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에게 가장 따뜻한 위로의 단어

가을 환절기, 따뜻한 위로의 단어

by ice

어젯밤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찌뿌듯했고, 커피를 마셔도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책은 잘 읽혔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날이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문장 하나에 손이 멈췄다.

"마음이 무겁네요"

다섯 글자였다. 특별한 수사도, 위로의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익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힘내'도 '괜찮아질 거야'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내 앞에 앉아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음, 나도 알 것 같아요." 그 상상만으로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즘 내 기분을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울하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피곤하다고 하기엔 부족했다. 그냥 모든 게 무거웠다. 몸도, 마음도, 하루도.

가을이 깊어지면서 이런 기분이 더 자주 찾아온다.

여름의 열기는 식었는데 겨울의 적막은 아직 오지 않은,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느낌. 무언가는 끝났지만 새로운 건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문장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무겁네요."

이 문장이 좋았던 건 위로하려 들지 않아서였다. 내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냥 인정해줬다. 무거울 수 있다고,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빨리 위로하려 든다.

아픈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말고, 힘든 사람에게 "곧 나아질 거야"라고 말한다. 물론 좋은 의도다. 하지만 때로는 그 말들이 오히려 부담이 된다. 아직 괜찮지 않은데, 아직 나아지지 않았는데, 그래야 할 것 같은 압박.

"마음이 무겁네요"는 달랐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줬다. 해결책도, 전망도 없이. 그저 지금 여기, 무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해 줬다.

그리고 그게 충분했다.

창밖을 보니 가로수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두 장씩. 나뭇잎은 떨어지면서 저항하지 않는다. 봄에 피어났던 것처럼, 가을에 떨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나도 그럴 수 있다. 무거울 수 있다. 찌뿌듯할 수 있다. 이유 없이 가라앉을 수 있다. 그게 이상한 게 아니다.

"마음이 무겁네요."

오늘은 나도 내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억지로 기운 내려하지 않고, 빨리 나아지려 애쓰지 않고, 그냥 이 무게를 잠시 느끼기로.

이 계절도 지나갈 것이다. 가을이 겨울로, 겨울이 다시 봄으로 가듯이.

지금은 그냥 무거워도 괜찮다.



갱년기란, 결국 평화의 온도를 배우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