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

by 권경률

“옛사람이 이르기를,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닷속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삼국유사> 기이 ‘수로부인’)


신라 제33대 성덕왕(재위 702~737) 때의 일이다. 순정 공이 하서주* 도독에 임명되어 길을 떠났다. 가족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동해안을 따라가는 부임 길이었다.


어느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홀연 벼락이 치고 큰 파도가 일더니 용이 나타났다. (출처가 <삼국유사>니까 상징적인 이야기가 훅 들어온다. 황당무계할 수도 있지만 해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용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공의 아내 수로부인을 낚아채서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순정공은 황급히 부인을 구할 방도가 없겠느냐고 소리쳤다. 그때 한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닷속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바닷가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부르게 하십시오.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서 불러야 합니다. 그리하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은 노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신임 도독의 명에 백성들이 바닷가에 모여 막대기를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 남의 아내 훔쳐간 죄 얼마나 큰가? / 네 만약 거역하고 내어놓지 않으면, /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삼국유사> 기이 ‘수로부인’)


그러자 용이 슬그머니 바닷속에서 나오더니 납치해 간 수로부인을 돌려줬다.


이 이야기는 7세기 통일신라의 기우제**를 상징적인 화법으로 묘사한 것이다.


성덕왕 때는 잦은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삼국사기>에는 그래서 기우제를 올린 기록이 여러 건 나온다. 비를 빈 대상은 수신(水神), 곧 용이다. 수로부인이 용에게 잡혀갔다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기우제를 올리던 신녀가 접신(接神)한 것을 은유한다.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고 했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용조차 두렵게 하여 비를 내린다. 한국인의 오랜 믿음이다. 그것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3·1운동의 뜨거운 함성은 조국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의 발판이 되었다.


이 옛말이 오늘날엔 더욱 일상적이고 날카로운 의미를 갖는다. 인터넷에서 여럿의 말은 영향력이 크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나도 그랬다”, “나 역시 겪었다”라는 작은 고백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단단한 침묵의 카르텔을 녹인다.


파괴적인 힘도 떨친다. SNS 사진 한 장에 댓글이 무더기로 달리면 유명인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별점 테러에 식당이 문을 닫고, 악플 테러에 정치인이 꽁꽁 묶인다. 무쇠 같은 권력과 기업도 알고리즘을 타고 번지는 집단 발화 앞에서는 속절없이 녹아내린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많이 말해지면 현실이 되어버린다.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며 반복되면 이미지가 굳어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그 입들 중 하나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내 입에 무쇠를 녹이는 발화의 불씨가 있다. 거북아 거북아, 무슨 말을 하면 좋겠니?


* 하서주(河西州) : 지금의 강원도 강릉 일대

** 기우제(祈雨祭) :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사


수로부인헌화공원.jpg 강원도 삼척의 수로부인 헌화공원. 수로부인이 용을 타고 있는 조각상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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