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리쿠기엔 2경: 이모야마 세야마-소멸과 생성의 이중주
리쿠기엔의 해질 녘, 폐원 시간이 다가오자 아쉬움에 이끌려 다시 한 번 정원을 뒤돌아본다. 연못 한가운데 고요히 떠 있는 섬 나카지마(中島), 그리고 그 위에 나란히 솟은 두 봉우리 이모야마(妹山)와 세야마(背山)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남과 여를 상징한다는 이 두 형상은 다산과 번영이라는 오래된 소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두 봉우리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끝내 닿지 않는, 미묘한 간극을 사이에 두고 서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틈에서, 나는 오래된 신화 하나를 떠올린다.
세상과 일본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두 존재,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오누이로 태어나 부부가 된 그들은 함께 세계를 낳았지만, 그 끝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파국이었다. 불의 신을 낳다 죽은 아내는 죽음의 강을 건너고,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까지 쫓아간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던 그녀와 재회한 순간, 남편은 이미 죽음의 세계에 잠식되어 부패해버린 아내를 발견한다.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남편은 쫓아오는 아내를 필사적으로 뿌리치고 이승으로 돌아온다. 그 순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으로 남지 않는다. 버려졌다는 절망감에 아내는 저주처럼 말한다.
“나는 (당신 세계의 사람을) 하루에 천 명씩 죽여버리겠어요.”
그러자 남편은 물러서지 않고 응답한다.
“그렇다면 나는 하루에 천오백 명을 태어나게 하겠다.”
이들의 선언 이후, 이 세계는 하나의 리듬을 갖게 된다. 재앙같은 죽음은 멈추지 않고, 축복같은 탄생 또한 멈추지 않는다. 죽음과 탄생이 서로를 지우지 못한 채, 끝없이 맞물린다.
이야기는 신화로 남았지만, 그 구조는 현실의 풍경과 닮아 있다. 땅은 흔들리고, 불은 타오르며, 물은 넘쳐흐른다. 재난은 반복된다. 일본인에게 재난은 숙명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고, 무너진 자리 위에 다시 집을 세운다. 일본인들에게 재난은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흥하는 것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어쩌면 그 오래된 신화적 선언 때문이 아닐까. 죽음보다 더 많은 생명을 끝내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신의 의지, 그 영속의 약속 말이다. 이 이야기를 품은 채 다시 나카지마(中島)를 바라보면, 이모야마와 세야마는 더 이상 남녀를 상징하는 단순한 조형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과 생명, 재난과 부흥이라는 두 에너지가 빚어낸 형상에 다름 아니다.
해가 더 낮아진다. 빛은 색을 잃고, 사물의 윤곽만을 남긴다. 두 봉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물 위로 미끄러진다.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던 그림자는, 어느 순간 구분을 잃고 하나로 겹쳐진다. 그 장면 앞에서, 리쿠기엔은 말없이 이야기한다. 죽음과 생명은 서로를 이겨내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삶 위에서 동시에 흐르는 두 갈래의 방향임을. 무너짐과 일어섬, 사라짐과 다시 태어남— 그 끝없는 순환은 비극이 아니라, 이 땅이 오래도록 선택해 온 방식이다. 그리고 이 작은 섬은 그 유구한 리듬을, 가장 고요하고도 또렷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