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온도

사라진 불의 맛 - 3

by 괴도신사





5.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지배인이 아니었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남자. 강인철 셰프였다. 매스컴에서 보던, 팔짱을 끼고 자신감 넘치게 웃던 ‘불의 마술사’는 그곳에 없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눈동자를 굴리며 우리를, 아니 정확히는 차이헌을 바라보았다.

“한…… 아니, 차 작가님.”

강 셰프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랜만입니다. 입맛에…… 안 맞으셨습니까?”

비굴한 웃음이었다. 차이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인사를 받지도 않았다. 그는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강 셰프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불량품을 검수하는 공장장 같은 눈빛이었다.

“입맛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의(信義)의 문제죠.”

차이헌이 검지 끝으로 테이블 위를 톡, 톡 두드렸다. 규칙적인 박자. 그 소리가 강 셰프의 심박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수비드더군요. 62도, 2시간. 맞습니까?” “아, 그게…….”

강 셰프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즘 트렌드가 워낙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다 보니…… 저도 연구 차원에서 시도를 좀 해봤습니다. 국산 유황오리는 육질이 좀 단단해서, 손님들이 질기다고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요.”

거짓말이다. 요리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구차한 변명이었다. 연구를 왜 돈 내고 먹는 손님상에, 그것도 예고도 없이 올린단 말인가. 나는 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연구 차원이라.”

차이헌이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은 연구를 손님상에 냅니까? 실패한 실험작을 18만 원이나 받고?” “죄송합니다. 마음에 안 드셨다면 다시 구워드리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엔 팬 프라잉으로…….” “아뇨. 당신은 못 굽습니다.”

차이헌이 말을 잘랐다.

“네?” “못 굽는다고 했습니다. 안 굽는 게 아니라.”

차이헌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큰 키가 그림자처럼 강 셰프를 덮쳤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강 셰프 앞으로 걸어갔다.

“강 셰프. 당신에게서 냄새가 납니다.” “냄새라니요? 주방에 있다 보니 음식 냄새가 배어서…….” “아뇨. 음식 냄새가 아닙니다. 기름 냄새도, 숯 냄새도, 버터 냄새도 안 납니다.”

차이헌이 코를 킁, 하고 울렸다.

“파스 냄새. 그리고 소독약 냄새.”

강 셰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당신, 오른손 주머니에서 빼시죠.”

강 셰프는 멈칫했다. 나는 그제야 눈치챘다. 강 셰프가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오른손을 조리복 바지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왼손으로만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다친 겁니까?”
“……아닙니다. 그냥 습관입니다.”
“습관? 요리사가 주방에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게 습관이라고요? 보여주십시오. 그 손으로 팬을 잡을 수 있는지, 나이프를 쥘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만하십시오!”

강 셰프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에는 위엄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짐승의 비명에 가까웠다.

“작가님이 아무리 대단해도, 남의 주방 사정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습니다! 싫으면 나가시면 됩니다. 돈은 안 받겠습니다! 나가주세요!”

적반하장.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나는 혹시 모를 몸싸움에 대비해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는 숨을 죽였다. 하지만 차이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내 시간을 모욕했고, 내 혀를 기만했습니다.”

차이헌의 눈빛이 강 셰프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무엇보다, 당신은 당신의 요리를 죽였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이헌의 손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그가 강 셰프의 오른쪽 팔뚝을 낚아챘다.

“아악!”

강 셰프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주머니 속에 있던 손이 강제로 밖으로 딸려 나왔다. 그의 손은 손이 아니었다.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두꺼운 압박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손가락을 고정하는 플라스틱 부목까지 댄 상태였다. 저 손으로는 무거운 무쇠 팬은커녕, 가벼운 젓가락 하나도 제대로 들 수 없어 보였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적이 흘렀다. 강 셰프는 고개를 떨궜다. 식은땀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거친 숨소리만이 룸 안을 채웠다.

“……사흘 전입니다.”

강 셰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토바이 배달원이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피하다가 넘어졌는데 손목 인대가 나갔습니다. 전치 6주라더군요.”
“그래서, 수비드 기계를 켰습니까?”
“예약은 두 달 치가 밀려 있었습니다! 미슐랭 평가 기간도 코앞이고요. 문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셰프들에게 맡기자니 불 조절이 마음에 안 들고…… 차라리 기계를 쓰면 퀄리티는 일정하게 나오니까…….”

그는 변명하다 말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린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라고 생각했습니다. 손 나을 때까지만. 손님들은 부드럽다고 더 좋아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딱 한 달만 버티자고…….”

그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변했다. 대한민국 요식업계의 스타, 불의 마술사라 불리던 남자가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다. 부러진 손을 숨기고 주방에 서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안절부절못했을 그의 시간이 상상되어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지만 차이헌은 달랐다. 그는 강 셰프의 눈물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냅킨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

“손이 부러진 건 사고(事故)죠. 위로받아 마땅합니다.”

그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묵직한 소리가 나는 블랙 카드였다.

“하지만 오늘 이 접시에 담긴 건 사고가 아닙니다. 그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타협이라는 이름의 비겁한 선택.”

차이헌은 몸을 돌렸다.

“계산은 내가 합니다. 맛없는 밥을 먹은 값은 지불하지 않겠지만, 당신의 그 비겁한 양심을 확인한 값은 지불하죠.”

