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개구리’, 신라는 ‘새 나라’

by 권경률

[이덕무는 말한다.

“고구려는 우리말로 ‘개구리’다. 고주몽이 금와(金蛙)의 아들이므로 국호를 고구려라고 한 것이다.”

나 또한 말한다.

“신라란 ‘새 나라’다. 우리말로 새것을 ‘새(斯伊)’라고 하고, 국가를 ‘나라(羅羅)’라고 한다. 처음에 신라를 ‘사라(斯羅)’라고 불렀던 것은 이 때문이다.”] (유득공,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권1)


사람들이 이름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 이름에 대상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대체로 한자 이름을 갖고 있는데, 어떤 한자를 쓰고 뜻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 아버지는 내 이름에 밝을 ‘경’자와 법률 ‘률’자를 썼다. 갓 태어난 아기가 커서 ‘밝은 법률’을 다루는 판검사가 되길 바란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부여한 태생적 정체성과 갈등하고 성장통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역사 속의 나라 이름도 마찬가지다. 국호(國號)는 그 나라의 원초적인 정체성과 관련이 깊다. 18세기 조선의 문인 유득공이 <고운당필기>에 남긴 기록은 그래서 매우 흥미롭다.


그는 먼 옛날에 사용한 국호는 고유한 우리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겼다.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는 한자 음을 빌려 그것을 표기한 것이다. 그럼 원래 이름은 무엇일까? 유득공은 먼저 절친한 동네 형이자 검서관 동료인 이덕무의 주장을 소개한다.


이덕무는 고구려가 우리말로 ‘개구리’라고 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부여 금와왕의 아들이고 금와(金蛙)의 뜻이 ‘금개구리’이므로, 근본을 밝힌다는 취지에서 ‘개구리’를 국호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덕무의 문집 <청장관전서> 제33권 ‘려’에도 이 주장이 실려있다.)


유득공은 신라가 본래 ‘새 나라’라고 했다. 우리말로 새것을 ‘새(斯伊)’라고 하고, 국가를 ‘나라(羅羅)’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사라(斯羅)’라고 불렀다. 신라(新羅)는 한자가 보급되면서 앞 글자를 새롭다는 뜻의 한자어 ‘신(新)’자로 대체한 것이다.


이덕무의 주장은 사실 이야기 색채가 짙다. 주몽 전승에 금와왕이 나오고, 고구려와 개구리의 발음이 유사한 것을 엮어 그럴듯한 서사를 만들었다. 이야기꾼의 시선으로 본 것이다. 만담의 뉘앙스도 살짝 배어 있다. (이덕무는 평소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반면 유득공의 견해는 <발해고>를 지은 역사가답게 진지하고 학술적이다. 신라에 이어 가라(加羅), 탐라(耽羅) 등도 모두 아무 나라를 말하는 것이라며 논지를 두루 적용하고 확장한다. 그가 이렇게 우리말 국호를 강조한 것은 자주적 역사관을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득공은 유학자들이 유교 이념에 맞춰 역사를 뜯어고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 예로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4년(503) 조의 신라 국호 기사를 들었다.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니,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았다. 관명은 모두 우리말을 음차한 한자인데 국호만 한자어의 의미를 살렸다고? 내용도 매우 이념적이다. 갑자기 유교 통치가 시작된 것 같다. 유득공은 이를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봤다. 이념을 억지로 역사에 갖다 붙였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성현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우리말 같은 민족 고유의 문화에서 뿌리를 찾으려고 했다. 현지답사와 고증을 통해 자주적인 역사관을 정립했다. 그것은 관념적 세계관과 갈등하며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이다. <발해고>는 그런 성장통이 낳은 역사의 이정표다.


주몽과금와왕.jpg MBC 드라마 <주몽>(2006)에서 주몽이 금와왕에게 부여를 떠나겠다는 뜻을 밝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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