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점묘(東京点描)2

제1편 - 리쿠기엔(六義園) 1경- 찰나를 새기는 신전ㅡ시다레자쿠라

by 소요유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일본의 풍경 속에 놓일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듯 느껴지는 것이 있다. 내게는 단연 벚꽃이 그렇다. 오늘은 일본인이 그토록 사랑하는 '시다레자쿠라(수양벚나무)'를 마주하기 위해 리쿠기엔으로 향했다. 내원대문(内庭大門)을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그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는 하나의 거대한 ‘신전(神殿)’이었다.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화려한 삶 이면에 흐르던 깊은 허무와 슬픔의 미학,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가 이 한 그루에 응축되어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극치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찰나의 흔적으로 사라져도 좋다는 애잔한 생의 철학이 가녀린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하늘로 뻗지 못하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시다레자쿠라의 자태는, 낙화의 순간을 단 1초라도 늦추려 허공을 붙잡고 있는 간절한 '머무름'처럼 다가온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공중에 매달린 채 그 찬란한 찰나를 박제하고 싶은 꽃봉오리들의 바람이 전해져 온다.


대부분이 화려한 꽃의 폭포 아래서 탄성을 내뱉으며 셔터를 누를 때, 이방인인 나의 시선은 정작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나무의 낮은 곳, 나무둥치에 머물렀다. 이끼와 이름 모를 풀들이 기생하는 그 둥치는 물기 없이 말라비틀어진 정령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뒤틀린 검은 몸통은 고통을 묵묵히 삼켜낸 수도자의 등 같기도 하다. 꽃의 화려함에 눈이 먼 이들은 결코 보지 못할, 그 찬란함을 밀어 올리기 위해 스스로 메말라간 줄기의 비명이 그곳에 있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나무둥치와 그 위로 뿜어져 나오는 극락의 미학 사이에는, 혹독한 자연재해와 싸우면서도 끝내 화려하게 피고 지기를 갈망했던 일본의 잔혹한 역사가 서려 있는 듯하다.



일본인이 유독 아끼는 시다레자쿠라는 벚꽃의 돌연변이 수종이다. 군락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곧게 뻗는 한국의 왕벚나무와는 결이 다르다. 홀로 세월을 견뎌낸 고목은 돌연변이의 고독을 봄비 같은 가녀린 가지 위에 극렬하게 토해낸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벚꽃 사랑은 거의 광적인 집착에 가깝다. 궁극의 아름다움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슬픔의 탄성, "아-". 이 한 번의 찰나를 위해 그들은 살아있는 봄날의 여정을 기꺼이 내어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도 정원 앞에는 긴 행렬이 줄을 이었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에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든 인파다. 유모차를 미는 주부부터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 휠체어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장애인까지. 한 시간이 넘는 기다림을 그들은 마치 거룩한 의식을 치르듯 침묵으로 인내한다. 그 줄 끝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내일이면 사라질지 모를 찰나의 미학을 오늘 자신의 생(生)에 아로새기려는 절박한 확인이었으리라.


이바라키 노리코의

"올해도 살아서 벚꽃을 보고 있습니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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