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11화 조 씨 삼총사와 용 문양 라이터

by Wren

홍파초등학교는 제기동 골목 끝에서 두 번 꺾으면 나오는 곳이었다.
3월의 첫날, 나는 새 책가방을 메고 그 길을 걸었다. 철산동에서도, 부천에서도 해본 적 있는 일이었다. 낯선 운동장, 낯선 교실, 낯선 얼굴들 사이에 서는 일. 익숙해질 만하면 또 새로 시작해야 했던 그 일. 나는 이미 이 일의 전문가였다.
전학생이 처음 교실에 들어설 때의 그 침묵을 나는 안다. 오십 명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는 무게를. 담임 선생님이 "오늘 새 친구가 왔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의 그 공기를. 나는 칠판 앞에 서서 이름을 썼다. 오른손으로. 비뚤어진 글씨였다. 몇몇이 수군거렸다.
자리에 앉았다. 창가 쪽, 세 번째 줄이었다.
옆자리 아이가 말을 걸었다.
"야, 너 조운이라고 했지? 나도 조가야. 조성규."
뚱뚱하고 눈이 반달처럼 생긴 아이였다. 웃으면 눈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뒤에서 또 다른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안경을 쓰고 키가 작은 아이였다.
"나도 조재완이야. 우리 반 조 씨가 셋이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규와 재완은 제기동 토박이였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꿰뚫고 있었다. 어느 가게 아주머니가 덤을 잘 주는지, 어느 골목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지, 마장동 시장 어느 자리에서 공짜 시식을 두 번 먹을 수 있는지까지. 그들에게 제기동은 미로가 아니라 놀이터였다.
나는 그것이 부러웠다. 아는 골목이 있다는 것.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이사를 너무 많이 한 소년만이 그것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알 수 있었다.
성규는 도시락 뚜껑을 자주 열었다. 반찬이 많은 날이면 어김없이 내 앞에 내밀었다. 재완은 말이 많았다. 왜 하늘은 파란지, 왜 소는 네 개의 위장을 가졌는지, 왜 선생님은 항상 같은 넥타이를 매는지.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침묵이 가득한 집에서 살다 온 소년에게, 그 목소리들은 창문을 여는 것 같았다.
사흘이 지나자 우리는 조 씨 삼총사가 되었다.
성규가 붙인 이름이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조 씨가 셋이니까. 하지만 이름이 생기자 우리는 정말 삼총사처럼 굴기 시작했다.
내가 사기꾼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쉬는 시간, 운동장 구석 느티나무 아래에서였다. 성규는 과자를 먹고 있었고, 재완은 개미집을 관찰하고 있었다.
"있잖아, 너희한테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두 아이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우리 아버지한테 사기 친 놈이 있어. 마장동 시장 근처에 자주 나타난다는데, 혹시 본 적 있어? 양복 입고 다니고, 손이 엄청 깨끗해. 마장동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성규와 재완이 눈을 마주쳤다.
재완이 먼저 말했다. "그런 사람 나 알 것 같은데."
내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마장동 입구 쪽에 청자다방 알아? 거기 단골 중에 양복 입은 사람들이 몇 명 있어. 우리 삼촌이 거기서 일하거든. 삼촌이 그러는데, 그 사람들이 시장 상인들한테 이것저것 투자하라고 꼬신대."
성규가 과자 봉지를 접으며 끼어들었다. "나도 들었어. 우리 아빠가 그 다방 사기꾼들 조심하라고 했는데."
나는 두 친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혼자였을 때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골목을 손바닥처럼 아는 두 아이와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같이 찾아줄 수 있어?"
성규가 반달눈으로 웃었다. "조 씨 삼총사잖아."
그날 밤, 나는 공책에 썼다.
— 하온아. 친구들이 생겼어. 조 씨 삼총사야. 성규랑 재완이. 그리고 단서도 생겼어. '청자다방'이래. 사기꾼이 거기 자주 나타난대. —
왼손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이 공책 안에서만큼은 언제나 그랬다.
2025년. 같은 시각.
하온은 아버지의 창고 안 낡은 상자를 뒤지고 있었다.
