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33화 마지막 밤, 별이 보이는 제주의 하늘

by Wren

숙소 불이 하나씩 꺼졌다.
아버지가 먼저 잠들었다. 엄마가 그 옆에 누웠다. 성훈 가족의 방은 조용했다. 성인 조운도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열한 살 조운만 깨어 있었다.
창가에 앉아서 밖을 보았다. 어둠이었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소리만 들렸다. 파도가 왔다가 갔다. 왔다가 갔다. 그 소리가 일정했다. 1988년의 제기동에는 이런 소리가 없었다. 밤이 이렇게 깊지 않았다.
별이 있었다.
제주의 하늘이었다.
서울에서는 이런 하늘이 없었다. 밤이 이렇게 까맣지 않았다. 건물이 있고. 가로등이 있고. 간판이 있고. 그것들이 빛을 내서 하늘이 환했다. 근데 여기는 달랐다. 빛이 없었다. 그래서 별이 있었다. 없던 게 아니었다. 빛이 없어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낮에 본 아쿠아리움의 물고기처럼, 하늘 가득했다. 다 세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세야 할지 몰랐다. 별과 별 사이에 또 별이 있었다. 별 안에 별이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별을 하나 정해서 보았다. 그 별이 움직이는지 오래 보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자기 자리에 있었다. 옆 별도 자기 자리에 있었다. 다 자기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빛을 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빛이 없는 데서만 보이는 것들이었다.
저게 다 별이야?
아까 자신이 물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있어. 근데 잘 안 보이는 거야.
조수현 누나의 말이었다. 그 말이 아직 마음 안에 있었다. 별뿐만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열한 살짜리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말은 그냥 흘러가지 않았다.
없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열한 살 조운은 무릎을 세우고 창턱에 턱을 얹었다. 바람이 유리창 너머에서 지나갔다.
발소리가 들렸다.
조수현이었다. 물 한 잔을 들고 나오다가 창가에 앉은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왜 안 자?"
"별 보고 있어."
조수현이 창가 쪽으로 왔다. 잠깐 서 있었다. 그러고는 옆에 앉았다. 물을 내려놓았다. 같이 하늘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지?"
열한 살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서는 이렇게 많이 안 보여."
"없는 게 아니라."
"응. 없는 게 아니야."
두 사람이 하늘을 보았다. 말이 없었다. 파도 소리만 들렸다. 일정하게. 왔다가 갔다가.
열한 살 조운이 물었다.
"누나. 울고 있어?"
조수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울어?"
"아니."
열한 살 조운이 조수현을 보았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울지 않았지만 울었던 것 같았다.
조수현이 눈을 닦았다. 소매로. 조용히. 열한 살 조운이 그걸 보았다. 못 본 척했다. 그러고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왜 울었어?"
조수현이 창밖을 보았다.
"울 때 혼자 있으면 안 되잖아."
열한 살 조운이 그 말을 들었다. 잘 몰랐다. 하지만 뭔가 큰 말인 것 같았다. 별 이야기도 그랬다. 집 이야기도 그랬다. 누나의 말들은 전부 그랬다.
조수현이 열한 살 조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열한 살 조운이 가만히 있었다. 피하지 않았다. 조수현의 손이 머리 위에 있었다. 따뜻했다.
별이 있었다. 조수현 누나도 거기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같은 하늘 아래.
발소리가 들렸다.
하온이 었다. 잠이 안 왔던 것 같았다. 창가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보았다. 하온이 그쪽으로 왔다. 열한 살 조운 옆에 앉았다.
세 사람이 창가에 앉아 있었다. 하늘을 보았다.
"별 많다."
하온이 말했다.
"응."
"저게 다 별이야?"
열한 살 조운이 웃었다.
"응. 있는데 잘 안 보이는 거야."
하온이 그 말을 들었다.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열한 살 조운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온이 다시 하늘을 보았다.
파도가 왔다가 갔다. 왔다가 갔다. 밤새 그럴 것이었다. 숙소가 조용했다. 가족들이 자고 있었다. 아버지가. 엄마가. 성훈 형이. 다 자고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은 그 사실이 좋았다. 다들 거기 있었다. 자고 있지만. 거기 있었다.
숙소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제주의 바람이었다. 1988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바람이었다. 이런 밤이 있다는 걸. 이런 하늘이 있다는 걸. 몰랐다. 이제는 알았다.
한참 뒤에 성인 조운이 소파에서 눈을 떴다. 세 사람이 창가에 있었다. 하온이 열한 살 조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조수현은 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열한 살 조운만 깨어 있었다. 하늘을 보고 있었다.
성인 조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보았다.
기억에 없는 밤이었다. 1988년에 이런 밤은 없었다. 자신의 열한 살에는. 누나가 옆에 앉아 있는 밤도. 하온이 어깨에 기대어 자는 밤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저 아이가 이 밤을 살고 있었다. 그 아이가 이 밤을 기억할 것이었다. 오래. 기억에 없어도 분명히 있었던 밤이었다.
열한 살 조운이 별을 보다가 성인 조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성인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한 살 조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별을 보았다.
하온이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움직이지 않았다. 깨우지 않았다.
나는 여기 있었다.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있었다. 이 밤에. 이 별 아래에. 이 어깨 위에.
창밖에 별이 있었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제주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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