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다시 일어서는 거인, 추격의 서막
밥 냄새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 먼저 닿는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사 온 한 줌의 쌀이 무쇠솥 안에서 끓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부엌 바닥에 흩어져 있던 깨진 화분 조각들은 이미 치워져 있었고, 내 왼손에는 어설프게 감긴 헝겊이 둘려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았지만 보지 않은 척했다. 대신 솥뚜껑을 열어 밥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구수하고 따뜻한 김이 좁은 부엌을 가득 채웠다. 어머니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하지만 끝내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묵묵히 주걱을 들어 밥을 한 번 저었을 뿐이다. 무너진 자리에서 기어코 밥을 짓는 것. 울고 싶은 아침에 기어이 주걱을 드는 것. 어머니의 등이 그 모든 말을 대신했다.
밥 냄새가 부엌을 넘어 좁은 복도를 타고 흘렀다. 형의 골방으로, 누나가 이불을 뒤집어쓴 방으로, 그리고 사흘째 굳게 잠겨 있는 안방 문 아래 틈으로.
나는 그 문 앞에 섰다. 다친 왼손이 심장 박동에 맞춰 욱신거렸다. 서른일곱 해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자리였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하온의 문장이 내 안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 손 때문에 내가 태어났다고.
나는 차가운 나무 문짝에 이마를 댔다.
"아버지."
대답은 없었다.
"저 어젯밤에 손 다쳤어요. 뜨거운 물에."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완전한 정적은 아니었다. 문 너머에서 아주 미세한 무게 이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많이 아팠어요. 근데요, 아버지."
나는 다친 왼손을 문에 가져다 댔다. 세상이 틀렸다고 손가락질하던 손. 하온의 온기가 처음으로 닿았던 손.
"저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이제 나오세요."
밥 냄새가 더 진해졌다. 제기동 골목 어딘가에서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문 안쪽에서 쇳소리가 났다.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였다.
초췌한 얼굴의 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사흘 치 수염이 덥수룩했고 눈은 깊게 패어 있었다. 마장동의 거친 새벽들을 버텨오던 그 거대한 사내가, 지금 바람 불면 쓰러질 듯 문틈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버지의 시선이 내 왼손에 멈추었다. 어설프게 감긴 헝겊을 아버지는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너진 사람의 눈빛도, 미안함에 짓눌린 사람의 눈빛도 아니었다. 삶의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오래 잊고 있다가, 방금 벼락처럼 다시 기억해 낸 사람의 눈빛이었다.
아버지가 천천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거구의 사내가 열한 살 소년의 눈높이로 내려앉아, 다친 왼손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손을 놓는 순간, 우리가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아버지의 투박한 손 안에서 가만히 숨을 쉬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날 오후, 아버지는 다시 마장동으로 향했다.
납품 계약서는 사라졌고 가방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작업복을 챙겨 입었고, 숫돌에 칼을 갈았다. 서걱서걱. 그 소리가 사흘간 죽어 있던 집 안의 공기를 조금씩 깨웠다. 쓰러진 사람이 다시 걷기 시작할 때, 그 첫 발걸음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밤이 깊어 나는 공책을 펼쳤다.
찢겨 나갔던 페이지가 다시 이어져 있었다. 갈라진 자국 위로 갈색 핏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그 위를 하온의 글씨가 덮고 있었다. 그 손 때문에 내가 태어났어요. 상처 위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붕대였다.
나는 욱신거리는 왼손으로 연필을 쥐고 천천히 썼다.
— 하온아. 아버지가 오늘 다시 마장동에 가셨어. 칼도 갈고, 어머니가 지은 밥으로 도시락도 챙기셔서.
잠시 연필을 멈추었다. 써야 할지 고민했지만, 하온은 알아야 했다.
— 아버지가 마장동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그 사기꾼 놈을 다시 봤대. 다른 상인한테 또 접근하고 있었다고. 아버지 눈빛이 완전히 달라지셨어. 나는 그게 조금 무서웠고, 동시에 조금 기뻤어. —
서른일곱 해 너머, 같은 날 밤의 2025년.
하온은 공책을 가슴에 안은 채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조운이 들어섰을 때, 하온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빠의 얼굴을 짓누르던 피로의 그림자가 옅어져 있었다.
"다녀왔어."
아빠가 재킷을 벗으며 하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온은 조심스럽게 아빠의 왼 손목을 살폈다. 흉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어젯밤처럼 붉게 부어오르지 않았다. 통증으로 꾹 움켜쥐던 손이, 지금은 평온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하온은 아빠의 허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밤이 깊어지자 하온은 책상 앞에 앉아 낡은 공책을 폈다. 1988년의 아빠가 남긴 마지막 문장. 그 사기꾼 놈을 시장 근처에서 다시 봤대.
하온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연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이가 찢어질 듯 또렷하게 써 내려갔다.
— 아빠, 잘 들어요. 할아버지가 절대 혼자 쫓아가게 두면 안 돼요. 그리고 그놈의 이름을 알아내야 해요. 이름만 알면 2025년에서 내가 찾을 수 있어요. 우리 같이 잡아요. —
공책을 덮은 하온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두려움인지 결심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연필을 다시 쥔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