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는 조각
그는
완성된 형태를 믿지 않았다.
언제나 완전한 세계는
너무 쉽게 닫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하나를 남겨 두었다.
채우지 않은 자리,
떼어낸 조각 하나.
그 결손은
부서짐이 아니었다.
무너지지도, 실패하지도 않았다.
그저
열려 있었다.
사람들은
밝은 얼굴을 보고 웃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미소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지켜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가장 순한 형태로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그가 택한 언어였다.
왜 우리는
항상 흠 없는 모습만
내보이려 하는지,
왜 상처는
지워져야만 하는지.
하나 빠진 형태는
흔들린다.
그러나 바로 그 틈으로
공기가 드나들고,
실패가 지나가고,
다시 시작할 이유가 들어온다.
닫힌 완성보다
열린 미완이
더 오래 숨을 쉰다.
그에게 창작이란
부족함을 감추는 일이 아니라
부족함을
형태로 남기는 일이었다.
빛나는 순간들 사이에
의도적으로 남겨 둔 공백,
그 공백이
다음 장면을 부른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한 발 물러선 상태로
앞을 바라본다.
도착했다고 말하지 않고,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모든 결과물에는
의도적인 여백이 있고,
그 여백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이 상징은
한 예술가의 초상이다.
성공 이후에도
자신을 미완으로 남겨 두는 태도,
상처를 지우는 대신
구조로 바꾸는 선택.
완벽해 보이는 세계 한가운데
조심스럽게 남겨 둔
작은 흔들림.
그래서 우리는
그 형상을 바라보며
안심한다.
지금의 나도
아직 괜찮다는 것.
모자람은
끝이 아니라
다음으로 향하는
입구라는 것.
하나 비워 둔 형태.
웃고 있는 결손.
그 틈에서
예술은 다시 숨을 쉬고,
사람은
완성되지 않은 채로
자기 자신일 수 있다.
過客 心泉
니체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라고.
완성된 형상으로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넘어가며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쩌면 예술도 그렇습니다.
끝났다고 말하는 순간
숨이 멎어 버리는 것.
미완은 결핍이 아니라
다음으로 건너갈 여지이며,
열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불안을 견디고 남겨 둔 그 틈이
결국 또 하나의 완성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조금 남겨 두는 법을 배웁니다.
미완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세계로 향하는 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