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누가 할래? (기획노동)
피곤하다. 그런데 왜 피곤한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오늘 특별히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몸을 많이 쓴 것도 아닌데. 그냥 막연하게 지쳐있다. 이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기획노동을 들여다보면 조금씩 윤곽이 드러난다.
사실 이 피로감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질문이 시작됐고, 연구자들은 그것을 데이터로 증명하려 했다.
해외에서는 이것을 '멘탈로드(Mental Load)'라고 부른다. 가사와 돌봄에 수반되는 인지적, 감정적 부담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가족의 감정을 살피는 것,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쓰는 것,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정서적 부담까지 포함한다. 느끼는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에세이에서 말하는 기획노동은 그 중에서도 감정보다 운영과 설계에 집중하는 부분이다. 더 좁고, 더 구조적인 접근이다. 멘탈로드가 더 큰 원이라면, 기획노동은 그 안에 있는 작은 원이다.
프랑스의 만화가 엠마(Emma)는 2017년 짧은 웹툰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 제목은 '당신이 물어봤어야 했는데(You Should've Asked)'. 내용은 단순했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순간, 아내는 생각한다. 뭘 도와준다는 거지? 지금 뭐가 필요한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이미 노동인데. 그 웹툰은 며칠 만에 수백만 건이 공유됐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게 나의 이야기"라고 댓글을 달았다. 하나의 만화가 그토록 빠르게 퍼진 이유는 하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었지만 이름을 몰랐던 것에, 비로소 이름이 붙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같은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슨 데이밍거(Allison Daminger)는 이성애 커플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가사노동의 분배가 아니라, 가사노동 이전에 일어나는 인지적 활동이었다. 누가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가. 누가 선택지를 탐색하는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가. 누가 그 결과를 모니터링하는가. 연구 결과는 명확했다. 조사한 커플의 80%에서 이 인지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었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따로 있었다. 물리적 가사를 남편에게 넘겨도 기획은 여전히 아내의 몫으로 남았다. 요리 당번을 남편으로 정했더니, 아내가 "오늘 네가 요리할 날이야, 재료는 샀어? 제때 들어와야 해"를 계속 챙겨야 했다는 사례가 나왔다. 실행은 넘겼지만 기획은 여전히 혼자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자 루치아 치치올라(Lucia Ciciolla)의 연구는 이 기획노동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322명의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지노동의 불균형은 우울, 스트레스, 번아웃, 그리고 관계 만족도 저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가사노동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적 가사노동의 분배는 심리적 웰빙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없었던 반면, 기획노동의 불균형은 명확한 영향을 미쳤다. 몸이 힘든 것이 아니라 머리가 쉬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것이 있다. 기획노동이 특히 해로운 이유 중 하나는 그 비가시성에 있다. 누가 채소를 썰고 있는지는 보이지만, 주간 식단을 짜는 노동은 가족 구성원은 물론 그것을 하고 있는 본인조차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보이지 않으니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 나눌 수 없다. 그 구조 자체가 문제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피곤하다. 그런데 왜 피곤한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설명하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기획노동이 유독 소진을 일으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끝이 없다. 가사노동은 반복된다고 했다. 오늘 청소해도 내일 또 해야 한다. 그래도 오늘의 청소는 끝난다. 청소기를 끄는 순간, 적어도 그 행위는 완료된다. 기획노동은 그 완료조차 없다. 오늘 저녁 메뉴를 결정하는 순간, 내일 저녁 메뉴를 생각해야 한다. 이번 달 생활비를 정리하는 순간, 다음 달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것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완료 버튼이 없는 일이다.
늘 백그라운드로 돌아간다. 스마트폰의 백그라운드 앱처럼, 기획노동은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멈추지 않는다. 회의를 하면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 한 켠에서는 집의 일이 돌아간다. 온전히 쉬는 시간이 없다. 몸은 쉬어도 뇌는 켜져 있다.
잘 할수록 더 안 보인다. 이것이 기획노동의 가장 잔인한 특성이다. 기획을 잘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필품이 떨어지기 전에 채워져 있고, 일정은 겹치지 않고, 예산은 초과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조용히 제자리에서 돌아간다. 그러면 주변에서는 말한다. "우리 집은 원래 이래." 원래가 아니다. 누군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수고가 성공적일수록, 그 노동은 더욱 투명해진다.
인정받기 어렵다. 가사노동은 그나마 보인다. 청소한 바닥이 보이고, 차려진 밥상이 보인다. 하지만 기획노동의 결과물은 "아무 일도 없었음"이다. 보일러가 겨울 전에 점검된 것, 카드값이 예산 안에 맞춰진 것, 아이 병원 예약이 학교 행사와 겹치지 않은 것. 이것들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누가 얼마나 생각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고맙다는 말도, 수고했다는 말도 나오기 어렵다.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 노동이 하루하루 쌓인다.
어느 날 문득 폭발하듯 나오는 말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혼자 다 해야 해."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당황한다. 나도 하고 있는데,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대화가 자꾸 엇갈리는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실행을 했고, 한 사람은 운영을 했다. 그런데 운영이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으니,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나눌 수가 없다.
나눔은 먼저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가정에서 기획노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의 뇌를 매일 조용히 소진시키고 있다는 것. 이것을 보는 것에서부터 진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