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가와 인생의 동반자

관계와 성장

by 과객 심천

여러 종류의 인생의 동반자가 존재한다.


그의 삶은
한 사람의 그림자로는 채워지지 않았고,
한 시기의 물음은
늘 다음 시기의 답을 향해 흘러갔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관계에 뛰어들기보다
사람의 결을 가만히 읽었다.


어떤 이는 그에게 방향을 남겼고,
어떤 이는 태도를 남겼다.


그렇게 그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 갔다.


어떤 동반자는
예술과 정체성이
다시 배열되던 시기에 나타났다.


머릿속이 소음처럼 어지러울 때,
흩어진 생각들에
조용히 숫자를 붙여 주었고,
가능한 것과
아직은 내려놓아야 할 것을
구분해 주었다.


그는
아이디어의 비행 고도를 알았고,
현실의 활주로 길이도 알고 있었다.


날게 하되,
언제 내려야 하는지도 아는 사람.
속도와 지면을
동시에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생각은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니었고,
아이디어는
밤의 언어를 벗고
낮의 일정표로 옮겨 갔다.


상상은 계획이 되었고,
계획은
비로소 손에 닿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또 어떤 동반자는
아무 말 없이
그의 기복을 건너왔다.


감정이 넘칠 때는
조금 더 낮은 곳에 머물렀고,
그가 가라앉을 때는
그 자리를 지켜 주었다.


설명되지 않은 마음을
굳이 해석하지 않는 태도.


그는 그 앞에서
자신을 번역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 침묵 덕분에
집중은 다시 살아났다.


창작의 호흡은
말없이 이어졌고,
감정은 소비되지 않은 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래 곁을 지켜 준 동반자도 있었다.


깊이와 연륜이
무게가 아닌 중력으로 작동하는 관계.

끌어당기되 짓누르지 않았고,
기다리되 방임하지 않았다.


그는 그 관계에서
배움을 받는 법을 배웠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기준점.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연습의 결과인지
몸으로 보여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상에 닿을 듯한
예술적 교감을 나누는 상대도 있었다.


말 한 줄에 세계가 열리고,
시선 하나에 감각이 깨어나는 사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섬세함을 요구하는 관계.


그는 그 동반자를 통해
재능이 얼마나 예민한 결을 지녔는지,
그리고 예술이 아무리 깊어도
사람의 자리를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


서로를 비추는 빛이 강할수록
그늘 또한 또렷해진다는 것을.


이 모든 동반자들을 지나며
그는 알게 되었다.


인생의 동반자란
설렘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태도를 바꾸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활의 리듬을 바꾸고,
선택의 기준을 바꾸고,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까지
조용히 조율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언젠가
그는 마지막 동반자를 만나게 되리라.


그 만남은
극적이지 않을 것이고,
구원처럼 다가오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상대일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해.”


그 사람은
무엇을 요구하지도,
무엇을 빼앗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모든 것을
생활의 크기로 되돌리는 사람일 것이다.


날게 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억지로 착륙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같은 속도로
옆을 걸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예술은 삶을 압도하지 않을 것이고,
삶은 예술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침묵은 불안이 아닐 것이고,
반복은 권태가 아닐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을 것이다.
누가 나를 완성해 주는지를.


대신 조용히 확인할 것이다.
누가 나와 함께
이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지를.


그때에도 그의 인생에는
여러 동반자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시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게 될 한 사람.
함께 나이들어 갈 수 있는
한 사람.


그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동반자란
서로를 완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미완을
조용히 존중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過客 心泉


p.s.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등을 보며 속도를 배우고,
누군가의 침묵을 건너며 깊이를 익히고,
누군가의 기다림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호흡을 알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안의 가능성을 먼저 믿어 주고,
어떤 사람은
흩어지는 마음을 조용히 붙들어 줍니다.


앞서 걷는 이는
먼 곳의 별처럼 방향을 비추고,
도반은
같은 흙길을 함께 밟으며
발의 온도를 나눕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곁에 남는 사람은
우리를 더 높이 날게 하는 이가 아니라,
같은 속도로
같은 계절을 건너는 사람일 것입니다.


성장은
홀로 결심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 속에서
서서히 모양을 갖추는 일.


결국 인생은
누가 나를 완성해 주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이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가의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함께 걷는 발걸음이
가장 깊은 스승이 되므로.


작가의 이전글이기지 않는 어느 예술가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