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부터 아이유까지, 한국 캐럴의 어제와 오늘

권경률의 노래하는 한국사 (45)

by 권경률

“노엘, 노엘, 노엘, 노엘 /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축음기 음반이 지직거리며 돌아가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여류 성악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특유의 청아한 음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1926년에 나온 윤심덕의 성탄 축하곡 ‘파우스트 노엘’이다. 그녀는 ‘사의 찬미’로 한국 대중가요의 신호탄을 쏘아올렸을 뿐 아니라 국내 최초의 캐럴 음반을 발표한 가수로도 이름을 남겼다.


‘파우스트 노엘’의 원곡은 서양의 전통 캐럴 ‘더 퍼스트 노엘(The First Noel)’이다. 번안곡을 취입하며 영어 제목의 일본식 발음을 한글로 옮긴 것이다. 노엘은 원래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찬송가나 미사곡에 두루 쓰였다. ‘파우스트 노엘’이 음반 발매 당시 찬송가로 분류된 것도 그래서다.


2.jpg 1926년 한국 최초로 캐럴 음반을 낸 여류성악가 윤심덕 / 사진 : 중앙포토


한국 최초로 캐럴 음반 낸 윤심덕


“내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이라. 세계 만국의 큰 명일이니 조선 인민들도 마음에 빌기를.”


1896년 12월 24일 독립신문에 실린 크리스마스 소개 기사다. 한국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19세기 후반에 기독교 선교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서양 음악과 함께 보급되었다. 1897년생인 윤심덕도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나고 자라 평양에서 학교를 다녔다.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를 만큼 기독교 교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그녀가 서양 음악을 공부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선구자가 된 것은 알고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윤심덕은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음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조선에서 여류성악가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렸고 유부남 극작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고통받았다. 1926년 8월 그녀는 일본 오사카의 닛토레코드에서 여러 곡을 녹음한 뒤 귀국길에 연인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조선을 뒤흔들었고 그 직후에 발매한 음반 <사의 찬미>는 10만 장 이상 팔리며 신드롬을 몰고 왔다. 1926년 10월에는 윤심덕의 캐럴 음반 <파우스트 노엘>과 <산타클로스>가 나왔는데 둘 중 전자의 음반 번호가 앞서므로 한국 최초 타이틀을 붙인 것이다. 이 음반은 2015년 12월 한국방송 <TV쇼 진품명품>에 소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전문가에 의해 감정가 1천 만원이 매겨졌다.


일제 강점기까지 크리스마스 캐럴은 교회 음악의 성격이 강했다. 캐럴이 서서히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광복을 맞이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부터였다.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본 먼로의 ‘렛 잇 스노우’, 냇 킹 콜의 ‘더 크리스마스 송’ 등 1940년대에 나온 팝 명곡 캐럴들이 미군을 통해 유입되어 조금씩 퍼져나갔다.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6·25전쟁이 멈추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크리스마스이브(12월 24일 밤)에는 특별히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했기 때문이다. 성탄절(12월 25일)은 1949년에 법정 공휴일이 되었지만 그보다 더 의미가 컸던 것은 바로 이 하룻밤 통행금지 해제였다. 그것은 자유의 종소리나 마찬가지였다.


3.jpg 관보에 게재된 1976년 12월 13일자 내무부 고시.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기해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 사진 : 국가기록원


크리스마스이브의 야간 통행금지 해제


야간 통행금지는 1945년 9월 8일 미군정 포고령 1호에 따라 치안 및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시작되었다. 줄여서 ‘통금’ 또는 ‘야통’이라고 불렀다. 이 조치는 6·25전쟁을 거치며 제도화되어 한국인의 일상을 속박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국민에게 이동의 자유가 없었다. (1961년부터는 자정부터 4시까지로 축소되었다.)


통금 시간이 되면 사이렌이 울리고 곳곳에 철제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2인 1조 방범대원들이 호각을 불며 쫓아가면 헐레벌떡 도망치는 사람들의 숨이 턱에 닿는다. 통금에 걸리면 파출소로 잡혀갔다가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벌금을 물었다. 국제선 항공기도 밤늦게 공항에 도착하면 착륙을 불허하여 출발했던 곳으로 회항하기도 했다.


