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 기획연재 (에세이 편)

극작가 장거리의 식물소감(所感) 4. 꽃 속에 또 꽃, 백일홍

by LINK

* 코너 소개

‘때가 되면 피고 지는구나...’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쳤던 길 위의 꽃들에 새삼스럽게 마음이 가는 중입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싶고, 그들과 나를 잇고 싶어 꽃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기록합니다. 나만의 식물도감인 ‘식물소감’에는 꽃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주고, 말을 건네는 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식물소감' 속 꽃들과의 이야기에서 독자 여러분의 눈길이 닿지 않던 존재들의 모습이 한 번쯤은 떠오르기를, 그들과 마주했던 순간이 언제였더라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극작가 장거리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엄마는 스물네 살에 언니를 낳고, 스물여섯 살에 나를 낳았는데, 나의 삶에 대입하여 생각하면 너무나도 뭘 모르는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삼십대 중반이 된 내가 아직도 이렇게 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걸 떠올리면 더더욱.


엄마는 장남에게 시집 와 늘 바쁘고 고되었던 엄마(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땅 부잣집 장남과의 중매를 대차게 거절하고, 그 다음 중매 상대이자 차남인 아빠와 결혼하게 되었다. 당시 아빠는 군무원 시험에 합격하였는데, 그래서 엄마는 그래도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삶은 예측 불가. 성격도 모난 데가 없고, 허우대도 멀쩡한 아빠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잘 지내다가도 이따금씩 술에 빠져 며칠씩 일을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럴 때에는 술을 먹지 못하게 하고, 해독을 해야 하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아빠는 결국 내가 열세 살이 되던 해 먼저 하늘로 가버리고야 말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때 엄마의 나이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엄마는 십수 년 간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하고, 가세가 기울지 않게 신경 쓰고, 딸 둘을 길러내야 하니 늘 머리가 아팠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삶은 그런 장면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아빠와 함께 산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엄마와 살아오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삶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몇 장면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시골의 초, 중학교에서는 꽤 똘똘하여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를 받던 아이가 더 큰 꿈을 가지고 인근 도시로 나가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선생님이 될까, 여군이 될까, 아나운서가 될까 고민하다가 더 넓은 세상이 보고 싶어 버스 안내양으로 일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마음껏 여행도 하고, 바다도 보고...... 그러다가 중매로 소개받은 아빠와 결혼을 하게 되기까지.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출발 지점은 사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가고 싶은 곳이 많던 20대 여성의 자유로운 생활이 끝난 하나의 도착 지점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결혼 이후의 삶은 매일같이 긴장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쓰며 살아온 엄마가 작년에 예순 살이 되었다. 아빠를 떠나보낸 이후의 긴 시간을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지 사실 나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술을 전혀 마시지 않던 사람에서 아빠가 왜 술을 마셨는지 알겠다며 매일 막걸리 한두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예순 살의 엄마는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의 많은 시간 동안 TV를 멍하니 응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설거지하고 난 그릇에는 밥알 조각이나 기름때가 여전하기도 했고, 널어 놓은 빨래는 어딘가가 뭉쳐있거나 구겨져 있었다. 내 눈에는 모든 행동의 마무리가 개운하지 않았다. 자꾸 손이 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엄마를 답답해하기 시작했고 자주 큰 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그러나 2020년의 어느 가을, 길에서 만난 백일홍 때문에 나는 엄마의 삶을 조금은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TV만 보는 것이 걱정돼 집 앞 얕은 산에 산책을 가자고 제안했던 그 날, 엄마가 화단에서 백일홍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백일홍을 시작으로 엄마는 화단에 있던 꽃들의 이름을 대개는 맞추었다. 엄마가 너무 척척 이름을 말하기에 나는 반신반의하며 검색을 했는데 그게 맞는 것이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꽃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엄마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고 나는 엄마보다 항상 뭔가를 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아니었다. 내가 틀렸다.


엄마와 나는 화단에 앉아 백일홍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분홍 꽃잎으로 둘러싸인 꽃 속에 또 노란 꽃이 있었다. 나는 ‘백일홍’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정말 처음 알았다. 문득, 백일홍이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소중한 기억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나 사진 한 장으로는 존재했을지 모르나 내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 삶 속의 시간들 말이다. 나는 다음에 어디에선가 백일홍을 봤을 때 알아볼 수 있게 위해 나는 “꽃 속에 또 꽃이 있는 꽃”이라고 말로 외워버렸다. (그런 얼굴을 한 꽃이 또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때는 일단 그런 식으로 개념화해서 외우는 것 밖에는 기억하는 방법을 모르겠더라. 그 후에 백일홍 그림을 한 장 그렸고, 지금은 이렇게 글로 기록하려고 한다.


그 날 내가 엄마에게 배운 것은 백일홍이라는 꽃이기도 했지만, 꽃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멋지다는 사실과 엄마는 60년간 자신의 삶을 지구력 있게 살아 온 단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자꾸 잊어버린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미안하고 쓰라렸다. 그래서 나에게는 언젠가 꼭 해야 할 숙제가 있다. 엄마의 얼굴을 그리기, 엄마의 삶을 글로 기록하기이다. 바쁘다, 쑥스럽다는 핑계로 아직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잊지 않고 있으려 한다. 앞으로 길에서 백일홍을 볼 때마다 꽃이 내게 재촉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 꼭 할게. 약속해. 오늘도 백일홍 덕분에 다짐해 본다.


백일홍.jpeg 꽃 속의 꽃, 내 안의 나, 엄마 안의 엄마, 백일홍




* 극작가 장거리의 식물소감(所感)은 5회 연재물입니다. 편집자 사정으로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 이번주 목요일에 마지막 연재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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