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인연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 세상이 정말 '우연'으로만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모든 것이 깊고 오랜 '필연'의 실타래처럼 이어진 것인지 마음속으로 자주 묻게 된다.
붉은 해가 지고, 창가를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조차 의미가 숨겨진 듯 느껴지는 요즘, 나는 모든 만남과 순간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점점 더 깨닫는다.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이 우연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풍경, 찾아오는 자연의 변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가족의 소소한 생활들까지—모두는 저마다의 이유로 우리 곁을 맴돌고 있었다.
특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스쳐가는 인연처럼 시작된 관계도 결국엔 운명처럼 서로에게 다가오고, 인생에 깊은 의미를 남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부딪친 사람, 우연처럼 들려온 노래 한 곡, 오래된 책장 속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가 인생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세상에는 '우연'으로 여겨지는 일이 너무도 많지만,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그 이면의 '필연'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내 삶에서 그 '필연'을 가장 강렬히 느끼게 해준 인연이 있다.
바로 우리 집 작은 가족, 애견 ‘요미’다.
요미와의 인연은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지인의 집에서 곧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던 요미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그 순간엔 단순히 '우연'이라 여겼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이한 작은 생명, 서툰 환영과 어설픈 일상… 하지만 매일이 쌓여갈수록, 이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요미는 나와 우리 가족의 중심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나와 꼬리를 흔들고, 때로는 내가 힘들 때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작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가족 모두가 요미와 함께 울고 웃었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나는 “이렇게 예쁜 아이가 우리 가족이 돼도 되는걸까?”라며 요미에게 설렘을 표현했고,
남편도 “앞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졌구나” 하고 어깨를 다잡았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너를 끝까지, 지켜줄게.”
요미와의 일상은 작은 기적들로 가득 찼다.
첫 산책에서 떨며 내 뒤만 따르던 모습, 내 품 안에서 고요하게 잠들던 그 감촉, 어떤 날은 애교도 부리고 때로는 짓궂게 장난을 치다가도 내 눈을 말없이 바라보는 그 깊은 시선에 마음이 울컥했다.
요미는 이제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다.
삶의 기쁨과 슬픔, 쉼과 위안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이자, 우리 가족을 한층 더 끈끈하게 연결해주는 소중한 인연이다.
요미가 아플 때면 모두가 밤잠을 설치며 지키고, 건강을 찾으면 안도 했다.
요미와의 일상 속에서 나는 '사랑의 필연'을 배운다—내가 준 만큼, 더 큰 사랑이 돌아온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두 우연인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필연'을 찾아내는 순간 삶은 한결 따뜻해진다.
요미처럼 어느날 갑자기 우리 곁에 들어온 인연이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필연이라는 사실에서, 나는 위로와 감사를 배운다.
자연의 섭리대로 꽃은 제때 피어나고, 바람은 꼭 필요한 순간에 불어온다.
내 곁에 머무는 사람들, 가족, 그리고 요미처럼 내 인생에 들어온 모든 존재들도 이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다가와준다.
지나온 날들을 떠올릴 때, 그 안에서 스며든 수많은 인연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내 곁에 와야
했던 '필연'임을 느낀다.
오늘, 요미와 산책을 하며 생각한다.
“요미야,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이 진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오랜 인연의 실타래 끝에서 꼭 만나야 했던
필연이었을까?”
이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답한다.
“요미와 나, 요미와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이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필연이야.”
그리고 나는 오늘도, 삶에서 만난 모든 사람, 모든 순간, 나와 연결된 인연과 기억들을 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우연일까? 필연인건가?”—이 질문만으로도, 우리는 각자의 삶과 사랑을 더 깊게 끌어안을 수 있다.
마치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시처럼, 일상에서 스쳐가는 작은 순간의 소중함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우연에 감사하고 필연에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모여 결국 나의 삶을, 나의 가족을, 그리고 요미와 함께하는 매일을, 가장 완벽한 인연으로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