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그날의 빛은
아직도 눈부시다.
서로의 이름을
가장 크게 불렀던 밤,
시간이 멈출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
그들은
같은 속도로 달렸고,
같은 불안 위에서 웃었다.
화려함은
공기처럼 가벼웠고,
미래는
항상 다음 장면에 있었다.
이제는
그 화려함도 지나가고,
어느 예술가 홀로
솟아 있다.
그래서 문득
발걸음을 늦춘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지,
빛은
서로를 여전히 비추는지.
마주한 얼굴들 속에서
나의 변화가
낯설게 떠오른다.
예전의 내가
그들의 눈에 비치는지,
아니면
그들의 어제가
내 안에서 더 또렷해지는지.
말수는 줄었고,
웃음은 낮아졌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무게로 기울어
다른 리듬을 만든다.
누군가는 멈췄고,
누군가는 돌아섰고,
누군가는
아직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 장면 앞에서
쓸쓸함이 스친다.
허전함이
이유 없이 밀려온다.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난 것처럼.
아마도
허탈감은
잃어서가 아니라
지나왔기 때문에 생기는 것.
함께였던 시간이
완전히 과거가 되는 순간,
추억이
비로소 자리를 잡을 때
조용히 스며든다.
그러나 그는 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잠시 곁에 머물렀고,
스쳐 지나갔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지만
그 어떤 만남도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들의 행복을 빈다.
지금의 자리에서,
지금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행복도
조심스럽게 바란다.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기쁨을.
그리고
앞으로 각자가 걸어갈
미래를 축복한다.
서로가 변해 가는 모습을
붙잡지 않고,
서로의 성장을
침묵으로 인정하며.
그리고 응원하며.
그날의 빛나던 시간을
다시 불러오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을
다시 마음에 건다.
찬란했던, 그날의 그들.
어느 예술가의 어제와 오늘.
모두는
다른 빛으로
다른 시간에 서 있다.
그 차이를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
그것이
지금 이 계절에
그가 얻은
가장 깊은 평온이다.
過客 心泉
젊은 날의 찬란함은 지나갔지만
젊음이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배우고,
여전히 고민하고,
여전히 다시 나아간다.
꿈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단지 멈추지 않는 마음을 묻는다.
누군가의 전성기는 과거에 있었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가능성은
항상 현재형이다.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걷는 우리에게.
우리는 아직
되고 있는 중이다.
“너 자신이 되어라.”
— Friedrich Nietz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