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비행기표부터 끊어 “
고2 여름방학 말, 갑작스러운 아빠의 한마디
튀르키예에 흥미가 있던 건 맞지만, 싫었다. 갑자기? 나 혼자? 여행을? 미성년자인데? 등등…… 수많은 걱정들이 가고 싶다는 속마음을 짓눌렀다. 문닫힌 방에서 컴퓨터로 튀르키예를 구경하면서도 대답을 미뤘다. 그러다 또 어느 날
그렇게 나는 내손으로 생존을 위해 최대한 멀게 2주 뒤로 비행기 한자리를 예약했다.
내 계획은 이스탄불(신시가지) - 파묵칼레 - 페티예 - 카파도키아(괴레메) - 이스탄불(구시가지)이었다. 일정 길이에 비해서 이동이 많아 비용절감과 시간단축을 위해 과감하게 모든 이동을 야간버스로 계획했다.
여행할 때 필수요소인 유심과 환전을 위해 들렸던 현지 통신사와 환전소에서 들은 말이다. 계획을 짜오긴 했지만 인터넷도, 돈도 없이는 여행은 불가능했다. 공항을 돌아다니다 지친 나는 결국 1시간 제한이었던 무료 공항와이파이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1시간의 검색으로 내린 결론은 ‘없다’였고 결국 무작정 공항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운 좋게 작동이 되는 건지도 몰랐던 무인 환전기에서 약간의 환전을 성공했다. 유심은 공항의 통신사를 다 들어가 본 결과 시내로 가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고 일단 시내로 출발했다.
탁심광장(신시가지)에서 내리고 들은 첫마디였다. 누가 봐도 호갱꾼이었지만 들고 있던 건 유심가격표였고 난 따라가서 실제 시세도 모르는 상태로 유심을 구매했다. 이후엔 애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현지인집에서 현지인 3명과 함께 지내며 신시가지 구역을 활보했다.
신시가지를 어느 정도 둘러봤을 때쯤 이동하는 날이 찾아왔다. 이동하는 날은 지역도, 숙소도 바뀌면서 변수가 많은 날이라 조금 긴장했었다. 야간버스는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게 문제 중 하나인데 다행히 숙소에서 편의를 봐준 덕에 방황하지 않고 숙소에서 쉬다가 버스를 탈 수 있었다.
11시간의 이동, 파묵칼레는 작은 시골마을이라 직행이 없고 데니즐리 터미널에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했고 그 터미널에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처음엔 직원인 줄 알았으나 호갱꾼이었고 내가 투어는 안 한다니 안내는커녕 대답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에게 물어봐 돌무쉬(미니버스)를 타고 파묵칼레로 향했다.
파묵칼레 마을은 파묵칼레 말고는 관광지가 없어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는 바로 페티예로 향했다. 내가 즉석에서 예약한 폐티예로 가는 버스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노선이었는지 이런저런 시골마을을 다 들리는 바람에 5시간이 걸려 밤늦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폐티예는 바다가 있는 휴양도시로 패러글라이딩 명소이고, 나 역시 이게 목적이었기에 1박 후 떠날 예정이었다.
패러글라이딩업체에서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어머니 한분이 아드님과 조카분을 데리고 여행 중이셨다. 처음엔 내가 혼자라는 사실에 놀라셨고 이후엔 친근하게 대해주시면서 일정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하던 중 일정이 없던 나에게 하루 같이 보내자고 먼저 권유해 주셨다. 이후 묵으시던 숙소에 추가비용을 내주시면서까지 수영장을 사용하게 해 주셨고 저녁도 사주셨지만 비용에 대해서는 정말 단호하게 사양하셨다. 덕분에 야간버스 시간까지 카페에서 시간을 버틸 생각이었던 내가 하루를 즐길 수 있었다.
또 약 11시간의 이동 후 카파도키아, 괴레메에 도착했고 운이 좋았는지 하늘엔 열기구가 떠있었다. 도착한 첫날은 계획이 없었기에 호텔에 짐만 맡기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괴레메는 뜨거웠지만 차분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도 어딜 보나 아름다웠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주인과 잠시 시간을 보냈고 그는 모든 행동과 말에 친절과 여유로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정이 없는 나에게 석양을 볼 수 있는 오후 선셋 ATV투어를 추천해 주었고, 나이를 걱정하던 나를 잠시 18살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 추천은 나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시켜주었다.
