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흉터의 기원, 그리고 붉은빛의 위로
아버지가 문을 잠근 뒤, 집 안은 달라졌다.
소리가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리는 없었다. 냄새가 달라졌다. 연탄가스 냄새, 오래된 나무 냄새, 겨울 기와집의 눅눅한 냄새. 그것들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아래에, 새로운 냄새가 섞여 들었다. 가난의 냄새였다. 가난에도 냄새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밤 처음으로 알았다. 희망이 식어가는 냄새였다. 아무것도 타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재가 되는 냄새였다.
어머니는 부엌에 있었다.
나는 방문 틈으로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개수대 앞에 서서, 손을 물에 담근 채, 그냥 서 있었다. 물은 이미 식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방문을 열지 못했다. 열면 어머니가 울음을 멈출 것이었다. 나 때문에 참을 것이었다. 그 울음을 뺏고 싶지 않았다. 열한 살이 할 수 있는 가장 조심스러운 배려는, 때로 보이지 않는 척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날 밤 찬장 안에 쌀은 한 줌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그것으로 죽을 쑤었다. 누나는 말없이 먹었고, 형은 수저를 들지 않았다. 아버지의 안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몫의 죽그릇을 문 앞에 놓아두었다가, 새벽이 되어 식은 채로 도로 가져왔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공책을 펼쳤다. 찢긴 페이지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핏자국도 그대로였다. 하온의 글씨도, 내 왼손의 글씨도, 이 밤의 무게를 아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뒤에 무슨 말이 오려했을까. 나는 다시 그 물음 앞에 섰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답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내일 아침이었다. 어머니가 쌀이 떨어진 것을 알게 될 내일 아침이.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지 않을 내일 아침이.
밤새 생각했다. 열한 살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새벽이 되기 직전이었다.
어머니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조용히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 방 앞을 지나쳤다. 문 아래 틈으로 아무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잠든 것인지 그냥 누워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부엌 선반 위에 어머니의 비상금통이 있었다. 깨진 도자기 화분이었다. 거기에 동전이 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쌀을 사야 했다. 아침이 오기 전에.
나는 의자를 끌어다 선반 위에 올랐다.
손이 화분에 닿는 순간이었다.
의자가 미끄러졌다.
몸이 기울었고, 화분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궁이 쪽 선반을 잡으려 했다. 왼손이 먼저 뻗었다. 그리고 선반 위에 올려둔 양은 냄비가,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채로, 왼손 위로 쏟아졌다.
뜨거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뜨거움이었다. 불이 손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왼 손목에서 손등까지, 선명하게 타는 것 같았다. 나는 소리를 참았다. 어머니를 깨우면 안 됐다. 아버지를 깨우면 안 됐다. 이 집의 밤은 이미 충분히 무거웠다.
이를 악물었다.
도자기 화분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동전들이 부엌 바닥에 흩어졌다. 왼 손목에서 피가 났다. 화분 파편이 피부를 스친 것이었다. 뜨거운 물에 덴 자리와, 파편에 긁힌 자리가 겹쳐졌다.
나는 왼손을 가슴에 꼭 눌렀다. 동전들을 오른손으로 하나씩 주워 담았다. 손이 떨렸다. 피가 바닥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이 피가.
공책에 묻은 그 핏자국이었다. 하온이 보았던 그 갈색 얼룩이었다. 서른일곱 해 뒤에 미래의 아들이 보게 될 그 자국이, 지금 이 어두운 부엌 바닥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왼 손목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부엌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전을 쥔 오른손, 불에 데고 피가 나는 왼손. 부엌은 어두웠고, 집은 조용했고, 아버지는 방에 갇혀 있었고, 어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빛이 보였다.
부엌 구석에서였다. 아니, 정확히는 공중 어딘가에서였다. 아주 작고 붉은빛이었다. 눈처럼 생긴 두 개의 빛. 내가 알지 못하는 형태의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 레고 조각으로 만든 것처럼 각진 실루엣이었다. 투명했다. 환영이었다. 하지만 그 빛만큼은 선명했다.
로봇이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1988년의 열한 살 소년은 레고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각진 형태 안에 담긴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만들었다는 것을. 누군가를 위해.
로봇의 붉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들렸다.
목소리가.
들려, 아빠. 나 여기 있어.
환청이었다. 아닐 수도 있었다.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닿은 자리에서, 타오르던 왼손의 뜨거움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 뜨거움이 다른 종류의 것으로 바뀌었다. 불의 뜨거움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 닿는 온기로.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의 온기를, 타오르는 손목에서 느꼈다.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 서른일곱 해 뒤에, 네가 만들어준 아이가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왼손이 아팠다. 앞으로도 오래 아플 것이었다. 흉터가 남을 것이었다. 서른일곱 해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하지만 나는 일어섰다.
동전들을 주머니에 넣었다. 날이 밝으면 쌀을 사 올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을 끓일 수 있도록. 아버지가 방에서 나올 때 밥 냄새가 나도록.
세상이 내 왼손을 틀렸다고 했다. 아버지가 오른손으로 바꾸라 했고, 선생님이 빨간 줄을 그었고, 밥상 아래로 숨겨야 했다.
하지만 오늘 밤, 이 손이 쌀을 구하러 갔다. 이 손이 피를 흘렸다. 이 손에 미래의 아들이 온기를 보내왔다.
왼손이 이미 알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공책을 펼쳤다.
찢긴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핏자국도, 끊어진 문장도.
그런데 찢긴 자리 옆으로, 새로운 글씨가 번지고 있었다.
오른손 글씨도 아니었고, 내 왼손 글씨도 아니었다. 더 작고, 더 또렷하고, 레고 조각을 맞추는 손이 쓴 것 같은 글씨였다.
— 아빠, 흉터 봤어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그 손 때문에 내가 태어났어요. —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흉터가 아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아픔이 더 이상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 흉터가 서른일곱 해를 건너 누군가에게 닿았다. 이 손이 피를 흘린 밤이,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감사의 이유가 되었다.
나는 왼손으로 연필을 잡았다. 타오르는 손목으로. 천천히, 한 글자씩 썼다.
— 하온아. 아빠 이제 알겠어. 이 손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
창밖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1988년 제기동의 아침이, 어둠을 밀어내며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