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 88개의 점으로 엮은 시(詩)의 정원, 리쿠기엔(六義園)
일본의 에도시대(江戸時代),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들이 칼날 끝에 권력을 새길 때, 야나기사와 요시야스(柳沢吉保, 1659~1714)는 정원이라는 캔버스 위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했다. 그에게 리쿠기엔(六義園)은 단순한 정원이나 휴식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일본의 노래, 와카(和歌) 속 절경들을 현실로 소환하여 곁에 두려 했던 열망이 빚어낸 결정체였다.
이곳은 일본 고전 시학의 정수인 '리쿠기(六義)', 즉 시를 짓는 여섯 가지 원칙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다. 요시야스는 기이 반도(紀伊半島)의 아름다운 해안선부터 전설 속 신화의 섬까지, 시인이 노래했던 88곳의 명승지를 정원 곳곳에 점묘하듯 심어놓았다. 석주로 세운 88개의 경점(景點)을 따라 걷는 길은 곧 수천 년을 이어온 일본의 단가(短歌)를 온몸으로 읽어 내려가는 사유와 시심(詩心)의 여정이다.
정원 곳곳에 자리한 차야(茶室)들은 결코 자신을 과장되이 드러내지 않는다. 화려함을 걷어낸 그 소박하고 낮은 공간은, 오히려 인간의 유한함과 불완전함을 마주하게 하는 철학적 장치다. 그 정적(靜寂)의 공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덧없는 생을 살아가는 인간이 비로소 자연의 영원함과 조우하며 찰나의 평온을 얻는 회귀(回歸)의 입구가 된다.
하지만 세월은 무상하여, 저마다의 풍경을 품고 있던 다수의 차야(茶屋)는 전란의 화마 속에 사라졌고, 그 곁을 흐르던 옛 물길의 자취에는 이제 풀꽃들이 대신 피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럼에도 리쿠기엔이 여전히 빛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풍경 너머 '보이지 않는 과거의 아름다움'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힘에 있다.
나는 이제 그 88개의 방대한 기록 중,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여덟 개의 점(八景)’을 골라내어 나만의 색채로 점묘해 보고자 한다. 요시야스가 꿈꾸었던 극락의 편린들을 찾아 떠나는 이 산책은, 결국 우리 삶의 찰나와 영원,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시간의 결정(結晶)을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출처: 東京文京区観光協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