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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영 May 10. 2019

39. 뒷 이야기 만들기

아이의상상력

이야기가 정형화되어 있는 전래동화와 명작동화는 아이들에게 식상함을 주기 쉽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답답함과 눈치없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권선징악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전해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한정지으면 되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건 아닌게 확실하다.

우리 아이는 전래동화와 명작동화의 이야기보다 스스로 뒷 이야기를 꾸미는 걸 좋아했다. 그럼 주인공을 통해 통쾌함을 느낄 수 있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3학년 때 '콩쥐팥쥐전'을 읽고 '뒷 이야기 꾸미기'를 했는데, 내용도 기발하고, 표현도 통통 튀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용을 추려보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밥을 먹으려던 콩쥐가 반찬을 엎질렀는데 옆에 있던 병아리가 그걸 먹었다. 그런데 얼굴이 퍼렇게 질려 죽어버리고 말았다. 표면적으로는 개과천선한 것처럼 보였던 팥쥐와 팥쥐엄마가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운령'이라는 예쁜 여자 하인이 있었다. 선한 눈동자와 하얀 얼굴, 오똑한 코, 장미같은 빨간 입술까지, 그야말로 미인의 조건을 다 갖춘 하인이었다.

착한 줄 알았던 운령도 알고 보니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고, 하인들을 하대하는 모양새만 보아도 인성이 영 별로란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콩쥐가 가만히 보니, 남편인 원님과 운령이 서로 좋아하는 눈치였다. 삼각 관계의 결말이 늘 그렇듯 콩쥐와 운령의 육탄전이 벌어졌다. 그때 원님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결국 운령은 쫓겨나고 콩쥐는 원님이랑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 

아이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속이 시원했단다. 늘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 콩쥐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이야말로 아이가 기대한 콩쥐팥쥐였던 모양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마지막에 원님이 육탄전 현장에서 소리친 대목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얼음, 운령이! 무슨 일인가! 당장 멈추게!"

당시 아이는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하는 얼음땡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니 세상에 '얼음'만큼 강력한 주문도 없다는 걸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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