열흘째였다. 1988년의 흔적을 찾는 일. 가족사진 묶음, 낡은 성적표, 빛바랜 편지 봉투들. 하온은 하나씩 꺼내 살펴보았다. 공책이 열한 살 아빠와 하온을 연결한다면, 이 상자 안에도 무언가 연결된 것이 있을 것이었다.
세 번째 상자를 열었을 때였다.
제일 아래, 구겨진 신문지에 싸인 것이 있었다. 천천히 펼쳤다.
낡은 라이터였다.
황동색이었다. 오래되어 표면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그런데 한쪽 면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용이었다. 비늘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새겨진, 평범한 라이터에 새기기엔 너무 공들인 문양이었다.
하온은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왼손이 뜨거워졌다.
단순한 온기가 아니었다. 전류 같은 것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하온은 숨을 참았다.
라이터 바닥에 아주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하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읽었다.
청자.
하온은 공책을 펼쳤다.
조운의 새 문장이 거기 있었다. 청자다방. 하온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라이터 바닥의 글씨와, 공책 위의 글씨가, 서른일곱 해의 거리를 가로질러 같은 단어로 만났다.
손이 떨렸다. 왼손으로 연필을 잡았다.
— 아빠. 나 방금 창고에서 라이터 하나 찾았어요. 황동색이고 용 문양 있어요. 바닥에 '청자'라고 새겨져 있어요. 이거 사기꾼 거 맞죠? 우리 집에 왜 있는 걸까요? —
쓰다가 멈췄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남자가 우리 집 마당에 왔던 날, 떨어뜨리고 간 것일 터였다. 아버지가 증거로 주워둔 것일 터였다. 혹은 아버지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버리지 못해서, 가장 깊은 상자 아래에 묻어두었던 것일 터였다.
하온은 라이터를 스텔스 옆에 세워두었다.
용 문양이 붉은 눈과 마주하고 있었다.
1988년. 그로부터 사흘 뒤.
조 씨 삼총사는 방과 후 마장동 방향으로 걸었다.
성규가 앞장섰고, 재완이 골목 구조를 설명했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세 명의 발소리가 좁은 골목에서 울렸다. 혼자였다면 오지 못했을 곳이었다. 하지만 셋이었다. 조 씨 삼총사였다.
청자다방은 마장동 시장 입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낡은 간판이 삐딱하게 걸려 있었다.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담배 연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재완이 먼저 창문 아래로 기어가 커튼 틈을 들여다보았다.
"있어."
한 글자였다. 하지만 그 한 글자의 무게가 달랐다. 재완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커튼 틈에 눈을 댔다.
다방 안이었다. 연기가 자욱했다. 몇 명의 남자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 창가 쪽 자리에 앉은 남자가 보였다. 양복이었다. 너무 깨끗한 양복이었다. 마장동 사람이 아닌 손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맞은편의 낯선 남자에게 무언가를 건네며, 능숙하게, 자연스럽게.
내 손이 떨렸다. 왼손이었다. 흉터가 있는 그 손이.
저 사람이야.
우리 아버지를 무릎 꿇게 만든 사람이. 어머니의 손을 차갑게 만든 사람이. 어젯밤에도 누군가의 아버지에게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이.
성규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름 알아냈어."
귓속말이었다.
"삼촌한테 물어봤는데, 저 사람 여기 올 때 항상 박 과장이라고 불린대. 성은 박 씨고 그냥 과장이라고만 해. 근데 명함은 매번 달라진다고."
박 과장.
나는 그 이름을 마음속에 새겼다. 왼손이 뜨거워졌다. 공책이 지금 여기 있었다면, 당장 썼을 것이었다. 하온아, 이름 알아냈어. 박 과장이야.
다방 안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성규와 재완도 벽에 붙었다.
남자가 주머니를 더듬었다. 무언가를 찾는 표정이었다. 라이터였다. 황동색 라이터. 주머니를 다 뒤졌지만 없었다. 남자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다시 웃음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표정을 보았다.
잃어버린 것을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라이터는 우리 집에 있어.
나는 소리 내지 않고 말했다. 서른일곱 해 뒤의 창고 안에, 내 아들의 손바닥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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