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가의 데미안

by 과객 심천

한때 그는
빛을 삼키듯 공간 위에 섰다.


박수는 파도였고
시선은 바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불렸다.


사람을 얻으면
세상을 얻는다고 믿던 시절,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별처럼 모아 두 손에 쥐려 했다.


쥐고 있어야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나 별은

쥐는 순간
빛을 잃는다.


환호는 뜨거웠으나
밤은 길었고,
높이는 높아질수록
떨어질 그림자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그는 알았을 것이다.


성공은 왕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게라는 것을.


그래서 어느 날부터
그의 눈빛은
밖으로부터 안을 향했다.


목소리는 낮아지고,
몸짓은 느려지고,
설명은 줄어들었다.


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빛이 안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공간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아래에서 숨 쉬는 사람이 되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자신이 스스로 만든 껍질을
조용히 밀어냈을 것이다.


명성이라는 껍질,
기대라는 껍질,
잃을까 두려워 쥐고 있던 껍질을.


그리고 남은 것.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중심.


그는
그의 문장을 다시 쓴다.


세상을 다 얻지 않아도 좋다.
대신 나를 잃지 않기를.


높이 오르지 않아도 좋다.
대신 깊어지기를.


순간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나를 알아가고 정의하면서,


소리보다 고요를,
속도보다 호흡을,
확장보다 밀도를 택하는 삶.


품격은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고,
단단함은 부드러움 속에 숨는다.


어느 예술가의 데미안은
공허를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고요를
중심에 둔다.


p.s.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말했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우리는 종종 박수와 이름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깨뜨려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 안에 안주하려는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빛을 향해 오르던 시간도 필요했지만,
빛을 안으로 들이는 시간은
더 깊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군중 속에서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


껍질을 밀어낸 자만이
자기 중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에서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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