그는 나를 보지도 않고 룸을 나갔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는 강 셰프와, 식어버린 오리 스테이크를 번갈아 보았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핑크색 고기. 그것이 이제는 요리가 아니라, 비겁함의 증거물처럼 보였다. 나는 가방을 챙겨 들고 황급히 차이헌의 뒤를 쫓았다.

6.

“잠깐만요!”

나는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룸 안의 덥고 습한 공기와는 대조적이었다. 차이헌은 이미 발렛파킹 부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검은색 세단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 문을 열려 했다.

“할 말 남으셨습니까?”

그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 멈춰 섰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요?”

나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강 셰프, 울고 있었어요. 미슐랭 평가 기간이라 압박감이 심했을 거예요.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하고, 가게 임대료도 내야 하잖아요. 사정이 있었다고요. 그걸 그렇게 매정하게…….” “기자님.”

그가 내 말을 끊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강 셰프의 옷깃을 스친 것조차 불쾌하다는 듯, 손가락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닦아냈다.

“사정(事情). 좋은 단어죠. 한국 사회에서 그보다 좋은 면죄부는 없으니까.” “너무 빡빡하게 구시는 거 아니에요? 융통성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융통성이라.”

그가 피식 웃었다.

“그 ‘사정’을 봐주는 순간, 원칙은 무너집니다. 내가 오늘 그를 봐줬다면, 그는 내일도 수비드 기계를 켰을 겁니다. 그리고 모레는 재료를 더 싼 걸로 바꿨겠죠. ‘사정이 있으니까’라고 자위하면서. 타락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는 거죠. 천천히, 본인도 모르게.”

“그래도,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잖아요. 한 번쯤은 기회를 줄 수도 있었잖아요.”
“기회는 제가 주는 게 아닙니다. 손님이 주는 거죠.”

그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박 기자님. 기자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그게 정의라고 생각하니까요.” “틀렸습니다. 기자는 사실의 편에 서야죠. 강인철은 약자가 아닙니다. 그는 권력자입니다. 주방 안에서는 그가 왕이고, 손님은 그가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신하니까요.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신하들을 속였습니다. 나는 그 폭정을 고발했을 뿐입니다.”

말문이 막혔다. 그의 논리는 차가웠지만, 빈틈이 없었다. 그는 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지독한 원리원칙주의자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적당히 눈감고 넘어가는 ‘적당주의’라는 이름의 곰팡이를 그는 결벽적으로 혐오하는 것이다.

“인터뷰는 이걸로 대신하죠. 오늘 본 것, 들은 것. 그대로 쓰십시오.”

그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건 충고입니다만.”

닫히려는 차 창문 너머로 그가 말했다.

“편의점 김밥은 그만 드시죠. 혀가 둔해지면, 진실을 맛볼 수 없습니다.”

검은 세단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차는 언덕길을 내려가 도산대로의 차량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붉은 테일램프 불빛만이 잔상처럼 남았다.

나는 덩그러니 남겨졌다. 화려한 청담동 거리. 명품 매장의 쇼윈도들이 번쩍거렸고, 발렛 부스 앞에는 고급 외제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배가 고팠다. 미슐랭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전채 요리와 수프, 그리고 메인 요리까지 받았지만, 내 위장은 비어 있었다. 허기가 뱃가죽을 긁어댔다.

나는 가방에서 먹다 남은 편의점 김밥을 꺼내려다 말았다. 대신 건물 벽에 붙은 ‘라 뤼미에르’의 황동 명패를 올려다보았다. 빛(Lumière). 그 이름이 왠지 처연하게 느껴졌다. 불이 꺼진 주방에서, 붕대 감은 손으로 울고 있을 셰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손은 아플 것이다. 하지만 차이헌의 말대로, 그 아픔은 그가 선택한 것이다. 나는 수첩을 꺼냈다. 볼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기사를 써야 한다. 재벌 3세의 갑질에 대한 기사가 아니다. 스스로 불을 끈 요리사에 대한, 그리고 그 꺼진 불을 기어이 찾아내 헤집어 놓은 한 잔인한 미식가에 대한 기록을.

[거짓말은 미디엄 레어로 구워지지 않는다.]

나는 수첩 맨 윗줄에 제목을 적었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나는 코트 깃을 세우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김밥은 먹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나도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터벅터벅. 보도블록을 밟으며 걷던 내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잠깐만. 기사?

등골이 서늘해졌다. 11월의 칼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가방을 열어 수첩을 다시 확인했다. [거짓말은 미디엄 레어로 구워지지 않는다.] 멋진 제목이다. 그런데. 그 밑이 백지였다.

차이헌의 미식 철학? 차기작 계획? 대중이 궁금해하는 한성 그룹 후계 구도에 대한 생각?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적은 거라곤 오리 스테이크가 수비드였다는 고발 내용뿐. 정작 편집장이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받아 적어 오라”고 신신당부했던 ‘인터뷰’는 한마디도 못 했다. 싸움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녹음기 켜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아…… 인터뷰.”

나는 길 한복판에서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망했다. 완벽하게 망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덕분에 명분은 생겼다. 그 까칠하고 재수 없는 남자를 다시 만나야 할, 아주 질척거리고 구차한 명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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