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로 승부하라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by Chloe J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자 현 최인아책방 대표, 작가 최인아. 책에 일과 삶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두 분야 모두 우려먹기의 영역이다. 이에 관련된 책이 얼마나 많던가! 그토록 많은 일과 삶의 자세에 대한 책이 있음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서너 권 이상 빠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 아는 말이지만 아는 말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보고 감흥을 받는다. 그리고 이어서 손에 든 다른 책에 눈을 빼앗김과 동시에 감동의 마음도 열정도 이동해 버린다. 이 책 속에 이런 말이 있다. 자기계발서는 빠르게 효과를 내는 진통제와 같다고... 빠르게 얻어진 것은 빠르게 잊히는 걸까?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살짝 불편한 마음을 콕 집어 말해준다.


부사장으로 은퇴를 하고 개인사업을 하는, 화려한 경력의 그녀가 세상을 사는 태도와 생각이 궁금했다. 특히나 일이 궁금했다. 어떤 마음으로 일할지, 그녀는 나와는 처음부터 다른 종류의 사람인지... 나는 왜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지, 결국 나의 무엇이 성공으로 닿지 못하게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아주 불편한 손끝에 박힌 가시 같은 답!


일하고 얻는 것들


내가 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건강검진센터에서 문진의로 일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 연말로 가면 수백 명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고, 비슷한 질문을 받고, 비슷한 대답을 한다.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것은 나의 대안일 뿐이었다. 언제나 마음은 임시거처였다. 그런 일을 지금 11년째 하고 있다. 잠시만 하고 그만 둘 일이어서 시작할 때 일의 의미는 단지 월급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인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하기 위한 크게 힘들지 않은 워라밸은 봐줄 만한 월급처 일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직장, 그 속에서의 세월은 그냥 흘러간다. 마치 내 시간이 아닌 양 흘려보내고 월급날만 긴 다린다. 그 안에서 배울 수 있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더 많은 기회를 날려버렸다. 아직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마음을 한번 뒤집어엎은 듯 불편해지기는 했지만 11년 삐뚤어진 직업에 대한 감정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는 없다. 작년에 원장님께서 검진 센터장을 맡아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고, 한 번의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 국가기관이라 센터장을 한다고 급여가 더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책임만 많아진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붙어있는 성장의 기회를 보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단 한 번 이곳에서 내 강점을 이용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에 한 번은 활성화방안에 대해서 보고서를 내야 할 일이 있었고 빠른 시간에 결과를 냈더니 휴식과 보상이 아니라 추가의 다른 일이 주어졌다. 그래서 뭐든 '시키면 적당히!'를 모토로 있기만 하면 되는 존재를 자처했다. 책에서 나오는 코모디티! 코모디티는 퍼포먼스 면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지 않아 가성비에 따라 대세가 가능한 대상이라는 말이다. 내가 바로 코모디티다.


저자는 마치 이런 나를 보고 있기라도 하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른말을 한 구절을 읽을 때면 '역시 부사장님이라서 꼰대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느 한구석 틀린 소리가 없었고 특히나 요즘의 대세와는 다른 흐름이랄까? 소신 있는 소리에 귀 기울어졌다. '이래서 성공할 수 있었겠구나! 이런 태도를 경쟁력이라고 하는구나!'


내가 일을 하고 월급만 받던 시간은 재미, 의미, 성취, 도전, 성취감, 자신감, 기쁨, 인정, 동료애, 팀워크, 극복, 성공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낭비된 내 삶이었다. 내가 그리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인생을 허무하게 흘러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와 다른 점이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질문에 있었다. 저자는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확신이 들 때까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답을 요구하고 답하고, 번복하고 온전히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있는 정답을 찾아갔다. 일에 몰두했다가도 돌아와 자신과의 질문에 마주했다.


본캐로 승부를!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시대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회사든 사회 전체든 문화가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외쳐 확보한 저녁 시간에 뭘 하고 있을까? 그 시간의 밀도는 얼마나 촘촘한가? 진장 life를 잘 즐기고 있는 게 맞을까? 훨씬 많은 시간의 SNS와 넷플릭스에 시간을 양보하느라 나를 위한 성장은 말할 것도 없이 쉴 시간의 확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지...


2~3년 전부터 나는 성장에 목말라있다. 아마도 마흔이라는... 존재로서 세상에 홀로 서는 시기를 맞아서 그런가 보다. 스스로의 존재를 가치 있게 생각하기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고 그러다 찾은 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부캐를 위해 기꺼이 본캐를 양보했다.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하면 설렘이 있고 흥미롭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의 경지에 다다르는 데는 지루한 지속의 시간이 동반된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도 그랬고 나도 아마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 글을 쓰니 한 문단 쓰기가 힘들었다. 계속 쓰다 보니 양이 늘어났고 그래서 재미있었다. 읽고 배우면서 질적인 성장도 맛봤다. 그러다 지금 여기 서있다. 다들 앞으로 가는데 나는 그대로, 끝없이 나오는 무빙워크를 거꾸로 가는 기분이었다. 성장이 계단형이고 슬럼프를 통해서 성장한다고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날뛰는 마음을 잠재우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책에서 한 구절을 만났다. "본캐로 승부하라."


나의 본캐는 무엇일까? 의사일까? 작가 지망생일까? 의사가 본캐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거나 혹은 다른 의사로서의 일을 찾아야 한다. 작가 지망생이 희망하는 본캐라면 글쓰기로 승부를 봐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의욕이 생기고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하던 모든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붙이면 당연 일상은 힘들어진다. 힘들면 오래 하지 못하고 그러면 잘하는 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꼭 하나를 버려야 할까? 병행할 수는 없는가?


글에서도 보이지만 이 책은 나를 혼돈에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평소에 생각하지 않던 켜켜이 쌓인 생각 상자를 휘저어 혼란스럽다. 탁한 흙탕물에 앞이 보이지 않아 진흙이 가라앉길 기다리며 생각해 볼 시간을 얻었다. 고민의 답을 명확히 찾지는 못했다. 빠른 시간에 나올 수 있는 그런 답이 아니다.


내 일의 의미가 무엇일까? 나에게 본케는 무엇일까?

잠시 스쳐간 생각 중 하나가 있다면 '의학 칼럼을 쓰는 작가'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정도가 전부다.


자기계발서, 빠른 해결책인 진통제로 해결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줄이려 할 때 저자 타이틀의 화려함에 어떤 진통제일까 궁금해 책을 넘겼다. 그리고 이 책이 내게 진통제가 아니라 생활습관의 변화이자 영양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답을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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