그런데 1953년부터 크리스마스이브(와 12월 31일 제야)에 한하여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한 것이다. 속박이 갑갑했던 젊은이들이 12월 24일 밤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올나이트(밤새우기)’를 하며 파티를 벌였다. 짜릿한 해방감에 취하여 자유를 만끽했다. 일탈 행위도 속출했다. 파출소 유치장은 술에 만취해 인사불성이 되거나 패싸움을 벌이다 붙들려온 이들로 난장판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뜨거운 열기는 1970년대에 절정으로 치달았다. 신문에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데이트를 위해 ‘고독녀’와 ‘진실남’을 연결해 준다는 ‘뚜쟁이’ 사업 광고가 실렸다. 급기야 ‘크리스마스 베이비’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청춘남녀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손수 짠 목도리와 앙고라 장갑을 주고받으며 속마음을 확인했다.


유신이라는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크리스마스는 판타지와 로맨스로 포장된 선물세트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서울 시내 백화점마다 크리스마스 선물세트 전시판매장이 들어섰다. 이런 날 풍악이 빠질 수 없다. 캐럴은 달콤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징글벨’을 흥얼거리며 한국 사람들은 고단한 심신을 달랬다.


1.jpg 1965년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 사진 : 중앙일보


유명 가수는 캐럴 음반 내는 게 ‘국룰’


캐럴 음반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를 일궈 나가며 경제가 조금씩 살아난 덕분이다. 미8군 무대에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산타클로스 이즈 커밍 투 타운’이나 딘 마틴의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를 부르던 한국 가수들이 앞장섰다. 한명숙, 최희준, 이금희, 현미, 위키 리, 박형준, 패티 김 등 인기가수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앞다퉈 발표했다.


1960년대에 대거 등장한 그룹들도 합류했다. 남성 사중창단 쟈니 브라더스와 걸그룹 이시스터즈, 펄시스터즈, 아리랑시스터즈 등이 캐럴 음반을 냈다. 록밴드 히파이브는 록 버전의 연주 음반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보였다. 당시 서구에서 히피 문화의 꽃으로 각광받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도입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트로트 버전의 창작 캐럴도 나왔다. 송민도의 ‘추억의 크리스마스’, 김용만의 ‘크리스마스 폴카’, 현인의 ‘새벽종 울 때까지’ 등이 <크리스마스 노래> 음반에 수록되었다. 국민가수 이미자는 백설희, 박재란 등과 함께 낸 컴필레이션 앨범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맑고 고운 음색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다. 배호의 ‘징글벨’은 스윙 리듬을 타는 구수한 재즈 창법이 멋을 자아낸다. 1960년대 풍의 노랫말도 인상적이다.


“징글벨 징글벨 방울 울리면 / 희망 싣고 웃음 싣고 썰매야 가자 / 징글벨 징글벨 방울 울리면 / 언덕 넘어 낙원으로 어서야 가자”


1970년대에 이르면 캐럴 음반이 유명 가수의 기준이 되었다. 김추자, 나훈아, 남진, 박상규, 장미화, 정훈희, 최헌, 혜은이 등 이름 있는 가수들은 캐럴 음반을 내는 것이 ‘국룰’이었다. ‘똑순이’ 김민희 등 꼬마 스타들의 캐럴도 인기를 얻었다. ‘검은 고양이 네로’의 주인공 박혜령을 앞세운 컴필레이션 앨범 <메리 크리스마스>는 1971년에 발매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박해령의 앳된 목소리는 1980~90년대까지 거리에 울려 퍼졌다.


펄시스터즈가 재킷을 장식한 옴니버스 음반 <소울 크리스마스>도 1970년대 내내 재발매를 거듭한 스테디셀러였다. 1969년에 처음 나온 이 음반에는 트윈폴리오, 조영남, 최영희 등의 캐럴도 담겼다. 당시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휘어잡으며 새롭게 떠오고 있던 청년문화의 기수들이다.


