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낭만

완벽하지 않은 것이 좋아

by 버들유

2024. 11


낙엽이 다 떨어지고 이제 겨울이 오겠다 싶던 찰나, 매섭게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하루아침에 하늘부터 바닥까지, 채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 하나까지 하얗게 물든 날.

어느 날과 다름없이 매일 도너츠 한 개를 사가는 아저씨가 오셨다. 머리와 어깨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터시며 들어오신다.

언제나처럼 ”도너츠하나요“ 인사도 없고 웃음도 없으시다. 기침을 하시며 연신 어깨를 터시길래 “아이고! 우산을 못 챙기셨나 봐요~”라고 한마디를 거들어봤다.

“아니요. 일부러 안 썼어요. 눈을 맞고 싶어서 “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다정함을 남기시다니. ‘저도요! 저도 눈 맞는 것 좋아해요!’ 반가운 마음을 외치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하실까 싶어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인사로 꾹 참아봤다. 역시나 돌아오는 인사는 없었지만 난 그분이 조금 좋아졌다. 어쩌면 나와 같은 낭만을 가진 분이 아닐까, 반가운 의심이 생겼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 좋다. 완벽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낭만을 사랑하기에.

그래서 눈이 좋다. 눈이 잔뜩 쌓여 있는 동네를 거닐면, 익숙함에 방치시켜 놓았던 순수함들이 하얀 배경 위에 자연스럽게 물들어있다.

매일 보던 나무 밑에서 찍어 보는 사진 한 장. 미끄러질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괜히 마주 잡아보는 손. 웃음소리와 함께 오고 가는 눈덩이들. 길마다 보이는 누군가의 올라프.

나에게 다가오는 낭만은 그런 것들이다. 나의 눈에만 보이는 반짝이는 아름다움들.

누군가는 눈이 오면 길이 더러워진다고, 돌아다니기 힘들기만 하다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따뜻한 초코라떼를 한모금하며 천천히 내려오는 눈송이들 바라보고 그 순간을 즐기는 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의 불평이 찰나의 사치구나.라고 느껴질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로 커져가는 사회 속에 어느 순간 낭만이란 이 단어가 설 자리가 없어진 것 같다.

조금은 덜 계산하며 찰나를 받아들이는 용기.

그 용기 몇 번으로 생겨진 추억 구슬들이 오래오래 간직되길 바란다.

낭만적 삶은 이상주의자들이 떠드는 오글거리는 무언가가 아니라 늘 같은 일상 속에 반짝이는 나의 용기였다는 것을 알기 바라며.

각자의 낭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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