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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월 Jul 21. 2021

<루카>-더 멀리, 더 많이, 더 깊고 높게 가는 거야

"소외된 모두, 한 발 앞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좋았다. 노래, 영상, 테마, 상징, 캐릭터, 전개까지. 한 봄 내내 기다린 보람이 있다.


*

헤엄과 걸음, 뜀과 탐, 미끄러짐과 날아오름. 한 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성장의 속도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수직과 수평을 가로지르며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는 또 어떠한가. 자라나는 루카를 따라 영화의 공간은 바다와 육지, 우주를 넘나든다(심지어 육지에 나간 루카를 벌하기 위해 엄마가 택한 방법은 심해에 사는 삼촌에게 루카를 보내 더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것이었다). 단란한 가족과 낯선 동족, 다른 존재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이어지는 확장도 무척 인상깊다. 날로 거대해지는 세계 속에서 “더! 더!”를 외치는 기쁜 얼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헤엄이 전부이던 세상에서 두 다리의 자유를 얻어 걷고, 뛰던 루카. 그리고 그 세계에 찾아 온 스쿠터와 알베르토. 무한히 이어지는 성장의 흐름. (출처: 네이버 영화)


파괴와 창조가 한 끗 차이인 것처럼 균열과 확장도 밀접히 맞닿아 있다. 멸치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별이고, 거대 물고기인 줄만 알았던 것이 실은 달이라는 새로운 진실 앞에서 균열의 고통이 아닌 확장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건 그 시절 숨 가쁘게 몰아치던 성장 덕분이다. 앎에 대한 열망 이전에 있었던 맹목적 호기심과 궁금증. 그 마음이 키운 시간도 있었다.


시계와 카드, 술잔과 공구, 그리고 턴테이블이 바다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오프닝 시퀀스는 사뭇 상징적이다. 특히 침잠하는 과정에 한동안 이어지는 노랫소리가 그렇다. 노래는 형체가 없다. 실체는 없지만 다만 존재할 뿐. 형체 없는 노래는 루카(뚜렷한 형체를 가진)의 세계로 틈입하며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를 추동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노랫소리)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흐름(성장)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

상징과 은유에 능한 영화지만 현실을 다루는 솜씨 역시 탁월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 홀수가 수반하는 외로움과 질투, 가까웠던 친구와의 어긋남까지. 특히 팽창의 근거이자 세계의 통로였던 친구와 엇갈리는 순간에 대한 포착이 인상적이다. 둘이었던 ‘우리’가 셋이 될 때, 심지어는 ‘너와 나’가 될 때의 쌉쌀한 감정이 잘 드러나있다.


거침없어 더욱 멋진 알베르토. 무모함도 용기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알베르토는 영화에 현실감을 더하는 인물이자 영화 전반의 균형을 맞추는 인물이다. 루카를 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걸음을 가르쳐주는 동시에(“아래를 보지 말고 위를 봐야지!” “생각하지마. “넘어지기 전에 한 발을 더 떼는 거야!”)자신에게서 떨어져 더 멀리 뻗어 나가려는 루카를 저지하기도 한다. 루카보다 더 용감한 것처럼 보였던 알베르토가 실은 루카를 질투하고 루카와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점은 이 영화의 눈물 포인트다. 더욱이 알베르토에게는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꼭 더 나아가는 어린 아이 특유의 치기가 있다. 그는 적당히 멈추는 법을 몰라 온몸으로 시도한다. 선을 넘어 거리를 좁히고 공간을 확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제 자리를 찾는다.



*

다양성 면에서도 칭찬할 부분이 많은 영화다. 이질적인 존재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언더독’을 결성하는 영화답게 영화에는 장애인, 퀴어, 이방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을 묘사하는 방식 역시 매우 사려깊다. 예컨대 줄리아의 아빠가 가진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렇다. “바다 괴물한테 뜯어 먹혔어. 농담이고 태어날 때부터 없었어.” 어부라는 직업 때문에 그의 장애를 두고 이런저런 비극적인 추측을 했을 관객들의 뒷통수를 치는 부분. 당연할 것만 같던 선후관계를 뒤집음으로써 인식의 전환을 꾀한다.


(암시에 불과하긴 하지만) 영화의 말미 루카와 동족인 것으로 밝혀지는 두 할머니는 퀴어로 보인다. 사람들 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그들의 역사는 루카와 알베르토에게는 희망의 미래가 되어줄 것이다. 두 할머니가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신한 다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그 근거이다. 자신들의 이웃이었던 할머니들이 물고기 괴물로 밝혀진 후, 루카와 알베르토에게 보이던 적대감마저 철회하는 마을 사람들. 두 할머니의 현재는 그 자체로 가능성이 된다.

두 할머니한테서 넘겨(?) 받은 아이스크림.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지만 영화는 여전히, 현실의 쌉쌀함을 잊지 않는다. “저 아이들이 앞으로 사람들과 함께 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루카의 엄마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저 아이들을 좀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성장 영화는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더욱이 이렇게 잘 짜여진 전개와 환상적인 상징 및 은유가 더해진 성장 영화라면, 마다할 도리가 없다. 어느 하나 도구화된 인물이 없고 여물지 않은 인물이 없다. 무엇보다도 ‘성장’이라는 테마를 두고 사건과 심리에 천착하는 대신 상징과 은유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매력은 배가 된다. 영화에 등장한 갖가지 메타포를 성장과 연결 지어 생각할수록 이 영화가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우리를 물 밖으로 나오게 한 모두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루카>, 엔딩 크레딧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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