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불의 맛 - 2
3.
“치워주십시오.”
차이헌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웨이터가 그림자처럼 다가와 반도 비우지 않은 수프 접시를 치웠다. 접시가 사라진 테이블 위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나는 민망함에 물만 들이켰다. 이 비싼 코스 요리가 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18만 원이 공중분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검은색 정장을 입은 또 다른 남자가 룸으로 들어왔다. 그는 조금 전의 웨이터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왼쪽 가슴에 금색 포도송이 모양의 배지를 달고 있었고, 손에는 하얀 린넨으로 감싼 와인 병을 소중하게 들고 있었다. 소믈리에였다.
“작가님, 그리고 기자님.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입가심을 위해 샴페인을 준비했습니다.”
소믈리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와인 라벨을 우리 쪽으로 향하게 보여주었다.
[Dom Pérignon Vintage 2012]
돔 페리뇽. 와인을 잘 모르는 나도 이름은 들어본 전설적인 샴페인이다. 나는 속으로 가격을 계산해 보았다. 마트에서도 30만 원이 넘는데, 이런 호텔급 레스토랑에서는 70만 원, 아니 100만 원은 받을 것이다. 내 한 달 월세가 병 하나에 담겨 있었다.
“오너 셰프님께서 작가님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내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소믈리에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의 기름진 맛을 산뜻하게 잡아주고, 앞서 드신 트러플 수프의 여운과도 훌륭한 마리아주(Mariage)를 이룰 겁니다.”
그가 능숙한 솜씨로 코르크의 호일을 벗겨내려 했다.
“멈추시죠.”
차이헌의 낮은 목소리가 소믈리에의 손목을 잡은 듯 멈춰 세웠다.
“오픈하지 마십시오. 안 마십니다.”
“……네?”
소믈리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하지만 작가님, 이 빈티지는 작가님께서 평소에 호평하셨던……” “서비스가 아니라 테러겠죠.”
차이헌이 턱을 괴며 소믈리에를 차갑게 올려다보았다.
“당신, 방금 나간 수프 맛을 봤습니까?”
“아…… 저는 홀 담당이라 직접 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주방에서 완벽하게 조리되어 나왔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전달받았다라. 소믈리에가 혀를 쓰지 않고 귀를 쓰는군요.”
차이헌이 혀를 쯧, 하고 찼다.
“그럼 지금이라도 주방에 가서 혀끝에 찍어 먹어보고 오십시오. 그 맵고 짠 탄 맛을 보고도, 그 섬세한 돔 페리뇽을 따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죄송합니다만, 이해가 잘…….”
“제 혀는 지금 마비 상태입니다.”
차이헌이 자신의 입술을 검지로 가리켰다.
“셰프가 수프의 탄 맛을 감추려고 후추와 소금을 들이부었거든요. 혀의 미뢰가 캡사이신과 나트륨에 절여져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산미(Acidity)가 강하고 탄산이 터지는 샴페인을 붓는다? 그건 입안에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뜻입니다.”
그는 소믈리에의 손에 들린 샴페인 병을 바라보았다. 경멸 어린 시선이었다.
“마리아주(결혼)라고 했습니까? 이건 결혼이 아니라 이혼 소송감이군요. 그것도 아주 진흙탕 싸움이 될.”
소믈리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오늘 수프의 염도는 평소와 같이 매뉴얼대로……”
“평소와 같다면 더 문제겠군요. 이 식당의 수준이 원래 그렇다는 뜻이니까.”
차이헌은 단호했다.
“물 가져오십시오. 미네랄 워터 말고, 정수된 미지근한 맹물로. 혀에 낀 이 찌꺼기들을 씻어내기 전까진, 1억짜리 로마네 꽁띠를 가져와도 안 마십니다.”
