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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Jan 08. 2024

짝사랑


진짜 오랜만에 친정을 다녀왔다. 작년 설에 다녀오고... 어버이날 가려고 했으나 일이 있었고, 10월에 아빠 칠순이었으나 온 가족이 독감에 걸려 가족여행에 참석할 수 없었다. 엄마와는 8월에 호캉스를 다녀왔고, 아빠는 병원에 입원해서 본 게 전부였다. 1년 만에 친정에 갔다. 


5년 정도 전부터였던 것 같다. 친정에 가면 마음이 복잡하다. 보기에 예전 같지 않은 엄마, 아빠의 신체 건강, 안동이 고향인 대쪽같은 가부장 아빠로 힘든 엄마와 그로 인해 친정에만 가면 나오는 내면 어린아이. 원래 1년에 늘 4번씩을 갔었는데 1년 동안 안 간 데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먹는 것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이튿날 서울 올라갈 때까지 배고플 틈을 주지 않는다. 손도 많이 가는 잡채, 비빔밥이며, 갈치조림 등 5끼니 중 2끼를 외식할 건데도 많이도 해놓으셨다. 하지 말라고 해도 그게 낙이라는데 말릴 수가 없다. 친정 가면 편하다고 하던데 대접받는 게 너무 불편하다. 무릎도 아픈 엄마는 수백 번 앉고 서면서 뭘 그리도 챙겨주려 하시는 건지... 평소에는 보일러도 하루 한 시간 간신히 튼다고 하면서 며칠 동안 여름처럼 땀을 뻘뻘 흘렸다. 이런 게 다 삐뚤게 보였다. 

'그냥 좀 편하게 하지...'


사야 할 때가 한참 넘은 생활용품은 또 얼마나 여러 개인지... 운동할 때 쓰는 단 한 개 있는 텀블러, 그나마도 내가 안 쓰던 것을 가져간 것부터 커피포트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커피포트는 됐다 안됐다를 반복하다가 내가 가던 날 사망했다. 당장 마트로 가 커피포트를 사고 밑창이 다 닳아 스케이트 탈 것 같은 신발을 바꿔드렸다. 내가 쓰다 싫증 나서 드린 이어폰이 생명을 다했길래 그것도 바꿔드렸다. 정말 이 집에서는 모든 물건이 쓰임을 다하기 전에 나오지 못한다. 이런 것도 불편했다.

'그냥 좀 사서 쓰지...'


마흔 넘은 딸이 툴툴거리는데 걱정해 준다며 좋아하신다... 그럴 때마다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와줘서 고맙다."

"밥 차려 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소정이 커가는 것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이것도 불편했다. 그렇게 사랑도 감사도 전하지 못하고 2박 3일이 흘렀다. 마음은 여전히 좋지 못했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날이 추운데 창에 붙어 기차가 안 보이도록 손 흔들고 있는 것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냥 좀 들어가시지... 추운데'


서울 도착! 

1호선에서 3호선 갈아타는 종로 3가 3호선 지하철역, 우연히 서게 된 지하철 안전문 앞에서 마음이 내려앉았다. '쿵!'


아가 - 공현혜


고맙다
이렇게 와서 밥 먹으니

미안하다
닳은 몸 삐걱대며 줄 게 없구나

그래도 아가,
사는 일 아무것도 아니다

잡초도 좋고 나무도 좋다
살아있으면 되었다

혼자라는 생각에 울고 싶을 때
배불리 먹고 한숨 자는 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망상활성계가 찾아준 걸지, 신이란 존재가 보여준 건지...

종로 3가에서 구파발역까지 눈물을 삼켰다. 그대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집 근처 카페로 갔다. 시를 옮겨 적고 생각을 적었다. 눈물은 말릴새가 없이 터졌다. 엄마에게 시와 내 생각을 사진으로 보냈다. 


애달픈 짝사랑 같았다. 그리고 내 머지않은 미래였다. 아이는 다 자라날 때까지 엄마에게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보낸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더 큰 세상으로 떠나면 그때부터 부모는 아이의 등만 바라보며 애달픈 사랑을 시작한다. 


지금이라도... 내 마음 적은 감상을 봐줄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일이라도 다시 만나러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퇴근길에도 전화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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