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만난 가을
유리창 너머로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테이블 위 커피잔을 환히 비추고 있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이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요즘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밤에 잠을 못 자. 뒤척이다 보면 아침이고."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일에도 화가 나고,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말을 하다가 멈췄다. '갱년기'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면 뭔가 확정되는 것 같았다. 나이 든다는 것을,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결국 말했다.
"갱년기인 것 같아."
친구가 커피잔을 들다 말고 나를 봤다. 그러더니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벌써 갱년기구나."
그게 전부였다. 위로도, 조언도 없었다. '괜찮아질 거야'도 '다들 그래'도 아니었다. 그냥 담담한 확인. 우리가 그 나이가 됐구나.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했다. 왜 그 말이 좋았을까.
친구는 내 고통을 가볍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받아들였다. 나와 함께.
'우리가'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 낯설고 불편한 시간을 함께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사실 갱년기라는 단어를 처음 의식한 건 몇 달 전이었다. 밤에 갑자기 더워서 깼다. 땀이 들을 타고 흘렀다. 창문을 열어도 답답했다. 다음날 검색을 했다.
'야간 발열' '수면 장애' '갱년기 초기 증상' 검색 결과를 읽으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화면에 나온 증상들이 하나씩 내 상태와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이럴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좀 더 피곤해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증상은 계속됐다.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났다. 집에서 가족이 문 닫는 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섰다.
일하는 중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았다. 문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가장 힘든 건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내 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차분하고 싶을 때 차분할 수 없었다. 마치 서서히 고장 나는 기계 같았다.
친구에게 떨어놓기 전까지 나는 이걸 숨기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괜히 나이 든 사람 취급받을 까 봐. 그런데 친구는 그냥 받아들였다.
"우리가 벌써 갱년기구나."판단도 연민도 없이. 그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담담하게.
요즘 거울을 볼 때가 있다. 눈가의 주름, 목의 선, 손등의 핏줄. 언제 이렇게 됐나 싶다. 20대의 나를 기억한다. 30대의 나도 기억한다. 그때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온 것이다. 부정해도, 억울해해도, 슬퍼해도. 시간은 흘렀고 몸은 변했다.
갱년기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다. 힘들다. 불편하다.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도 내 삶의 일부다.
피 할 수 없다면 지나가야 한다.
친구의 그 말이 위로가 된 건, 이 시간을 혼자 견디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것. 그게 조금 덜 외롭게 만들었다.
오늘도 밤에 잠이 안 올지 모른다. 내일도 예민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이건 내가 고장 난 게 아니다.
이건 내가 약해진 게 아니다.
이건 그냥, 살아온 시간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