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핑크빛 상처와 푸른 치유 사이

엄마가 건넨 작은 그늘, 그 안에서 나를 만나다.

by ice

초등학교 어느 봄날 아참, 엄마가 건네준 옅은 핑크빛 블라우스를 받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믿었다. 보들보들한 폴리에스터 촉감, 파스켈 색감, 작은 레이스 장식까지.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멈췄다.

거울 속 소녀는 내가 아니었다. 아니, 분명 나였지만, 내가 상상했던 나는 아니었다. 핑크는 내 얼굴을 환하게 비춰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피부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얼굴과 옷 사이에 이상한 경계가 생겼다. 옷은 예뻤지만, 입고 있는 나는 예쁘지 않았다.

좋아하는 색인데. 좋아하는데. 왜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거지?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답이 없다는 것이 더 잔인했다.

결국 그날, 나는 그 블라우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느꼈던 어색함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옷깃을 자꾸 만지작거렸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거울을 확인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을 때, 나는 핑크색 옷을 접으면서 무언가를 함께 접어 넣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 같은 반 남자애가 나를 '까미'라고 불렀다. 별명처럼,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얼굴이 뜨거웠다.

'까미'는 귀여웠고 어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빴다. 그 별명 속에는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 담겨 있었다. 나는 하얗지 않다. 핑크가 어울리지 않는다.

웃어넘기지 못했고, 내색을 감추지도 못했다. 그 뒤로 거울 앞에 설 때마다 핑크 블라우스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색이 나를 초라하게 만든 그날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피부 톤에 맞는 색'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퍼스널 컬러라는 말도 알게 되고, 화장품 가게에서 점원이 내 팔목에 여러 색을 대보며 "이 톤이 어울리세요'라고 말해줬다. 코랄, 피치, 살구색 - 핑크와 가까우면서도 다른 색들. 여전히 라이트 핑크가 좋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입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니, 입지 않는 것이 나를 더 돋보이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그리고 스물 다섯 살 여름, 엄마가 양우산을 건넸다.

"이거 보다가 너 생각나서 샀다."

청색 바탕에 작은 핑크 꽃무늬가 흩뿌려진 우산이었다. 펼쳐보니 안쪽에도 작은 무늬가 이어졌다.

"네가 핑크 좋아하잖아, 근데 이건 얼굴에 안 닿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엄마는 그렇게 덧붙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동안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엄마가 알고 있었구나. 내가 핑크를 좋아한다는 것도, 입지 못한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오래 불편했는지도.


그 여름부터 나는 양우산을 들고 다녔다. 우산을 펼치면 머리 위로 작은 하늘이 펼쳐졌다. 청색 바탕에 핑크 꼿무늬. 햇빛은 그 천을 통과해 부드러운 그늘을 만들었다. 그 그늘 아래서, 핑크는 더 이상 나를 압박하지 않았다. 피부에 닿지 않아도 괜찮았다. 멀리서 함께해도 충분했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거리. 양우산은 그 거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그 우산과 비슷한 우산을 편다. 나도 모르게 청색이나 라이트 핑크의 작은 꼿무늬 모양의 우산을 사게 됐으니까. 여전히 화장품을 고를 때 핑크 앞에서 잠깐 망설인다. 웜톤과 쿨톤이 함께 써도 되는 미지근한 핑크색을 발라보곤 '역시 아니지'하고 코랄 쪽으로 손을 옮긴다. 그 망설임이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나를 돌보는 방식이 되었다. 엄마는 내 콤플렉스를 지워주려 하지 않았다. 대신 함께 안을 방법을 찾아줬다.

핑크 블라우스가 드리운 그림자는 길고 어두웠지만, 양우산은 그 그림자 위에 또 다른 그늘을 드리웠다. 그 작은 그늘 안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극복이 아닌 수용. 절망이 아닌 희망. 거부가 아니 포용.

엄마가 건넨 그늘 안에서, 나는 나를 만났다.



"사랑은 때로 작은 그늘이 되어, 가장 빛나는 햇살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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