소믈리에는 들고 있던 샴페인 병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시 서 있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돔 페리뇽의 황금색 라벨이 룸의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그 화려함이 지금은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셰프의 요리를 옹호하며 샴페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까다로운 손님의 비위를 맞출 것인가. 하지만 차이헌의 기세는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입가심하실 물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소믈리에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샴페인 병을 다시 린넨으로 감싸 안고 물러갔다. 그의 뒷모습은 전장에서 패배하고 돌아가는 병사처럼 처량했다. 달그락. 잠시 후, 웨이터가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물을 가져왔다. 얼음이 없는 미지근한 물이었다. 차이헌은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입안을 헹군 뒤, 소리 없이 삼켰다. 그리고 다시 물을 마셨다. 마치 종교 의식을 치르는 사제처럼 엄숙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무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기이한 전율이 일었다. 100만 원짜리 공짜 술을 거절하고, 맹물을 마시는 남자.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가격표가 아니었다. 자신의 혀가 느끼는 ‘감각의 논리’가 훼손되는 것을 그는 참지 못하는 것이다.
“아깝네요.”
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주는 성의를 봐서라도 한 잔 정도는 받을 수 있잖아요. 저 비싼 술을 거절하다니.”
“박 기자님.”
차이헌이 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비싼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닙니까?”
“……네?”
“가격은 가치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호의는 폭력입니다. 저는 폭력을 거절한 것뿐입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아까와는 공기가 달랐다. 수프 접시가 치워지고 샴페인이 거절당한 이 식탁 위에는, 이제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그리고 곧, 폭풍의 눈인 메인 요리가 등장할 차례였다.
4.
드르륵.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적을 깨고 은색 카트가 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메인 요리였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소믈리에가 쫓겨나고 분위기가 가장 싸늘할 때 등장한 메인 요리라니. 웨이터 두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카트에서 접시를 옮겼다. 그들의 손놀림은 조심스러웠지만, 공기 중에 흐르는 살벌한 기류까지는 수습하지 못했다.
은색 돔 커버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웨이터가 떨리는 손길로 커버를 들어 올렸다.
“메인 디쉬,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입니다.”
화려했다. 조명을 받은 접시는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짙은 갈색의 쥬(Jus) 소스 위에 가지런히 놓인 오리 가슴살. 껍질은 크리스피하게 구워져 황금빛을 띠었고, 가니쉬로 곁들여진 구운 아스파라거스는 윤기가 흘렀다. 완벽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이 식당의 오너 셰프, 강인철. ‘불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그는 직화 구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불의 마술사라.”
차이헌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는 물 잔을 들어 입을 한 번 더 헹군 뒤,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가 처음으로 식기를 손에 쥔 것이다. 그는 고기를 바로 썰지 않았다. 나이프 끝으로 고기 표면을 톡, 톡 두드려보았다. 껍질의 바삭함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탁, 탁. 경쾌한 소리가 났다. 껍질은 분명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다. 하지만 차이헌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코를 고기에 가까이 대고 깊게 냄새를 맡았다.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기자님.”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게 깔렸다.
“질문 수정하시죠. 강인철 셰프는 오늘 주방에 없습니다.”
“네?”
나는 먹던 포크를 멈췄다. 입안에는 이미 오리고기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맛있었다. 씹을 필요도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혀로 누르기만 해도 결대로 으스러지는 육질. 소스는 진했고, 껍질의 바삭함도 나쁘지 않았다. 내 미각의 기준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스테이크’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지금 접시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까 들어올 때 오픈 키친에서 셰프님을 봤어요.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계시던데요.”
“지시는 했겠죠. 하지만 요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차이헌은 린넨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 마치 오물을 닦아내듯 신경질적인 손놀림이었다.
“기자님. 수비드(Sous-vide)에 대해 아십니까?”
“진공 저온 조리법이잖아요. 재료를 비닐에 밀봉해서 미지근한 물에 오래 익히는 거. 요즘 유행하는 조리법 아닌가요? 육즙도 안 빠지고 식감도 부드러워지니까 다들 쓰던데. 실패하지 않는 기술이니까요.”
그가 물 잔을 들어 흔들었다. 투명한 물이 소용돌이쳤다.
“수비드는 과학입니다. 단백질이 굳지 않는 60도 언저리의 온도를 유지해서 고기를 ‘익히는’ 게 아니라 ‘달래는’ 겁니다. 덕분에 요리사는 불 앞에서 땀 흘릴 필요가 없어졌죠. 그저 타이머를 맞춰놓고 퇴근하면 그만입니다. 기계가 알아서 해주니까.”
“그게 나쁜 건가요? 결과물이 좋잖아요. 제가 먹기엔 아주 부드럽고 맛있는데요.”
