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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상 Jun 30. 2023

라디오헤드와 하루키의 상관관계

Radiohead - (Nice Dream)


수능이 끝났다. 잘 본것도, 못 본것도 아니어서 아주 어중간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나는 국어나 영어는 곧잘 하는 편이었지만 수학을 잘 못했는데 수능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받았고 이는 어중간한 성적에 크게 기여했다. 루트와 모집단과 표준편차의 세계에서 나는 애만 쓸뿐이지 대체적으로 무력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수능은 끝이 났고 나의 시간은 많았으나 생각은 아주 없었다.


주어진 시간의 양이 엄청 났기에 (스마트폰이 없던 그때는) 정말 시간을 '보내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저 방구석에 누워 하릴없이 벽지의 기하학 무늬가 몇개인지를 세보거나 저 장롱의 문고리에 끝에 내가 매달릴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을 했다.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던가. 수능 전까지 바삐 흘러가던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가혹하도록 느리게 흘렀다.


지루함과 따분함을 잊기 위해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손에 잡힌 것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였고 자주 듣던 음악이 radiohead 의 (nice dream) 였다. 몇 곡 들어가지 않던 mp3 플레이어는 radiohead 1~3집 위주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중 nice dream은 내가 스킵하지 않고 듣는 곡중에 하나였다. 왠지 모르지만 상실의 시대 책 표지의 푸른색과 곡의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했다. 방바닥에 누워 플레이어에 '1곡 반복 재생'을 걸고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책을 읽었다


상실의 시대는 고독하고 상처 많은 청년의 연애이야기이다. 관계의 어지러움에 신음하거나 닥쳐오는 상실감에 괴로워 한다. 조용하고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방구석에서 공부 말고 뭐하나 시도해본적 없는 나에게는 거의 판타지 소설이나 다름 없었다. 역시 판타지 답게 책은 쉽게 읽혔고 radiohead의 몽환적인 음악은 소설과 잘 페어링 되었다.


톰요크의 우울한 목소리는 소설의 빈 공간에 자주 스며든다. 어쩐지 북유럽의 숲을 생각하게 하는 기타와 현악기 소리도 적절하게 어우러져 들려온다. 서정적으로 흘러가던 음악은 절정에 찢어지는 일렉기타가 치고 들어오며 작게 폭발한다. 그리고 새벽에 내린 비처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하고 차분한 읖조리며 끝이 난다. 격정과 냉소가 휘몰아치는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처럼 말이다. 수학을 잘 못하는 나에게도 이 곡과  소설의 상관관계는 꽤 유의미 하게 느껴진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라디오헤드의 nice dream 을 듣기. 요즘 같은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란 것은 없다. 일정을 미루거나 시간을 만들어내 억지로 방바닥에 누워야 한다. 잠시라도 그때가 온다면 두 가지를 꼭 같이 시도해보길. LP가 올라간 턴테이블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며 동시에 책을 손에 쥔다. 분명 소설을 읽는 어느 땐가에 the bend 앨범 커버의 주인공과 같은 표정이 될지 모른다.




- LP 앨범명  :  Radiohead - the bends
발매년도 : 1995 /  구매년도 : 2017
- 구매처 : 알라딘
- 구매 가격 : 25,000원 
- 포스팅 추천곡 : Radiohead - (Nic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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