과 인연들의 생각이 담긴 책을 지난다. 카뮈와 사이가 안 좋은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인물 트리에 걸린 책을 가슴에 담고 페미니즘으로 넘어와 그 중심의 인물을 모두 책으로 만난다. 그녀의 독서는 그야말로 시대도 장소도 초월했다.
당신은 이렇듯 책과 책 사이에 이미 연결되어 있는 고리들을 탐험하며 현실을 성실히 지나친다. 당신은 깨닫는다. 역사는 그들의 글로 조각되어 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끈질긴 기록의 다른 이름이 바로 책이었던 것이다. 책들은 전부 어떤 방식으로든 손을 맞잡고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사람들은 책 밖의 사람들과 결속한다.
- 우정 도둑 p.79
내 책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때의 필요에 의해서, 베스트셀러라는 마케팅의 결과와 그에 따른 남들의 기호로 내 책들은 연결고리를 잃고 표류하는 듯했다. 지극히 소유적으로 독서를 위한 독서가 내가 하고 있던 행태가 아니었나 반성해 보게 되었다.
두 번째 부러움은 그녀의 글쓰기였다. 글 속에 그녀는 자신을 "당신은", "아이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표현할 때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부르는 글은 처음 읽어봤다. 그녀의 글은 분명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호칭 때문인지 자꾸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당연 내 경험이 아니고 때로 내게 생소한 스토리였지만 희한하게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또 그녀의 글은 내 생각의 범위를 넘어선다. 산책과 사랑. 단 하나의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뗄 수 없는 사유를 발견하는 그녀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산책은 10분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를 1시간 동안 거닌다. 휩쓸리고 이탈하고 혼란스러움 속에 조용한 호기심으로 보내는 시간이 산책의 목적이다. 반면 사랑은 평생이 걸리는 일을 단 몇 분 만에 완수해낸다. 그녀의 사유가 탐난다.
세 번째 부러움은 경험이었다. 오랜 해외여행의 경험으로 그녀에게는 국경이 그저 너른 논밭에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땅의 경계 정도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길을 걸을 때 땅의 주인이 달라졌다고 우리의 행동이나 마음에 변화가 없듯 한국 국적에 단단히 메여사는 나와는 달리 그야말로 자유로운 세계시민 같았다. 언어도 피부색도 굳이 언급의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넓은 세상에서 살수 있다는 게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나는 마흔 전까지 꿈도 꾸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남들이 한다고 꾸역꾸역 지켜온 내 가족, 내 지역, 내 직장, 내 나라가 얼마나 사소해 보였나 모른다. 그 차이는 마치 사람 자체의 아우라 크기인 듯 느껴졌다. 보통 책을 읽으면 이런 부러움의 시간을 지나 하나의 결론과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3번을 지나는 동안 그대로 멈춰있다. 분명 여러 번 읽고 싶을 만큼 좋은데 살짝 불편한 이런 느낌.. 이런 건 고전을 읽을 때 각오하고 직면해 본 게 전부인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 당황스럽다. 소화하기에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