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장거리의 식물소감(所感) 2. 스며들어봐, 봉숭아
* 코너 소개
‘때가 되면 피고 지는구나...’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쳤던 길 위의 꽃들에 새삼스럽게 마음이 가는 중입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싶고, 그들과 나를 잇고 싶어 꽃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기록합니다. 나만의 식물도감인 ‘식물소감’에는 꽃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주고, 말을 건네는 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식물소감' 속 꽃들과의 이야기에서 독자 여러분의 눈길이 닿지 않던 존재들의 모습이 한 번쯤은 떠오르기를, 그들과 마주했던 순간이 언제였더라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극작가 장거리
‘새로운 사람과 가까운 관계가 된 것이 언제였지?’
‘낯선 존재에게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 것이 언제였지?’
꽃 하나가 던진 질문이 여기까지 와 닿았다. 생각 끝에 내린 답변은 “잘 모르겠다” 였다. 물론, 생계를 이어야 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 등의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곁을 주기보다는 선선한 거리를 유지하며 언제든 멀어질 준비를 해 왔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질문을 던진 꽃은 봉숭아이다. 봉숭아가 맞나, 봉선화가 맞나 찾아보니 두 이름 모두로 불린다고 한다. 두 이름 중 선택할 수 있다면 자음 ‘ㅇ’이 세 개나 들어있는 봉숭아가 어쩐지 더 사랑스러워 그렇게 부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 보겠다. 이따금씩 거리 풍경 속에서 마주쳤던 봉숭아가 의미가 되어 다가온 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손에 곱게 스며들어 있던 봉숭아물 때문이었다. 주황빛이 아름답다는 생각에 앞서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이 왜 용감하냐고? 일단 봉숭아물을 들이고 나면 손톱이 자라 다 잘라내기 전까지 지울 수가 없는데(비록 그 시간들이 인생에서 그다지 긴 기간은 아니지만), 그 소멸의 시간을 바라보고, 살아내는 것이 나는 싫었던 것이다. 언제든 싫을 때 지우고 떠나고 끊어낼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늘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가급적 나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손톱에 망설임 없이 봉숭아물을 들였던 적이 있었지만 만약 지금의 내가 손톱을 꾸며본다면 언제든지 아세톤으로 지워버릴 수 있는 매니큐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좋음과 나쁨의 문제도 아닌 그저 지나온 삶의 경험 속에서 내가 선택한 태도였다. 실망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호감을 표현하는 일은 드물었고, 어떤 일에 몰입하거나 순수한 열정을 쏟지도 않았다. 그 사람이, 그 일이 나에게 스며들지 않도록 한 발은 늘 밖에 빼두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방식으로 마음을 거두고 지내면서 몇 년간은 큰 자극 없이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시간들이 행복하였는가 질문한다면 섣불리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였을까 싶어 과정을 물어보았다. 무엇이든지 다 있는 잡화점에서 가루를 사서 했다고 한다. 가루를 이용하면 물도 금방 들고, 번거롭지도 않단다. 나도 더불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봉숭아물을 들이는 과정의 순간들을 건져올려 본다. 봉숭아물을 들였던 때는 항상 여름방학이었고, 장소는 외할머니 댁이었다. 4살 차이의 사촌 언니와 2살 차이의 우리 언니와 밖에 나가 보라색, 빨간색, 분홍색, 주황색의 꽃잎을 따고 초록색 잎도 따 모아 놓는다. 그리고는 비닐 봉투를 가위로 여러 장 잘라 놓고 실도 잘라 놓는다. 백반도 있어야 한다. 어릴 때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던 백반, 이제 와서 찾아보니 염분이 있는 원소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화학 물질로 천연 물질을 염색할 때, 국수를 만들 때, 지혈할 때 등에 사용한다고 한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꽃잎과 잎을 섞어 찧고 반죽으로 만든다. 돌로 찧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마늘 빻는 절구를 썼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완성되면 조금 떼어 손톱 위에 올리고 비닐 봉투로 감싼 후 실로 묶는다. 그리고 하룻밤을 잤었는데, 아침에 깨어 보면 손가락을 싸 둔 비닐 봉투는 이미 어딘가로 가 버린 후였다.
언제부터 봉숭아물을 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손톱이 자라면서 주황색 물든 손톱이 위로 점점 올라가는 것이 썩 지저분해 보였나보다. 봉숭아물 들인 것이 후회스럽다는 마음들 때문에 서서히 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만들어 낸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봉숭아에 대해 두서없는 생각들을 이어가는 와중에 갑자기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다. ‘봉숭아와 나와는 이렇게 주절주절 떠들 수 있을 정도의 추억이 있었구나. 그리고 언제 물이 다 빠지나 기다리던 손톱은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다 잘려나가 버렸네.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었어. 봉숭아물 들이기 해 봐서 다행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스며들게 만드는 것, 나를 향해 오는 것들이 스며들게 두는 것, 그런 작은 ‘용감함’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시점이라 친구 손톱의 봉숭아가 하필 선명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손가락 몇 개에 물을 들이고 싶어 아파트 화단의 봉숭아를 조금 따볼까 하다가 모두의 봉숭아는 남겨두기로 하고 나도 한 번 키워보기 위해 작은 화분을 장만해 보았다.
* 극작가 장거리의 식물소감(所感)은 5회 연재물입니다. 매주 목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