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라는 프레임
"형수는 엄마한테도, 나한테도 잘 못하는 것 같아."
"네 시동생이 말하더라."
평온한 표정으로 그 말을 전한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잘하라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그들을 위해 애썼다. 오라면 갔고, 오고 싶다면 오라 했고, 부탁하면 그대로 들어주었다.
나의 모든 시간과 모든 순간을 시댁 식구들과 함께 했다.
내 일상은 그들에게 잠식당했고, 나의 호흡까지도 그들과 공유해야 했다.
그런데도 ' 잘 못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내 진심과 노력이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며느리' 였을 뿐,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도 내가 그 이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시댁식구들 아래, 딱 그 위치에 머물며, 본인들을 대접해 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해주고 싶어도 해줄 게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이 관계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다는 것을....
큰아이가 7살 무렵이 될 무렵 우리 가족만의 첫 여행.
겨울 썰매장에 1박 2일 여행을 갔었다.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고 좋았다.
하지만 두 아이를 썰매를 태우고 놀고 있던 그때 시어머니께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너희들끼리 놀러 가냐"며 섭섭하다고 전화해 남편을 다그치고 불만을 표현하셨다.
기분이 상해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여행을 망쳤던 기억이 있다.
뭐든 시댁 식구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사고방식으로 우리 가족은 불효하는 가족이 되었다.
몇 년이 지나고 시동생도 결혼하였다. 시동생 가족들은 그들끼리 자주 여행을 다녔는데
시어머니께서는 그건 또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당연하다는 듯 서운함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냥 우리 가족만 안 되는 것이었다.
그 후로 여행에 대한 불효 프레임은 나 스스로 벗어던졌다.
형평성이 없는 그런 프레임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시동생의 가족들은 그래도 되지만
우리 가족은 안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시동생 가족들이 나쁜 사람으로 비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했던 일조차 안 했다고 우기시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명절, 차례와 제사상을 준비할 때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음식을 도와야 했다. 남편이 함께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임신 중 배가 남산처럼 불러와도 아이가 어려 돌보기가 힘든 경우에도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냈다.
하지만 동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시어머니는 동서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며
과거의 내가 가족들에 헌신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고 우기셔야 했던 것 같다.
나는 친정에 가면 비난받고 안 가도 된다고 하셨지만
동서가 친정을 가면 당연히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자식마다 다른 효도의 양을 할당한다는 걸 알았다.
형평성이 무너지고 비교와 차별이 존재한다면 자식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이는 멀어지게 되고 서로 만나고 싶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동서와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
다만 나는 시어머니의 형평성 없는 잣대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저울은 내 노력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영역이다.
어차피 못해도 못했다 할 것이고, 잘해도 못했다 할 터.
그렇다면 굳이 애쓰며 잘할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그냥 나쁜 며느리가 되려 한다.
지난날,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고 연락을 자주 하며 시댁 식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애썼던 노력들.
그 모든 것을 이제 멈추려 한다.
나는 더 이상 눈을 맞추며 사람의 정을 나누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