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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상 Jun 29. 2023

눈을 감아봐, 뭐가보여?

Jeff buckley - Grace




우리 부대는 CD반입이 제한적으로 가능했고 나는 이걸 기회(?)로 앨범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PX 몇번 참으면 군인 월급도 꽤 되었으며 몇달 치를 모으면 CD플레이어와 몇장의 앨범을 살 수 있었다.아직 일병이라 개인 시간은 커녕 제 앞가림 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다만 밤 10시 이후 취침 시간에 허가를 받아 독서실을 쓸 수 있었는데 거기서 눈치껏 앨범을 들으며 숨을 쉴 수 있었다.



컴컴한 독서실에는 보통 아무도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군생활, 전역 후 미래, 인간 관계도 사회적 위치도 경제적 상황도 모두 불투명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뜨고 있어도 어둡기는 마찬 가지 였다. 철지난 자기계발책들과 낡은 수험서, 싸구려 역사 소설등으로 가득한 책장사이를 헤집고 칸막이로 된 독서실 책상에 앉아 있곤 했다. 토익이나 자격증 공부 따위를 해보려고 했으나 잘 되진 않았다. 



지금 노력을 해도 이게 눈으로 보일까라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그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고 주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노란 독서등은 필요 이상으로 밝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블루스한 기타에 얹어진 제프버클리의 목소리는 마치 주문을 걸듯 신비로웠고 때때로 가슴을 벅차게 할 만큼 선동적이었다. 빛이 없는 곳에서 더 밝게 보이는 오렌지빛 전구와 같이, 그의 목소리는 어둠을 뚫고 귀로 들어와 머릿 속에 쏟아졌다. 서른이 채 되지 못한채 요절한 제프버클리 그 자신의 미래를 알지도 못한채, 지금 여기 모든 것을 토해내겠다는 듯 처절한 소리로.



몇 년이 흘러 독서실에 앉아있던 일병은 직장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인 때 뒤적거렸던 책이 취업에 도움이 되었던 것도 같다. 어느 새 LP가 CD 보다 비싸졌고 그걸 살만한 여윳돈도 생겼다.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던 앨범은 역시 제프버클리의 Grace 였다. 이제는 군 시절의 기억도 흐릿하지만 그 컴컴한 밤과 독서등을 생각하며 턴테이블에 LP를 놓아본다. 내 미래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하니까.




- 발매연도 : 1994

- 구매연도 : 2017

- 구매처 : 알라딘

- 구매 가격 : 30,000원

- 포스팅 추천곡 : Jeff buckley -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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