1970년대 젊은이들은 통기타 음악과 생맥주를 즐기고 고고 춤과 나팔바지 붐을 일으키며 자유분방한 청년문화를 일궜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들은 기타와 야외전축을 들고 뭉쳤다. 김세환, 라스트찬스, 박인희, 이연실, 히식스 등 포크송 가수나 그룹사운드의 캐럴을 틀어놓고 밤새워 놀았다.


새롭게 번안한 곡들도 사랑받았다. 이용복은 라틴팝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의 ‘펠리스 나비다’, 키보이스는 미국 가수 보비 헬름스의 ‘징글벨 락’을 번안하여 인기를 모았다. 쌍둥이 듀엣 바니걸스의 ‘지난해 본 산타할아버지’ 역시 미국 곡을 번안했는데 가사가 재미있다. 원곡은 산타와 엄마가 키스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아빠에게 이르겠다는 내용이다. 한국 번안곡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정말 우리 아빠 같다고 못 박는다.


“지난해 본 산타할아버지 / 누구인가 닮은 것 같애 / 키도 크고요 주름살도 없고 / 허리마저 꿋꿋하니 정말 이상해 / 지난해 본 산타할아버지 / 엄마하고 뽀뽀했대요 /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 우리 아빠 같애요 / 정말 우리 아빠 같애요”


5.jpg 영화 <영구와 땡칠이>(1989)에서 바보 연기를 펼치는 코미디언 심형래. 1984년에 발매한 코믹 캐럴 앨범이 약 30만 장 팔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 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대박 터뜨린 심형래의 코믹 캐럴


크리스마스에 들뜬 열기를 불어넣었던 야간 통행금지는 1980년대 초에 폐지되었다.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1년 365일 통금이 해제된 것이다. 시행한 지 37년 만의 일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해 온 야간 통행금지가 왜 이때 사라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1981년에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것이 컸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데 통금을 그대로 둔 채 88서울올림픽을 치를 순 없는 일이었다.


야간 통행금지가 사라졌다고 크리스마스의 열기가 식지는 않았다. 1980~90년대에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국민의 삶의 질도 그만큼 높아졌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이벤트를 갖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였다.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띄우는 캐럴도 여전히 수요가 넘쳤다.


1980~90년대 청소년들은 워크맨 등 휴대용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들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좋아하는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나 CD 음반을 주고받았다. 조용필, 이문세, 이선희, 이승환, 이현우, 전영록 등의 캐럴 음반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길거리는 ‘리어카 캐럴’이 뒤덮었다. 이른바 ‘길보드’, 불법 복제 음반이었다.


새로운 시도도 이어졌다. 국악 실내악단 슬기둥은 1991년에 <슬기둥 캐럴집>을 내놓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북치는 소년’, ‘루돌프 사슴코’를 비롯해 10곡이 수록되었다. 가야금, 해금, 소금, 피리, 장구 등 국악기와 기타, 신시사이저의 앙상블로 독특하고 세련된 음색을 빚어냈다. 이 음반은 시장의 호응을 얻어내며 국악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1980~90년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코믹 캐럴의 약진이었다. 코믹 캐럴의 원조는 1960년대 천재 코미디언 서영춘이었다. 1966년 코미디언 서영춘과 쌍둥이 자매 듀엣 갑순을순이 코믹 캐럴 ‘징글벨’을 발표했다. 전통 캐럴 ‘징글벨’을 코믹하게 리믹스한 곡이다. 노래 가사를 희망적으로 바꾸면서 그 사이에 ‘깔깔깔’ 웃음소리를 집어넣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1980년대에 ‘쓰리랑 부부’ 김미화, 김보화, 김형곤, 엄용수, 임미숙, 최양락, 황기순 등 많은 개그맨이 캐럴 음반을 발매했다. 코믹 캐럴의 전성시대였다. 그 가운데 압권은 ‘영구’ 심형래였다. 1984년에 출시한 심형래의 코믹 캐럴 음반은 약 30만 장 팔리며 한국 캐럴 역사상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까 /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 종이 울려서 울릴까 말까 / 흥겨워서 소리 높여 / 부를까 말까 노래 부르자”


1990년대 이후에도 강호동, 신동엽, 심형섭, 컬투 등 인기 개그맨들이 캐럴을 불렀다. 당시에는 이름 있는 개그맨이나 가수들이 캐럴 음반을 발매하면 최소 몇 만 장은 기본적으로 판매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대로 접어들며 캐럴 음반은 혹한기를 맞이한다.