ATV투어를 마치고 흙먼지 범벅이 된 나는 목욕을 하며 앞으로 반정도 남은 일정에 대한 걱정을 덜어냈다. 목욕 후엔 혼자 쓰기엔 넓었던 방에 홀로 앉아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을 떠올렸다. 멀리 떠나온 덕이였는지 고민들의 괴롭힘에서 한발 벗어날 수 있었고, 모든 것을 차분하게 생각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다음날, 카파도키아의 상징, 열기구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열기구를 기다렸다. 원래 열기구는 날씨문제로 못 뜨는 날이 많지만 운이 따라준덕에 열기구를 타볼 수 있었다. 열기구는 어제 ATV를 타고 내달리던 곳을 날아다녔고 모든 곳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착륙 후엔 무사착륙 기념 샴페인을 터트렸다.(무알콜)
숙소로 복귀하고 잠시 쉬다가 예약했던 그린투어를 진행했다. 투어는 이스마일 가이드와 혼자 오신 사진가 형,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하신 분, 벨기에 교환학생을 하시는 분, 퇴사 후 혼자 여행하시는 분, 두 분 이서 오신 부부, 모녀여행 중인 분들, 형제여행 중인 분들 등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내가 그린투어 중 들었던 말이었다. 그린투어가 끝나고 다시 야간버스를 기다리며, 호텔로비에서 직원과 수다를 떨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 경호 군인이었다고 자랑하며 동료들과 파트너였던 군견 사진도 보여주었다. 이에 나는 내 미래이기도 한 한국의 국방의 의무에 대해서 얘기하고,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도 보여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버스에 올랐다.
이스탄불행 버스에선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시는 페루출신 국제학교 선생님을 만나 길게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이날 만난 분들은 모두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이분들에게 나는 각각 여행, 해외, 긍정, 유학, 결정, 미래, 걱정, 정, 거절에 대해 배웠고 이건 더 자세히 쓰고 싶어서 다음글로 미루어 두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구시가지로 이동하는 방법을 모르던 나는 페루 출신 선생님의 도움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마지막 일정, 이스탄불 3일 중 2일은 그린투어에서 만난 한분과 일정이 맞아 같이 다니기로 약속했고 이 약속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2일을 안겨주었다.
도착한 첫날은 비도 오고 몸상태가 영 좋지 않아 거의 숙소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4인 도미토리룸을 사용했기에 룸메이트가 있었고, 이라크에서 온 룸메이트와의 수다는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은 약속대로 그 분과 만나 카이막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함께 그랜드 바자르, 이집션 바자르 등의 시장을 둘러보고 다리를 건너 이스티크랄 거리로 향했다.
여행 초반 홀로 많이 지나다녔던 거리였지만 혼자일 때와 둘일 때의 느낌은 상상이상으로 달랐다. 혼자 있을 땐 절대 안 하던 쇼핑을 함께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저녁시간엔 그 분과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또 다시 많은 걸 배우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을 룸메이트와 먹고 다시 그 분과 만나 일정을 또 함께했다. 귀국날이였기에 쇼핑이 주 목적이였기 때문에 일찍이 신시가지로 넘어가 까먹은 쇼핑을 더 하다가 그 분은 먼저 공항으로 떠났다.
이후 나는 맥도날드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호스텔 주인은 1층 카페에서 언제든 쉬라 했지만 가지 못했다. 조금은 끝이 무서웠고, 조금은 지쳤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뻘 혹은 그 이상인 호스텔주인과 친구로서 작별인사하고 택시에 몸을 맡겼다.
이 글은 나의 첫 글이자 엄청난 요약버전이다. 느낀 점보다도 미성년자인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실제로 이 글은 무려 일주일 이상의 여행을 압축한 만큼 생략한 이야기가 매우 많다.이건 소중하고 인상적이며 나에게 변화를 안겨준 그 경험들을 요약하고 단순하게 나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이번에 담아내지 못한 나의 경험과 느낀 점들은 또 다른 글로 천천히, 또 느긋하게 써보려 한다.
나는 당시에 그저 평범한 고2였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생 때 가족 패키지여행은 가봤지만 보호자나 가이드 없는 여행은 국내로도 가본 적 없었다. 그랬던 현재 고3이 감히 또래 친구에게, 어른들에게, 부모님들에게 말해보고 싶다. 친구에겐 도전을 해보라고, 어른들에겐 용기를 내보라고, 부모님들에겐 믿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이글에선 경험과 느낌을 길게 쓰지 않았지만 난 정말 많은 걸 얻었다. 지금 당장 혼자 여행을 떠나라고, 보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가끔 사람들이 하늘을 보며 걷고, 조금 먼 길을 걸어보고, 가끔은 멈춰 서고, 가끔은 걱정 없이 걸어보며, 가끔은 옆을 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