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장거리의 식물소감(所感) 3. 행운을 빌어, 토끼풀꽃
* 코너 소개
‘때가 되면 피고 지는구나...’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쳤던 길 위의 꽃들에 새삼스럽게 마음이 가는 중입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싶고, 그들과 나를 잇고 싶어 꽃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기록합니다. 나만의 식물도감인 ‘식물소감’에는 꽃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주고, 말을 건네는 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식물소감' 속 꽃들과의 이야기에서 독자 여러분의 눈길이 닿지 않던 존재들의 모습이 한 번쯤은 떠오르기를, 그들과 마주했던 순간이 언제였더라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극작가 장거리
(다른 일로 돈을 버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이것을 직업이라고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쓴 희곡으로 공연을 발표하게 되는 것이 극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이다 보니 꽃을 선물 받을 일이 많았다. 나는 2017년에 처음으로 내가 쓴 작품을 발표했고 그 이후 몇 번의 공연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꽤 많은 꽃을 받았다. 그런데 졸업식 같은 행사 때 온 가족들이 출동해 꽃다발을 든 사진을 찍고 축하하는 살가운 분위기의 가정은 아니다 보니 학창시절의 나는 오히려 꽃을 받아본 일이 드물었다. 또한 가성비를 중시하는 경제관념을 가진 엄마 덕에 곧 시들어버릴 꽃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은 낭비라는 개념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꽃다발이 늘 어색했다.
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강아지, 고양이, 혹은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 팔을 어찌 해야 할지, 어디에 힘을 줘야 할 지 몰라 허둥대는 것처럼 꽃다발을 받아든 나의 태도도 무언가 엉거주춤 했다. 그 뿐일까, 어떻게 하면 꽃의 아름다움을 오래 유지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말려서 두고두고 볼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해서 내 손에 들린 꽃다발은 내가 받아든 순간 생명이 끝날 것만 같아 두렵고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 정도면 꽃다발 공포증 아니었을까?
이렇듯 꽃다발로 유발되는 여러 가지 불편한 생각 때문에 ‘왜 사람들은 나에게 꽃을 주는 것인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생각이 몇 걸음이나 앞서나가 꽃 살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람에게 ‘꽃을 절대 사오지 말라’며 당부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나로 하여금 ‘꽃을 주는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 꽃이 생겼다. 바로, 토끼풀꽃이다. 토끼풀꽃은 우리가 흔히 클로버라고 부르는 잎들과 함께 피어있는 하얀색과 초록색이 섞인 그 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소박하고 찾아보면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 2021년을 살고 있는 어린이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인지 궁금해지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도 즐겨 하는 놀이 중 하나였고, 토끼풀꽃으로 반지나 팔찌, 화관 등을 만드는 것도 꽤 대중적인 놀이였다. 토끼풀꽃의 줄기를 손톱으로 찍어 살짝만 가르고 그 안에 남은 줄기를 넣거나 또 다른 토끼풀꽃의 줄기를 엮어 악세서리를 만들고, 만든 후에는 내가 착용하거나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엄마에게 가져다주거나 했었다. 생각해 보면 토끼풀꽃이 아마 내 생에 최초의 꽃 선물은 아니었을까 싶다.
잠깐 토끼풀꽃 옆에 있는 네잎클로버로 시선을 돌려보자. 매직아이나 숨은그림찾기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무수한 세잎클로버 사이에서 찾아낸 그 귀한 것을 우리는 책에 끼우거나 코팅해 고이 간직하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지 않았던가. 토끼풀꽃 언저리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마음을 떠올려 보니 타인에게 꽃을 전한다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문장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꽃을 전한다는 것은, 꽃을 받는 당신을(나를) 축복하고, 행운을 빌어주는 마음! 그거구나!”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타인에게 꽃을 준다는 것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행동인가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선 나에게 꽃을 들고 다가와 준 다정한 얼굴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꽃을 고르고, 나를 향해 걸어왔을 시간들을 떠올리니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갑자기 토끼풀꽃으로 만든 반지나 팔찌를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파트 화단을 기웃거려보았다. 그런데 막상 꽃을 꺾기가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꽃을 꺾는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 나의 성장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네잎클로버라도 찾아 선물하고 싶었지만 화단에 쭈그려 앉아 클로버를 찾을 엄두가 안 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 파는 곳이 있었다. 시간을 들여 찾은 것은 아니지만 돈을 들여 산다고 해서 행운을 전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사람이 꽃을 선물했으면 한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말이다. 실제 꽃이어도 좋고, 사진이나 그림이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꽃으로 인사를 전하면서 서로 축복하고 행운을 빌어주고, 그 마음을 생각하다가 눈물 한 방울이 도르륵 떨어지기도 하고... 건조한 하루하루를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서로의 마음 나눔이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토끼풀꽃이 내게 새삼 가르쳐 주었다.
* 극작가 장거리의 식물소감(所感)은 5회 연재물입니다. 매주 목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