내가 반박했다. 나는 이 남자의 저 오만함이 싫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맛이 상향 평준화되었다면 칭찬해야 할 일 아닌가. 굳이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건 아집이다. 차이헌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맛있다라…….”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기자님, 고기의 맛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재료, 그리고 적당한 간?”
“그렇지 않나요?”
“아닙니다. 고통입니다.”
그는 단호했다.
“고기는 불과 싸워야 합니다. 200도가 넘는 뜨거운 팬 위에서, 단백질과 당분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타들어가야 합니다. 그걸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이라고 하죠. 그 고통스러운 화학 반응 끝에 비로소 고기 본연의 풍미가 폭발하는 겁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씹을 때마다 불의 향기가 배어 나오는 것. 그게 스테이크입니다.”
그는 나이프 끝으로 자신의 접시에 놓인 고기를 툭, 쳤다. 고기는 탱글거리는 탄력 없이 푸딩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 고기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비닐 팩이라는 안전한 관 속에 갇혀서, 따뜻한 물속에서 두 시간 동안 목욕을 했을 뿐이죠. 그래서 조직이 다 풀어진 겁니다. 이건 부드러운 게 아닙니다. 흐물거리는 겁니다. 씹는 맛, 텍스처(Texture)가 완전히 거세되었습니다.”
“취향 차이 아닐까요? 부드러운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차이헌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이 식당의 오너 셰프, 강인철. 그의 별명이 뭡니까? ‘불의 마술사’입니다. 그는 인터뷰 때마다 떠들었죠. ‘수비드는 영혼 없는 공장제 요리다’, ‘나는 팬 위에서 땀 흘리지 않은 요리는 내지 않는다’라고. 그런 그가 자신의 시그니처 메뉴인 오리 가슴살을 물에 빠뜨렸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그는 벨을 눌렀다. 띵동. 그 소리가 마치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그가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곧 지배인이 들어왔다. 조금 전 샴페인 사건으로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그는 차이헌의 접시가 거의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인 것을 보고는, 다리가 풀린 듯 휘청거렸다.
“부, 부르셨습니까, 작가님…….”
“셰프를 불러주십시오.”
차이헌이 말했다. 지배인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아, 셰프님께서는 지금 디너 재료 손질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거짓말.”
차이헌은 지배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방금 들어올 때 주방에 있는 걸 봤다는 증인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턱짓으로 스테이크 접시를 가리켰다.
“이 접시가 증거입니다. 강인철 셰프는 껍질(Skin)을 구울 때 버터를 끼얹는 ‘아로제(Arroser)’ 횟수까지 강박적으로 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고기, 껍질만 토치로 그을렸더군요. 불 맛을 흉내 내려고 말입니다.”
차이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전하십시오. 그가 제 발로 걸어 나오지 않으면, 제가 주방으로 들어가겠다고. 제 발로 주방에 들어가는 순간, 이 식당의 위생 등급부터 식자재 장부까지 전부 다 뒤집어엎겠다고.”
지배인은 더 이상 변명하지 못했다. 그는 도망치듯 룸을 빠져나갔다. 룸 안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반쯤 먹다 남은 오리고기. 차이헌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그 고기가 다르게 보였다. 선홍빛 살코기가 먹음직스러운 미디엄 레어가 아니라, 물에 불은 시체처럼 느껴졌다. 나는 슬그머니 포크를 내려놓았다.
“너무 몰아세우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물었다.
“셰프도 사람인데, 컨디션이 안 좋아서 좀 편한 방법을 쓸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일반 손님들은 눈치도 못 챌 텐데.”
“박 기자님.”
차이헌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반 손님들은 모르겠죠. 그러니까 더 나쁜 겁니다. 모르는 사람을 속이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끼 식사에 30만 원을 지불했습니다. 그 돈에는 재료비만 포함된 게 아닙니다. 셰프의 노동, 철학, 그리고 약속에 대한 대가가 포함된 겁니다.”
그는 테이블 위의 와인잔을 만지작거렸다.
“편의점에서 파는 3분 함박스테이크도 수비드 공법으로 만듭니다. 아주 부드럽고 맛있죠. 하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편의점 음식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논리는 완벽했다. 재수 없을 정도로.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까와는 다른, 아주 힘없고 주저하는 듯한 노크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