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과 먹고 사는 문제

by 권경률

“황득중과 오수 등이 청어 7천여 마리를 싣고 왔기에 김희방의 곡식 장사배에 계산해 주었다.”(이순신, <난중일기> 을미년 12월 4일)


<난중일기>의 한 구절이다. 수하들이 싣고 온 청어로 곡식 대금을 치렀다. 이순신의 또 다른 얼굴이 어른거린다. 장군인 동시에 경영자다.


을미년(1595)은 임진왜란이 4년째 이어진 해다.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 협상으로 전쟁은 소강 국면이었지만 조선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기근과 전염병이 덮쳐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삶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장군은 바다의 백성과 군사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전투 못지않게 치열했다.


1593년 1월 26일 이순신은 임금에게 장계를 올렸다. 영남에서 전라좌수영 쪽으로 피난 온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며 피난민들이 돌산도(지금의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에 들어가 농사 지으며 사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임진장초>*)


돌산도에는 나라의 말을 키우고 조달하는 목장이 있었는데 이런 곳은 대개 농사 짓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그러나 백성들이 위태롭고 어려운 때이므로 특별히 재고해 주길 청했던 것이다. 그의 요청은 결국 받아들여졌다.


군량미 비축에도 비상한 수완을 발휘했다. 나라에서 대줄 형편이 아니므로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늙고 병들어 전투가 힘든 군사들을 모아 둔전**을 일구도록 했다. 바다로 나온 장사배의 곡식도 사들였다. 재원은 물고기를 잡거나 소금을 구워서 확보했다.


군사와 백성들을 먹이는 일은 조선 수군의 전력 강화와 직결되었다. 이순신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바다의 왜적을 무찌르고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순신은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선조 임금의 물음에 명나라 제독 진린은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씻어낸 공로가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정조 어제 이순신 신도비)


청어를 잡아 곡식 대금을 치르는 경영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 <임진장초(壬辰狀草)> :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올린 장계를 따로 옮겨 적은 책

** 둔전(屯田) :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변경의 군인과 주민들이 경작하던 토지


이순신장검.jpg 이순신 종가에 전하는 한 쌍의 장검. 칼날에 각각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두려워 떨고 /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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