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면 족해
"내가 이러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소파에 등을 대고 앉은 남자가 중얼거린다.
여섯 살에 엄마 잃고 안 해본 일 없이 살았는데......
묻는 사람이 없으니 더 처량하다.
주방에서 쌀 씻는 아내는 궁상맞은 소리 그만하라며 그를 향해 쏘아붙인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은데 저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오나 몰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내 마음과 다르면 단번에 처내는 것이 편한 아내는 오늘도 이 남자를 더 처연하게 만들고 있다.
여섯 살 어느 날부터 인생에 기쁨이 사라졌다. 엄마 없는 아이라는 말을 노상 듣고 자랐고, 새엄마의 품은 겨울의 바람보다 더 매서웠다. 긍정의 언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죽음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이 사라지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한 핵심메시지를 뒤집어 보면,
영원하기를 바라는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있기를, 나를 포함한,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현존하길 바라는 욕망 때문에 죽음이 두려울 수 있다. 이별의 아픔은 끝끝내 적응할 줄 모르고, 움켜쥔 것을 놓는 아픔도 매번 쓰리다.
다시 아빠의 말을 바라본다. 내가 이러려고 태어난 것이 아닌데.
"그럼 아빠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거야?"
지금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고... 보란 듯이 내세울 수 있는 직업과 여유로운 삶을... 취한 듯 조용하다.
품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는 마음 때문에 죽음에 반발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현실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뫼비우스처럼 반복되는 생각을 끊어낼 수 있을까. 팔십 평생 살아온 삶이, 점점 어두워지고 좁아져서 원망스럽고 공허한 소리로 가득하다. 어떤 희망도 바라지 못하고 짓눌리고 더 우울해 보인다. 손을 내밀어 당신이 이뤄낸 것들을 나열해도 내 손을 잡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당황스럽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그는 죽음을 상상하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음성을 뱉는다.
인생의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쇼펜하우어의 문장을 여륵과 보유에서 읽었다. 자신이 쌓아 올린 인생의 보석들을 천시하고 밀쳐낸다. '조금 더 운이 따랐다면, 지금보다 더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야속한 세월을 붙잡고, 즐거웠던 순간을 버리고, 행복의 약속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모든 상황을 못마땅해한다. 그런 당신이 오늘따라 더 처연해서 바라볼 수가 없다.
예순을 넘기고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같은 말을 했다. 일흔을 넘기고도, 여든을 너머 다시 또 그 소리다. '내게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상술이 이렇게 성실할 일인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글솜씨로 죽음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레퍼토리 덕분이다.
우리 곁을 떠나는 사람들, 단단히 맺어진 인연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 죽음이 더욱 격렬하게 싫어질지도 모른다. 오늘 밤이 지나면 아침을 맞는다. 일어나 보니 내 나이가 여든이라면 나는 과연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다시 이 인생을 살고 싶다고 간절히 두 손을 모을 수 있을까. 이렇게 얻은 것이 많은데, 또다시 살고 싶다고 기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