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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상 Jul 04. 2023

비처럼 쏟아지는 주술적 목소리

김현식 - 비처럼 음악처럼

 
뜨거운 여름은 잠시 쉬고 여기 퍼져 있던 먹구름은 한데 모여 물방울들을 쏟아 붓는다. 한 여름이 시작되기 전 예고 없이 시작하는 장마. 때리는 듯이 내려치는 장맛비는 모든 걸 씻어내고 토해낸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상쾌하고 시원한 소리. 흙에도 콘크리트에도 숲에도 공평하게 울려 퍼진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따갑지만 듣기 좋다. 꿉꿉한 건 맘에 안들지만 서재에 들어와 빗소리와 함께 들을 LP를 골라본다. 이리저리 고민하며 수납장을 미끄러지는 손은 붉은색 커버인 김현식 3집에서 멈춘다.



김현식의 3집 전곡은 모두 비가 오는날과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특히 빗소리와 섞여 들려오는 '비처럼 음악처럼'은 눅눅한 습도에 적당히 스며들면서 여러 소리들을 가로질러 귀에 꽂힌다.



단단하고 밀도있게 쌓이는 피아노 소리부터 벌써 마음을 놓게 만들고 간주의 기타솔로는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제 목소리를 낸다. 베이스와 드럼 역시 피아노가 넓혀놓은 텅빈 공간을 찾아 덤덤하게 메운다.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그리고 역시 김현식의 목소리. 비를 맞으면서 노래를 부르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절하고 또 몹시 쓸쓸하다 그의 목소리는 방울방울 맺히는 보슬비도 아니고 한차례로 끝나는 소나기도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할수 없게, 하루를 통째로 날릴 수 밖에 없도록 퍼붓는 장대비와 같다.



어떤 원주민부족은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내 풍경과 시야가 변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멈춘 것으로 간주한다.


김현식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만큼은 그 생각을 믿고 싶다. 마치 주술에 걸린듯이 턴테이블에 올라간 LP가 몇바퀴씩 돌아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루를 그냥 보낸다. 끝날줄 모르는 비처럼, 음악처럼 마음을 흠뻑 적셔 주길.  



- LP 앨범명  : 김현식 - 비처럼 음악처럼
발매년도 : 1986 /  구매년도 : 2018
- 구매처 : 알라딘
- 구매 가격 : 30,000원
 - 포스팅 추천곡 : 비처럼 음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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