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포효

평생 처음으로 울분을 터뜨린 날

by 이혜원


어머니는 평생 큰소리를 내신 적이 없었다.


자식들이 철없는 말을 해도, 제 욕심만 앞세워 다투어도, 어머니는 언제나 조용히 감싸 안으셨다. "자식이 있으니 이런 말 저런 말도 듣는 거다. 부모 자식끼리 이해하면 그뿐이다." 그것이 어머니가 평생 간직해온 삶의 방식이었다. 파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품으셨다.


그런 어머니가, 여든네 번째 생신 날,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셨다.


생신 식사는 따뜻했다. 여동생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눴고, 어머니 댁으로 돌아와 케이크 촛불을 함께 불었다. 과일을 깎고 차를 우리며 오랜만의 가족 대화가 이어졌다.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그러나 나는 알아챘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으신 어머니의 표정이 식사 때부터 내내 그리 밝지 않으셨다는 것을. 웃음 속에도 무언가를 꾹 참고 계신 듯한 기색이, 어머니의 눈가에 머물고 있었다. 자식들 앞에서 기쁜 척 웃으시면서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나는 잠깐잠깐 훔쳐보며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머니께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셨다.


소파에서 몸을 세우시는 그 동작 하나에도 세월이 담겨 있었다. 여든네 해의 무게를 이고서도, 어머니는 꼿꼿이 앉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박 서방, 나도 한마디 할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웃음기가 가시고, 모두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이렇게 다 모여 엄마 축하해 주고, 오랜만에 북적북적해서 사람 사는 것 같아 좋구나. 그런데 이 자리에 00가 빠져서, 엄마는 마음이 아프다. 걔가 실수한 건 한 거고, 머리 숙여 사과하라면 할 아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이제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 바란다. 엄마 죽으면 장례식장에서도 말 안 하고 그럴 거냐? 엄마는 00도 이렇게 함께 모여 오손도손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어머니는, 평생 한 번도 내지 않으셨던 그 목소리로 외치셨다.


"박 서방! 김 서방! 내 말 이해했는가!!!"


그 목소리에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어머니가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가슴 안에 눌러 담으셨을까. 자식들의 다툼을 보면서도, 그 다툼으로 인해 한 아이가 자리에 없어도, 어머니는 누구를 편들지 않으셨다. 그저 혼자 아파하셨다. 생신상 앞에서도 웃으시면서, 빈자리 하나를 마음으로만 채우고 계셨다. 아무도 모르게.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자식들이 행복하면 함께 기뻐하고, 자식들이 다투면 혼자 두 배로 아파한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도 없어서, 그 아픔을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진다. 어머니에게 00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품어야 할, 사랑해야 할 자식아들 일 뿐이었다. 그 사랑이 여든네 해를 살아온 어머니를 마침내 일어서게 했다.


"엄마 죽으면 장례식장에서도 말 안 하고 그럴 거냐."


이 한 마디 안에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담겨 있었을까.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 것이다. 당신이 살아 계신 동안만이 이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자리에서, 흩어진 형제들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지. 그 불안이, 그 간절함이, 평생 가장 조용했던 사람을 가장 큰 목소리로 말하게 만들었다.


나는 처음에 내 입장을 조금 이야기했다. 억울한 마음이, 서운한 감정이 잠깐 올라왔다. 그러나 이내 후회했다.


나는 손을 뻗어 어머니의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주름지고 앙상한 그 무릎이, 오늘따라 더 작게 느껴졌다. 이 무릎이 우리를 안아 키웠고, 이 손이 우리의 끼니를 차렸고, 이 입이 평생 우리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오늘, 이 목소리가 처음으로 울분이 되어 터져 나왔다.


"알겠어요, 엄마 마음. 저희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그것이 내가 드릴 수 있는 전부였다. 당장 무언가를 약속하기보다, 어머니의 말씀을 온전히 듣겠다는 것.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니의 포효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평생 가슴 속에 눌러 담아온, 자식 하나하나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여든네 해 만에 처음으로 소리가 된 것이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것이, 오늘따라 얼마나 다행인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어머니는 오늘도 우리의 중심이다.


큰딸

작가의 이전글섬 투어는 다음 생에, 지금은 커피나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