6.jpg 가수 아이유의 미니 3집 앨범 표지.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가 6번 트랙에 수록되어 있다. / 사진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크리스마스 노래는 ‘겨울 연가’다


21세기는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 음원이 대세를 이루면서 아날로그 음반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캐럴 음반 시장도 급속도로 무너졌다. 기획사에서 소속 가수들을 모아 단체로 노래해도, 개그콘서트 출연 개그맨들이 합심하여 코믹하게 불러도 음반이 예전처럼 나가지 않았다. 아니, 해마다 매출이 뚝뚝 떨어졌다.


디지털 음원도 유명 가수나 개그맨이 부르는 전통 캐럴은 점점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기존 캐럴은 이미 많은 가수가 불러서 참신함을 잃은 것이다. 재즈, 아카펠라, 뉴에이지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봐도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겨울 감성이 물씬 풍기는 크리스마스 노래는 꾸준히 사랑받는다.


“하얀 눈이 내려올 때면 / 온 세상이 물들을 때면 / 눈꽃이 피어나 또 빛이 나 / 눈이 부신 너처럼 / (중략) /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 사랑한 네 손 잡고서 / 첫 눈 위를 걸어 발자국을 새겨 / 이 길 끝까지 걸어갈 거야 / With You”


2010년 12월에 발매한 가수 아이유의 노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이다. ‘좋은 날’과 같은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매년 12월만 되면 음원 차트에 다시 진입한다. 하얀 눈꽃은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첫 눈 위를 걸어가는 모습은 로맨틱한 판타지다. 노랫말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고백이 나온다. 그럼에도 설레며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겨울 감성이다.


“하얀 거리마다 행복해 보이는 연인들 / 니 맘은 어떤지 내 맘과 같은지 / 우리 시작해 볼까 / 오늘은 괜찮을까요 / 내 맘이 전해질까요 / 내리는 하얀 눈처럼 너에게 닿을까요 / 숨겨왔던 내 맘 전부 고백할게요 /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이니까”


이 노래는 성시경, 박효신, 이석훈, 서인국, 빅스의 ‘크리스마스니까’이다. 같은 소속사 아티스트들이 모여 노래했는데 2012년 12월에 나왔다. 노랫말에서 두 개의 키워드를 선정하라고 한다면 ‘연인’과 ‘하얀 눈’을 고를 것이다. 크리스마스 노래는 ‘겨울 연가’가 되었다. 성탄 축하곡은 지고 ‘로맨틱한 시즌송’이 떴다. 너에게 숨겨온 연심을 고백하고 하얀 눈처럼 닿을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지금은 저작권법이 개정되어 길거리에서 캐럴 듣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여기저기서 다양한 콘서트가 열린다. 겨울 연가를 부르면 좋겠지만 그런 시즌송이 없더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해 달콤하고 따뜻한 감성을 나눌 수 있다. 좀 더 기분을 내고 싶다면 크리스마스 파티장으로 달려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밤은 길고 색다른 이벤트는 많다.


크리스마스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고백에 관한 이야기다. 마음이 있어도 다가가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영어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른다는 팝 가수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원래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곡이었다. 예수는 사랑이다. 고로 크리스마스는 사랑의 날이다. 연인을 향한 마음만 사랑인 것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괜스레 마음 쓰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무심했다면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연락해 보는 건 어떨까?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한마디면 족하다.


7.jpg 머라이어 캐리의 <메리 크리스마스>(1994) 앨범 표지. 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 사진 : 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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