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아쿠아리움 — 유리 너머의 세상
제주 아쿠아리움은 바다 근처에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빛이 달라졌다. 파랬다. 천장도 파랗고 바닥도 파랬다.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열한 살 조운은 그 빛 안에 서서 멈추었다.
이런 빛은 처음이었다.
1988년의 제기동에는 이런 빛이 없었다. 가로등도 형광등도 아니었다. 파란색이었다. 물 때문이었다. 천장에 물이 있었다. 유리 너머에 물이 있었다. 사방에 물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빛이 흔들렸다. 출렁거렸다. 열한 살 조운이 손을 들어 그 빛 안에 넣어보았다. 손이 파랗게 물들었다. 파란 손이었다.
열한 살 조운이 발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이 파랬다. 발이 물 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빠지지 않았다. 딱딱한 바닥이었다. 눌러보았다. 딱딱했다. 그런데 파랬다.
이 빛 안에서는 다들 파래 보였다. 아버지도 파랬다. 엄마도. 하온도. 성훈 형도. 다 같은 파란색이었다. 살아있는 빛이었다.
가족들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지팡이 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조용하게 울렸다. 열한 살 조운이 그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였다. 2025년의 아버지였다. 살아있는 아버지였다. 아직도 이 사실이 이상했다. 이상한데 좋았다.
성훈 가족이 앞으로 갔다. 성인 조운이 그 뒤를 따랐다.
하온이 열한 살 조운 옆에 섰다.
"저기 봐."
하온이 유리를 가리켰다. 유리 너머에 물고기가 있었다. 크고 납작한 물고기였다. 느리게 헤엄쳤다. 꼬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열한 살 조운은 그 물고기를 보았다. 유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코가 유리에 닿을 것 같았다. 물고기가 그쪽으로 왔다. 유리 바로 앞까지. 눈이 컸다. 동그랬다. 눈이 마주쳤다. 물고기가 방향을 틀었다.
"저게 다 살아있는 거야?"
"응."
"저기서 계속 있어?"
하온이 잠깐 생각했다.
"응. 여기가 집이니까."
열한 살 조운이 그 물고기를 보았다. 유리 안에 집이 있었다. 바위가 있었다. 해초가 있었다. 물고기가 그 안에서 유리 쪽으로 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보면 밖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유리 너머의 이쪽이.
아버지가 수조 앞에 멈추었다. 지팡이를 짚고. 물고기를 보았다. 엄마가 그 옆에 섰다. 두 사람이 나란히 수조 앞에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그 모습을 보았다. 저렇게 나란히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1988년에는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었고. 엄마가 그 옆에 있었다. 서서 나란히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성훈의 아이가 달려갔다. 손가락으로 수조를 두드렸다. 성훈 배우자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하지 마, 조용히 해." 성훈이 그 옆에서 웃었다.
조수현이 열한 살 조운 옆으로 왔다.
가족들 중에서 혼자 남아 있었다. 자연스럽게 옆에 섰다. 같이 유리를 보았다.
열한 살 조운이 조수현을 보았다. 조수현은 유리만 보고 있었다. 눈이 흔들렸다. 물고기를 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누나."
"응."
"저 물고기 저기서 답답하지 않아?"
조수현이 잠깐 멈추었다.
"안 답답해. 거기가 집이니까."
"집이면 안 답답해?"
조수현이 유리에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집이면 괜찮아. 거기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으면."
열한 살 조운이 그 말을 들었다. 잘 몰랐다. 하지만 뭔가 큰 말인 것 같았다.
조수현이 열한 살 조운의 옆모습을 보았다.
코가 유리에 닿을 것 같은 그 얼굴이. 눈썹의 모양이. 입을 조금 벌리고 물고기를 보는 표정이.
어릴 때 남동생의 표정과 같았다.
아직 키가 작았을 때의. 아직 세상이 이렇게 무겁지 않았을 때의.
조수현의 숨이 멈추었다.
손이 올라갔다. 열한 살 조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추었다.
이름을 잘못 부를 것 같았다. 지금 여기 있는 이 아이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37년 동안 부르지 못한 그 이름을.
조수현이 손을 내렸다.
"별 본 적 있어?"
열한 살 조운이 고개를 들었다.
"별?"
"제주도 별. 여기 별이 달라."
"어떻게 달라?"
"많아. 서울에서는 안 보이는 별들이 있어. 거기 있는데 안 보이는 거야. 여기 오면 보여."
"없는 게 아니야?"
조수현이 유리에서 손을 뗐다.
"없는 게 아니야. 근데 잘 안 보이는 거야."
열한 살 조운이 그 말을 들었다. 별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더 큰 말인 것 같았다.
"오늘 밤에 보여줄게."
"정말?"
"응. 오늘 밤 숙소에서."
열한 살 조운이 잠깐 망설이다가 가만히 옆에 섰다. 손이 스칠 듯 가까웠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있었다. 조수현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있었다.
성인 조운이 멀리서 그 두 사람을 보았다. 같은 유리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조수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고 있었다. 이 얼굴을 보는 것이. 자신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하온이 저쪽에서 손짓했다. 큰 수조가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조수현을 한 번 보았다. 조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한 살 조운이 하온 쪽으로 뛰어갔다.
조수현이 그 뒷모습을 보았다. 달리는 뒷모습이. 작은 어깨가. 조운이 저 나이였을 때도 저렇게 뛰었을 것이었다. 제기동 골목에서. 혼자.
조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유리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물고기가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