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까이 가지 않은 채
멀지도 않게 두고
그저 바라보았다.
단상과 장면,
그리고 문장.
침묵의 길이와
눈빛의 결을
조각처럼 모으며.
유리 같은 천재일지,
아니면
상처에 금이 간 별일지
가늠해 보았다.
그러나 시간은
사람을 드러내기보다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의 자존감은
환호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라
침묵을 견딘 자리에서 굳어졌다.
그의 자신감은
거절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절이 와도
자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내적 균형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다가간다.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류하기 위해.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흐름 속에 서기 위해.
그의 삶은
어느 공간 위 조명보다
조명이 꺼진 뒤의 태도로 설명된다.
넘어졌던 시간도
그를 어쩌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결을 눌러
더 단단한 형태를 만들었다.
처음 스칠 때
그는 위태로워 보였다.
유리처럼,
금이 갈 듯 위태로웠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열을 통과한 유리는
이전의 유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그는
스스로를 지탱하는 사람.
누군가의 보호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서 있는 사람.
스치는 바람은
그를 지켜보았지만
결국 확인한 것은
그의 의지였다.
그리고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끝에서
바람 역시
자신의 길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타인의 단단함을 통해
배운 것은
성공 이전의 버티는 힘,
화려함 속에서도 고요한 균형,
그리고
자기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의지의 온도.
이제 그는 그의 길을 가고
바람은 바람의 길을 간다.
서로를 소비하지 않은 채
존중의 거리에서
잠시 스쳐 간
두 개의 삶처럼.
過客 心泉
키르케고르는 말했습니다.
“불안은 자유의 어지러움이다.”
우리는 때로
흔들리는 사람을 보며
그가 무너질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어지러움은
떨어지기 직전의 순간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게 되는
자유의 전조일지도 모릅니다.
유리처럼 보이던 시간,
금이 간 듯 보이던 장면들,
그 모든 과정은
깨짐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통과의례였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인간은
완벽해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균열을 지나
자기 중심을 발견하며 서게 됩니다.
위태로워 보이던 사람도
결국은
자기 무게로 땅을 딛고,
자기 의지로 숨을 고르며,
자기 속도로 길을 갑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흔들리되 부서지지 않고,.
넘어지되 사라지지 않으며,
마침내 스스로를 지탱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단단함을 보며
다시 한 번
인간이라는 존재를 믿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되어가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