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20화 레고를 조립하다 찾아온 낯선 저릿함

by Wren

아버지가 눈을 떴다.
그 한 문장이 조운의 하루를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수 없었다. 3월의 밤바람이 이마를 스쳐 지나갔지만 춥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이 따뜻했다. 차갑지 않았다. 아직 여기 있었다. 그것만으로 오늘 밤은 충분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었다. 조운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냥 식탁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라면 한 그릇을 내려놓았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참았다. 다 먹고 나서 어머니가 조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것도 말이 없었다. 그래도 됐다. 말이 없어도 됐다. 오늘 같은 밤에는, 말보다 라면 한 그릇이 더 정확한 위로였다.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 스텔스가 있었다. 가슴 부분이 비어 있었다. 마지막 조각. 병원 가기 전에 조립하다가 멈춘 자리였다. 조운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천천히 마지막 조각을 집어 들었다. 손끝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오늘 하루의 긴장이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것이었다. 이 블록 하나 때문에 스텔스가 완성되지 못했다. 이 블록 하나를 조운은 오늘 집을 나서면서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다. 왜 그랬는지 몰랐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것이 완성되는 날이 오늘일 것 같았다.
딸깍.
소리가 났다. 작고 단단한 소리. 레고 블록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그 소리. 어떤 말보다 정확하고, 어떤 약속보다 확실한 소리였다. 조운은 완성된 스텔스를 두 손으로 들었다. 앞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뒤에서 보았다. 부서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빠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완전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지던 3월에, 이것 하나만큼은 완전하게 완성되었다.
스텔스를 공책 옆에 나란히 세웠다.
공책을 펼쳤다. 하온의 글씨가 거기 있었다. 아까 병원 복도에서 읽었던 그 문장들. 울지 마. 내가 계속 여기 있을게. 할아버지 손 꽉 잡아드려. 손가락으로 그 글씨를 한 번 쓸었다. 종이의 결이 손끝에 전해졌다. 37년 뒤에서 온 온기였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먼 곳에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의 온기였다. 이 공책이 뜨겁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아빠와 나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버티고 있었다. 서로 다른 시간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연필을 쥐었다.
— 하온아. 아버지가 눈을 떴어. 오늘 밤 아버지 손이 따뜻했어. 그걸로 됐어. 고마워. —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공책이 뜨거워졌다. 하온이 받았다는 신호였다. 조운은 연필을 내려놓고 등을 기댔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이 조용하게 윙윙거렸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이제야 몸이 알아채는 것 같았다. 마장동의 그 골목이 떠올랐다. 박민철의 창고가 떠올랐다. 성규와 재완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이 다시 떠올랐다. 따뜻했다. 차갑지 않았다.
그때였다.
손끝이 저릿했다.
처음에는 피로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저릿함은 달랐다.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이었다. 몸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손끝에서 심장까지 퍼져 나오는 파동이었다. 조운은 고개를 들었다.
스텔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붉어야 할 그 눈이, 지금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어둠 속에서 멀리 있는 등대를 보는 것처럼, 작지만 흔들리지 않는 빛이었다. 조운은 숨을 참았다.
스텔스의 눈이 한 번 깜박였다. 두 번. 세 번.
조운은 공책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연필을 쥐었다.
— 하온아. 하늘이 깜빡이고 있어. 너야? —
문장을 적고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유리에 이마를 댔다. 밖은 어두웠다. 제기동의 낮은 지붕들이 검은 실루엣으로 웅크려 있었다. 3월의 밤이 골목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조운은 개운산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였다.
산등성이 너머 하늘 한쪽이 아주 희미하게, 맥박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스텔스의 눈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박자였다.
조운은 그 빛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 빛이 무엇인지 아직 완전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서웠다. 동시에 무섭지 않았다. 그 빛은 차갑지 않았다. 먼 곳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미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살아내지 못한 37년이, 저 하늘 어딘가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함께, 끝까지.
조운은 그 말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아주 천천히 말했다. 하온에게. 37년 뒤에. 서로 다른 시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버티고 있는 그 아이에게.
네가 있어서 오늘 밤을 버텼어.
창밖의 빛이 네 번째로 깜박였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점점 빨라졌다. 마치 무언가가 열리려는 것처럼. 마치 37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아주 얇은 곳에서 막 갈라지려는 것처럼.
조운은 유리에서 이마를 뗐다.
신발을 신었다. 솜점퍼를 입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이 떨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다. 다만 발이 알고 있었다. 저 빛이 있는 쪽으로. 개운산 방향으로.
문을 열었다.
3월의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스텔스의 푸른 눈이 조운의 등 뒤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슬픔을 담아두는 가슴 안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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